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친일파 문제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친일파의 논의의 필요성과 개념
1) 친일파 논의의 필요성
2) 친일파의 개념
2. 친일파의 청산
1) 친일파 청산이 어려운 이유
2) 친일파 청산의 노력
3) 반민특위 세력과 백범 김구
4) 북한의 친일파 청산활동
5) 친일파 청산 방해공작
3. 친일행위의 불가피성 여부
1) 이광수와 신채호의 비교
2) 친일파의 딜레마
4. 현재 친일파 문제
Ⅲ. 결론
<참고문헌>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친일파의 논의의 필요성과 개념
1) 친일파 논의의 필요성
2) 친일파의 개념
2. 친일파의 청산
1) 친일파 청산이 어려운 이유
2) 친일파 청산의 노력
3) 반민특위 세력과 백범 김구
4) 북한의 친일파 청산활동
5) 친일파 청산 방해공작
3. 친일행위의 불가피성 여부
1) 이광수와 신채호의 비교
2) 친일파의 딜레마
4. 현재 친일파 문제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도 앞장섰다. 일제 강점기 동안 여러 친일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조선국방의회연합회의 충청북도 조직인 충청북도국방의회연합회 부회장, 조선신궁봉찬회 고문, 조선군사후원연맹 충북지부 부회장,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등을 두루 맡았고, 시중회에도 평의원으로 참가했다.[1] 중추원 참의로 있던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353명의 공로자 중 한 명으로 기재되어 있다.[2][3] 이 책자에는 "충청북도 청주의 거인으로 충북 제일의 지자(智者)요 인자(仁者)로, 아울러 충북에서 최고의 부호"라는 설명과 함께, 드물게 보는 인격의 소유자로서 사회 공익에 사재를 희사했다며 민영은에 대한 극찬이 실려 있다. 일본 천황이 베푸는 잔치에 초대되어 천은에 감읍하였다고도 적혀 있다.
의 후손들이 민영은의 토지를 돌려달라고 토지 소송을 하였다. 후손들이 반환을 요구하는 땅은 하루 수천대의 버스가 오고가는 도로이자, 서울 세종로에 비견될만한 청주 교통의 요지이다. 그런데 민영은 후손들은 이러한 주요 도로를 철거하는 것은 물론이고 원상복구까지 요구하고 나서고 있어 각계각층의 시민단체에서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 파헤쳐질 위기에 처한 도로, 만일 청주시가 소송에서 지게 된다면 청주 교통이 마비되는 것은 물론 청주 일대에 큰 혼란이 찾아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법원은 1심에서 민영은 후손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10월 22일 2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이러한 민영은 후손의 땅 찾기 소송에 민영은 외손자 권호정씨(61세)와 셋째 동생 호열씨는 17일 청주지법 앞에서 일부 후손의 토지반환 소송 취하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권씨는 “일부 후손의 토지소송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짓”이라며 “또 다른 후손으로서 이 소송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 나섰다”고 밝혔다.
또한 ‘친일파 민영은 후손들이 제기한 토지소송 반대 대책위원회’는 토지소송을 반대하는 시민 2만여명이 참여한 서명지를 청주지법에 제출하며 반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Ⅲ. 결론
친일파 청산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친일행위로 얻은 토지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하는 말도 안 되고, 양심을 찾아 볼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일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이다. 오히려 친일파들이 당당 해지고 있다. 친일파의 청산이 좌익세력의 음모나 정적 제거의 용도라는 이유로 친일파 청산이 불가능해지고, 기형적 이데올로기가 대한민국을 지배한 결과이기도 하다. 1945년 해방 후 7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 친일파 청산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일차증거자료 소실은 물론 친일파들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자손들에게 죄를 묻는다면 갑오개혁 때 폐지된 연좌제가 부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친일 행위로 얻은 자산을 돌려주는 것을 반대하는 행위는 너무도 당연한 행위이며 달성되어야 할 과제이다. 친일파 자산에 관한 국가로의 재산 환수 말고는 친일파를 처벌할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토론에서는 친일파 청산을 어떻게 해야 좋을 지 토론해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김상웅(1995) 친일파 100인 100문, 돌베개
반민족문제연구소, 친일, 그 과거와 현재-임종국 선집, 아세아문화사, 1994
반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 99인, 돌베게, 2009
이송희,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수요인문학강좌, 2002
이강수, 친일파 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민주사회정책연구원, 2006
천영준 기자, 친일파 민영은 외손, 일부 후손 토지반환 소송 반대 시위, 2013.10.17, 경향 신문
의 후손들이 민영은의 토지를 돌려달라고 토지 소송을 하였다. 후손들이 반환을 요구하는 땅은 하루 수천대의 버스가 오고가는 도로이자, 서울 세종로에 비견될만한 청주 교통의 요지이다. 그런데 민영은 후손들은 이러한 주요 도로를 철거하는 것은 물론이고 원상복구까지 요구하고 나서고 있어 각계각층의 시민단체에서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 파헤쳐질 위기에 처한 도로, 만일 청주시가 소송에서 지게 된다면 청주 교통이 마비되는 것은 물론 청주 일대에 큰 혼란이 찾아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법원은 1심에서 민영은 후손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10월 22일 2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이러한 민영은 후손의 땅 찾기 소송에 민영은 외손자 권호정씨(61세)와 셋째 동생 호열씨는 17일 청주지법 앞에서 일부 후손의 토지반환 소송 취하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권씨는 “일부 후손의 토지소송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짓”이라며 “또 다른 후손으로서 이 소송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 나섰다”고 밝혔다.
또한 ‘친일파 민영은 후손들이 제기한 토지소송 반대 대책위원회’는 토지소송을 반대하는 시민 2만여명이 참여한 서명지를 청주지법에 제출하며 반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Ⅲ. 결론
친일파 청산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친일행위로 얻은 토지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하는 말도 안 되고, 양심을 찾아 볼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일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이다. 오히려 친일파들이 당당 해지고 있다. 친일파의 청산이 좌익세력의 음모나 정적 제거의 용도라는 이유로 친일파 청산이 불가능해지고, 기형적 이데올로기가 대한민국을 지배한 결과이기도 하다. 1945년 해방 후 7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 친일파 청산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일차증거자료 소실은 물론 친일파들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자손들에게 죄를 묻는다면 갑오개혁 때 폐지된 연좌제가 부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친일 행위로 얻은 자산을 돌려주는 것을 반대하는 행위는 너무도 당연한 행위이며 달성되어야 할 과제이다. 친일파 자산에 관한 국가로의 재산 환수 말고는 친일파를 처벌할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토론에서는 친일파 청산을 어떻게 해야 좋을 지 토론해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김상웅(1995) 친일파 100인 100문, 돌베개
반민족문제연구소, 친일, 그 과거와 현재-임종국 선집, 아세아문화사, 1994
반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 99인, 돌베게, 2009
이송희,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수요인문학강좌, 2002
이강수, 친일파 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민주사회정책연구원, 2006
천영준 기자, 친일파 민영은 외손, 일부 후손 토지반환 소송 반대 시위, 2013.10.17, 경향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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