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머리말
Ⅱ.고구려와 중국의 고분벽화
Ⅲ.고려시대 중국과의 오랜 회화교류
Ⅳ.조선시대 중국회화의 교류와 전래
Ⅴ.맺음말
Ⅱ.고구려와 중국의 고분벽화
Ⅲ.고려시대 중국과의 오랜 회화교류
Ⅳ.조선시대 중국회화의 교류와 전래
Ⅴ.맺음말
본문내용
간은 19세기 전반이었기에 그 시대의 왕실 소장의 귀중한 정보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후반에는 새로운 중국의 미술문화가 유입되었는데, 정통화파, 양주화파, 해상화파의 화풍이 들어오게 되었다. 정통화풍은 중국의 누동파 중국 청(淸)나라의 문인화파로서 태창파(太倉派)라고도 부른다. 누동화파의 시조인 왕원기(王原祁)의 출신지가 장쑤성[江蘇省] 누현(婁縣)인 데서 누동화파라는 이름이 생겨났으며, 왕휘를 따르는 우산파(虞山派)와 더불어 청나라 초기의 정통파 화단을 대표하는 화파이다.
와 그의 변형적인 화풍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조선 화단에 가장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양주화파는 18세기 양주에서 성행하였던 화풍인데 매우 대중적이며 화가들은 화훼와 초충, 사군자를 주로 그렸다. 경쾌한 스케치풍의 그림도 있고 밝은 색조의 꽃 그림이 많은 것이 특색이다.
해상화파는 19세기 후반 국제도시인 상해를 중심으로 성행했던 것으로 더욱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특징을 보인다. 대체로 강한 채색과 형태의 왜곡을 통해 장식성이 강조된 화훼와 인물화가 주로 선호되었다. 이들의 간결하고 참신한 화법들은 화보로 많이 제작되어 조선에 전해지게 되었다.한정희,『동아시아 회화 교류사』, ㈜사회평론, 2012, 28쪽.
Ⅴ.맺음말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인 관계속에서 어떠한 회화교류가 이루어 졌는지 시대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에 각 시대별로 어떠한 특징과 화풍들이 조선에 전래되었으며,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에 마지막으로 한국과 중국의 회화 교류에 대해 파악된 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한국과 중국의 회화적인 교류에 있어서 당시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우위에 있었던 중국의 화풍 유입이 일반적으로 성행하였다. 고구려의 경우 무덤의 양식이나 벽화의 주제에서 그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고려의 경우 중국의 여러 나라들과 교류를 하면서 다양한 회화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조선의 경우도 문인화가 및 화원들의 중국방문과 여러 화보들을 통해 중국에서 다양하고 참신한 화풍들이 전래되었다.
이렇듯 중국에서 전래된 화풍들은 우리나라의 회화사를 발전시키는데 있어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살펴보았을 때는 한국과 중국의 회화의 특징이 유사할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았을 때는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중국의 화풍을 수용하는데 있어 무조건 적인 수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수용이후 그것을 한국만의 특색을 가진 독자적인 화풍으로 발전시켜 나아갔다는 것으로 한국과 중국의 회화교류에 있어 의의를 둘 수있다고 본다.
※ 참고문헌 ※
- 안휘준,『한국 회화사』, 일지사, 1980.
- 한정희,『동아시아 회화 교류사』, ㈜사회평론, 2012.
- 한정희,「18·19세기 정통파 화풍을 통해본 동아시아의 회화교류」,『미술사연구』22,
미술사연구회, 2008.
- 홍선표,「15·16세기 조선화단의 중국화 인식과 수용태도:대명관의 변화를 중심으로」, 『미술사논단』26, 한국미술연구소, 2008.
19세기 후반에는 새로운 중국의 미술문화가 유입되었는데, 정통화파, 양주화파, 해상화파의 화풍이 들어오게 되었다. 정통화풍은 중국의 누동파 중국 청(淸)나라의 문인화파로서 태창파(太倉派)라고도 부른다. 누동화파의 시조인 왕원기(王原祁)의 출신지가 장쑤성[江蘇省] 누현(婁縣)인 데서 누동화파라는 이름이 생겨났으며, 왕휘를 따르는 우산파(虞山派)와 더불어 청나라 초기의 정통파 화단을 대표하는 화파이다.
와 그의 변형적인 화풍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조선 화단에 가장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양주화파는 18세기 양주에서 성행하였던 화풍인데 매우 대중적이며 화가들은 화훼와 초충, 사군자를 주로 그렸다. 경쾌한 스케치풍의 그림도 있고 밝은 색조의 꽃 그림이 많은 것이 특색이다.
해상화파는 19세기 후반 국제도시인 상해를 중심으로 성행했던 것으로 더욱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특징을 보인다. 대체로 강한 채색과 형태의 왜곡을 통해 장식성이 강조된 화훼와 인물화가 주로 선호되었다. 이들의 간결하고 참신한 화법들은 화보로 많이 제작되어 조선에 전해지게 되었다.한정희,『동아시아 회화 교류사』, ㈜사회평론, 2012, 28쪽.
Ⅴ.맺음말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인 관계속에서 어떠한 회화교류가 이루어 졌는지 시대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에 각 시대별로 어떠한 특징과 화풍들이 조선에 전래되었으며,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에 마지막으로 한국과 중국의 회화 교류에 대해 파악된 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한국과 중국의 회화적인 교류에 있어서 당시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우위에 있었던 중국의 화풍 유입이 일반적으로 성행하였다. 고구려의 경우 무덤의 양식이나 벽화의 주제에서 그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고려의 경우 중국의 여러 나라들과 교류를 하면서 다양한 회화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조선의 경우도 문인화가 및 화원들의 중국방문과 여러 화보들을 통해 중국에서 다양하고 참신한 화풍들이 전래되었다.
이렇듯 중국에서 전래된 화풍들은 우리나라의 회화사를 발전시키는데 있어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살펴보았을 때는 한국과 중국의 회화의 특징이 유사할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았을 때는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중국의 화풍을 수용하는데 있어 무조건 적인 수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수용이후 그것을 한국만의 특색을 가진 독자적인 화풍으로 발전시켜 나아갔다는 것으로 한국과 중국의 회화교류에 있어 의의를 둘 수있다고 본다.
※ 참고문헌 ※
- 안휘준,『한국 회화사』, 일지사, 1980.
- 한정희,『동아시아 회화 교류사』, ㈜사회평론, 2012.
- 한정희,「18·19세기 정통파 화풍을 통해본 동아시아의 회화교류」,『미술사연구』22,
미술사연구회, 2008.
- 홍선표,「15·16세기 조선화단의 중국화 인식과 수용태도:대명관의 변화를 중심으로」, 『미술사논단』26, 한국미술연구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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