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농업발달-신석기시대 농경의 시작,청동기시대 본격적인 농경생활,철기 삼국시대 생산력의 획기적 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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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농업발달-신석기시대 농경의 시작,청동기시대 본격적인 농경생활,철기 삼국시대 생산력의 획기적 증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농업기술
1. 신석기시대 - 농경의 시작
2. 청동기시대 - 본격적인 농경생활
3. 철기 삼국시대 - 생산력의 획기적 증대
4. 조선시대Ⅰ - 휴한의 극복, 연작상경화
5. 조선시대Ⅱ - 수전농업과 성리학
6. 일제강점기 - 식민지 농업정책, 미곡단작화
Ⅲ. 과학기술
1. 고대
2. 고려시대
3. 조선 전기
4. 조선 중․후기
5. 개항 이후 시기
6. 일제 강점기
Ⅳ. 결론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9년 경인선을 개통하면서 시작한 일제의 철도망 구축은 러일전쟁 이후 경부선과 경의선 부설로 이어졌다. 그 뒤 일제는 1911년 압록강철교를 가설하여 국내 철도를 만주와 연결시키고, 부산에서 출발하는 관부연락선을 통해 일본과 직결시킴으로써 일본-조선-만주를 잇는 식민지 침략의 기본 루트를 마련하였다.
식민지와 제국을 묶는 권력의 그물은 전기통신 정보망으로도 짜여졌다. 1908년 경비전화건설부를 설치한 일제는 기존 우체국 전신망에 전화선을 추가하고 회선을 신설하여 1910년 말까지 전국의 경찰서우체국행정관청 등을 잇는 경비전화망을 구축하였다. 이후 1924년 만주까지 전화 서비스가 시작되고 1933년 일본과 직통전화가 개통되었다.
한편 192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무선통신과 라디오가 식민지 정보통제 시스템의 또 다른 한 축으로 떠올랐다. 일제는 전국적 방송망 확충 등으로 청취자의 수를 늘리면서 라디오 방송을 식민지 정보통제의 도구로 활용하였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 동안 도시화가 빠르게 이루어진 사실은 1937년 조선 총인구 2천3백만 가운데 도회지 인구가 약 1/5에 이른 데서 확인될 수 있다. 이렇게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서울의 경관은 급격히 바뀌었다. 서울에 전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 노선이 개통되면서였다. 전차가 대중교통 수단으로 구실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이후였다. 더불어 1928년부터 버스가 운행되어 대중교통 수단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동차가 거리의 풍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았다.
1929년 현재 서울 시내를 달리는 전차와 버스는 각각 120대와 40대 정도였고, 하루 평균 승객은 전차가 11만여 명, 버스가 1만여 명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이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전차나 버스를 이용했고 교통수단의 시간표에 자신들의 생활을 맞춰 나갔다.
이런 진화에 발맞춰 건축물 또한 빠르게 바뀌어 갔다. 1930년대 들어 화신 백화점을 비롯한 대형 상업건축물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이들 건물은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을 내뿜으며 사람들에게 근대에 대한 강렬한 매혹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1920년대 후반 남대문로 일대의 차도와 인도가 나뉘어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으로 포장되고, 경계에 가로수와 가로등이 세워지면서 고층건물이 촘촘히 들어선 남촌의 야경은 장안의 명물로 떠올랐다.
Ⅳ. 결론
지금까지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농업기술 및 과학기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각 시대의 농업기술 및 과학기술에 대해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농경의 시작은 신석기 시대에 이루어졌고, 청동기 시대부터 본격적인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각종 곡물이 안정적으로 재배되었고, 논농사가 널리 확산되었다. 이후 철기의 보급과 축력이라는 새로운 에너지를 농경에 활용하면서 철기 삼국시대에는 생산력이 획기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당시 지배적인 농사는 밭농사였다. 한반도의 농경은 고려 말 조선시대 초에 연작상경이 이루어지면서 매년 경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시비술의 발전 및 제초작업이 활발해지면서 연작상경화가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연작상경의 작부체계와 함께 『농사직설』에서 벼농사를 강조하였고, 경작법은 수경직파법, 건경직파법, 이앙법이 있었다. 조선의 벼농사는 전기의 직파법에서 후기의 이앙법으로 전환된 것이 큰 흐름으로 이해된다. 일제강점기에는 개량증식에 대한 기본방침을 중대훈시에 밝힘으로써 식민지 조선에서 일제의 농업정책이 본격적으로 제시되었다. 이후 산미증식계획을 통해 미곡의 증산과 이출이 증대됨으로써 조선의 농업 생산구조는 미곡단작형 상업적 농업으로 바뀌었다.
다음으로 한국의 과학기술사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고대에는 고인돌과 고분벽화, 첨성대를 통해 천문학의 면모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통해 당시 뛰어난 인쇄기술을 살펴볼 수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고대보다 더욱 제도화된 천문관측, 원의 수시력을 도입했던 역법, 《팔만대장경》을 통해 알 수 있는 인쇄기술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 과학기술은 먼저 천문관측 기구와 시계의 창제를 들 수 있다. 또한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의 편찬으로 역법이 정비되었다. 개항 이후에는 동도서기적 입장에서 서양 과학기술의 도입이 주장되었고, 사람들을 청나라와 일본에 파견하였다. 광혜원이나 육영공원 등에서 과학의 교육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에는 교통과 통신시설, 건축물 등이 빠르게 발전되었다.
본 보고서는 한반도에서는 농경이 어떻게 시작하였고 변화하였는지, 그리고 사회와 역사 속에 존재하는 과학기술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그 주된 내용을 다루었다. 대부분의 역사 서적에는 이 두 주제에 대한 맥락적 서술보다는 사실 나열이 대부분이다. 앞으로 농업기술사와 과학기술사 전공자들의 연구 성과들과 어떤 관점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사에서 이 두 주제에 대해 맥락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Ⅴ. 참고문헌
· 전상운, 1992, 「조선전기의 과학과 기술: 15세기 과학기술사 연구 재론」, 『한국과학사학회지』14권
· 박성래, 1998,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교보문고
· 전상운, 2000.『한국과학사』, 사이언스북스
· 박성래, 2002, 「<수시력>수용과 <칠정산> 완성: 중국 원형의 한국적 변형」『한국과학사학회지』24권 2호
· 이호철, 2003, 「조선전기 농경기술의 전개」, 『조선시대 농업사 연구』, 국학자료원
· 구만옥, 2004, 「조선왕조의 집권체제와 과학기술정책: 조선전기 천문역산학의 정비 과정을 중심으로」, 『동방학지』124
· 전용훈, 2004, 「조선후기 서양천문학과 전통천문학의 갈등과 융화」, 서울대 박사논문
· 문중양, 2006, 『우리역사 과학기행』, 동아시아
· 박석두, 2008,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농업의 변모」, 『농업사 연구』7권 2호, 한국농업사학회
· 전국역사교사모임, 2008, 『역사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 휴머니스트
· 한국사연구회, 2008, 『한국사 길잡이 上』, 지식산업사
· 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2008,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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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6.18
  • 저작시기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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