한국건축의 역사 13장 식민 지배하의 근대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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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건축의 역사 13장 식민 지배하의 근대건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도시의 인구증가와 도시정비
Ⅱ. 도시경관을 바꾸는 근대적 건축 외관
Ⅲ. 한국인의 건축설계 활동
Ⅳ. 건축기술의 일본 예속
Ⅴ. 도시 주택의 여러 모습

본문내용

4,5층 건물이 많이 지어지고, 서울의 경우 8층 짜리
건물도 들어서기 시작했다.
*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경우 1923년 관동지방의 큰 지진으로 인해 한국도 마찬가지로 그 영향에
의해 매우 안정성을 높인 구조로 지어졌다.
* 개인 주택이나 2층 정도의 소규모 건물은 벽돌조가 대부분이었으며, 가장 일반적인 건축재료가
되어있었다.
- 한편 전통적인 한식 구조는 수요자가 줄어들고 기술 인력의 감소로 전반적인 쇠퇴기를
맞이하였으며, 도시 외곽에 새로 조성된 주택에서 일부 명맥을 유지하는데 그치고 부분적인
장식 처리나 복잡한 가공과정을 생략한 간이 기법을 쓰는 경향이 나타났다.
* 한옥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쇠퇴하는 동안 국내의 건축술은 완전히 서양식을
수용한 일본 건축술에 예속되어 갔으며, 특히 근대적 건축기술 측면에서 가장 철저하게 진행되어
갔다.
Ⅴ. 도시 주택의 여러 모습
1. 주택의 모습 : 1926년 주택은 새로운 양상을 전개하였다.
* 당시 서양식 주택이나 내부를 개조한 한옥은 일부 가진 계층에서 한정되어 있었다.
- 하류 계층의 경우는 재래식 한옥을 짓고 살았으며, 이런 한옥들은 미래를 향한 기술적인
진보에 있어 가능성을 잃고 있었다.
* 서양식 주택은 신식 교육을 받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한국인이 선호하였다.
- 문화주택이란 이름으로 불린 이 주택은 서양식 주택을 바탕으로 전통 주거 생활을 수용한
절충적인 방안으로 지어졌다.
* 박길룡이 설계한 김계수댁은 2층 벽돌조로 이 시기 한국인이 지은 양식 주택들은 기술적으로나
디자인상으로 서양의 주택에 크게 뒤지지 않는 수진이었다고 평가된다.
* 한옥은 20세기 들어오면서 세부적인 변화를 거듭해왔다.
- 가장 큰 새로운 양상으로는 실내에 긴 복도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 안재홍 생가로 불지는 집은 사랑채에만 외벽에 유리창을 달고 서양식 출입문을 내었으며,
농촌 사회에서 앞서간 문화생활을 과시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 박길룡은 당시 한옥 개선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고, 중정식보다 평면 속에 모든 실을 집합시키는
것이 건축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부엌에 대해서는 위치를 동향으로 밝게 하는 것
등 주장을 하였다.
* 한국 기술자들은 눈앞에 보이는 변화하는 새 시대의 물결을 따라가지 못하고, 재래의 건축 세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기에 이 시기는 역사상 최악의 시기였다고 평가된다.
2. 주택의 모습Ⅱ
* 이 시기 도시에서는 새로운 모습의 집단적인 한옥 단지가 만들어졌다.
- 이 집들은 대개 전통적인 한옥을 간략화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 민간의 집단 주택지 건설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공공기관의 주택건설도 나타났다.
* 1920년대 이후의 주택은 명확한 경제적 계층 차이를 보였다. 일본풍 또는 서양풍을 가미한
큰 규모의 한옥은 주로 부유한 계층의 집이었다.
* 재래식 한옥은 이 시기 농촌 지역에서 더 확산되었다.
- 부분적인 개선이 여러 방식으로 나타나기는 하였지만 이 시기 한옥은 새로운 미래를 펼쳐갈
가능성을 향해서 크게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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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3.09.23
  • 저작시기2011.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8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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