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조조에 관한 인물조사 및 시대적 상황에관한 인물평가 - 조조 맹덕 (曹操 孟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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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지 조조에 관한 인물조사 및 시대적 상황에관한 인물평가 - 조조 맹덕 (曹操 孟德)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
2. 콤플렉스의 극복
3.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 능동적 자세
4. 인재의 등용과 이용
5. 국력을 강하게
6. 결론

본문내용

규모의 성을 쌓아 20년 분의 식량과 엄청난 보물들을 비축했었다. 이것으로 인해서 낙양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또한 오수전을 녹여 조그만 동전으로 주조했는데, 그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이고 모양도 형편없었다고 한다. 돈을 너무 많이 찍은 관계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서 후한의 경제는 혼란에 빠졌고 화폐경제는 이후 한동안 회복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통일제국의 기본적인 시스템은 화폐경제로 운영되지만 동탁은 동전을 대량으로 발행시켰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화폐경제는 붕괴되었다. 여기에 정부가 통제력을 잃으면서 중국의 경제는 크게 후퇴하게 되었다.
이를 복원하기위해 조조는 둔전제를 실시한다. 매일같이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죽었으며 땅은 주인을 잃었다. 조조는 이 버려진 땅과 적대 세력을 물리치고 얻은 토지를 둔전으로 경영하고 하천 유역에는 수리시설을 갖추어서 경작지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었다.
둔전을 일구는 사람들은 정복당한 주민들 이나 갈 곳 잃은 유민들, 가난한 빈민들이었는데 조조는 이들을 강제로 이주 시켜 일을 시켰다. 둔전민들은 호적에 포함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둔전민들은 둔전객, 아니면 아예 그냥 객이라고 불렸는데 일반 양민보다도 지위가 낮았고 차별받는 존재들이었다.
둔전을 하러 온다면, 물론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소나 종자 등은 관청에서 지급하였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데, 둔전민에게 겪는 세금은 자신의 소를 사용한다면 수확의 2분의 1, 만약 관청의 소를 빌려서 쓴다면 수확의 60%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였는데, 한나라 시대는 10분의 1을 넘어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부담은 가혹한 수준이었다. 대신, 둔전민들은 말 그대로 '굶어 죽지는 않을 정도'는 벌 수 있었고 더 이상의 착취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랜 전란으로 황폐하게 된 땅은 이렇게 개간되었고 국가는 부유해 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제도로 백성들의 삶이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국가는 경제를 회복할 수 있었고 이것은 위라는 나라를 세우는데 큰 기여를 하게되었다.
6. 결론
남보다 못한 환경과 여러 가지 콤플렉스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다른 군웅들보다 시대를 앞서 사고하고 행동했으며 개인의 역량으로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성장시켜 난세를 통일한 영웅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냉정한 판단으로 국가를 일으켜 세웠고 비록 도덕적인 영웅으로 평가 받을 수는 없지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과 정치로 난세를 평정한 영웅이라고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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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9.10
  • 저작시기2013.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36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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