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세계대전의 발발(종전까지.)
2.패전이후 독일의 과거청산과정
3.과거와 현재 - 역사관 왜곡과 그로 인한 문제
4.역사가의 사명
2.패전이후 독일의 과거청산과정
3.과거와 현재 - 역사관 왜곡과 그로 인한 문제
4.역사가의 사명
본문내용
1900년대 초기 수년 동안에는 감응유전(感應遺傳: telegony) 이론을 수용한 지식인이 많았다. 이 이론은 '나쁜 피'가 한 인종의 혈통을 영원히 오염한다. 그것은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쁜 피가 좋은 피를 몰아낸다.'라는 이론이다. 그것은 오직 멸종만이 열성(劣性) 유전인자의 혈통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며, 그리 되면 진화도 한층 더 진전 될 것이라는 이론이었다.
-게걸음으로 가다' , 귄터그라스 (장희창 옮김), 민음사 2002
극중인물
나 : 직업은 기자이며 극중 서술자 , 빌헬름구스틀로프 호의 침몰과 동시에 출생
툴라 포프리프케 : 나의 어머니 , 빌헬름구스틀로프 호의생존자
가비 : 나의 아내
콘라트 : 나의 아들.
빌헬름구스틀로프 호 사건
'빌헬름 구스틀로프'란 이름은 유태인에게 살해당한 나치당원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소련의 역공을 받은 독일은 동부전선에서 밀리기 시작하고, 1천만에 달하는 독일인들이 피난길에 오른다.
1945년 1월 30일, 피난민과 부상병을싣고 피난길에 오른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소련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하게 된다. 단일 해상사고로는 최대사상자가 발생. 타이타닉호의 6배.
줄거리
할머니로부터 빌헬름 구스틀로프 호의 참상을 항상 듣고 자란 사춘기의 아들 콘라트는 인터넷에서 '피의증언'이란 사이트를 운영하며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사건에 대해, 독일의 패배에 대해 '유태인의 음모'라는 주장을 편다. 어느 날 콘라트는 온라인 상에서 자신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던 다비드(볼프강 슈트렘플린)와 만남을 갖고, 그 첫만남에서 다비드를 권총으로 쏘아 살해한다.
'나는 그 일을 되씹어야 했다. 그리고 아이로 하여금 그 저주받을 배를 그저 단순한 모형 장난감으로서 제때에 가지고 놀게 했더라면, 게다가 아버지답게 지도했더라면 내 아들이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고 자신에게 반문했다. ' (247쪽)
'그래, 우리는 과거와의 소통을 위한 말들을 사용해 왔다, 과거는 속죄되고 극복되어야 한다. 과거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한 노력을 다함을 뜻한다.'
독일의 역사에 있어 '빌헬름 구스틀로프 호'사건 같은 것은 이야기 되어져선 안 될 것들이었다. 허나 대다수가 외면하는 사이 그 사건들은 극우파들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독일에서 '역사적 터부'가 갖는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역사에 터부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건강한 역사관이 아니라는 것, 역사상의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4.역사가의 사명
"망각하려는 것은 유랑(流浪)"을 연장시키고, 기억이야말로 구원의 열쇠이다"--동유럽 유대운동의 신비주의자인 발 셈 토브(Baal Shem Tov)가 했다는 이 말은 전후 독일정치가들이 과거청산을 언급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구이다.
일본의 학자들이 식민사관을 주장하여 오늘날 우리가 입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신의 역사를 비하하고, 지금까지도 생활 곳곳에서 그릇된 지식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앞서 독일의 전쟁과 유태인 학살, 과거청산과정을 살펴보았다. 과연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역사관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가 학문의 영역에만 머물 수 있는 것인가? 역사가의 사명, 의무는 위의 두 질문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또 현재의 역사관이 가지는 문제점을 짚어내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경고하는데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의 과거청산정도와 역사를 바라보는 수준을 보여주는 예
낭만주의 浪漫主義
독일 獨逸
-게걸음으로 가다' , 귄터그라스 (장희창 옮김), 민음사 2002
극중인물
나 : 직업은 기자이며 극중 서술자 , 빌헬름구스틀로프 호의 침몰과 동시에 출생
툴라 포프리프케 : 나의 어머니 , 빌헬름구스틀로프 호의생존자
가비 : 나의 아내
콘라트 : 나의 아들.
빌헬름구스틀로프 호 사건
'빌헬름 구스틀로프'란 이름은 유태인에게 살해당한 나치당원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소련의 역공을 받은 독일은 동부전선에서 밀리기 시작하고, 1천만에 달하는 독일인들이 피난길에 오른다.
1945년 1월 30일, 피난민과 부상병을싣고 피난길에 오른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소련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하게 된다. 단일 해상사고로는 최대사상자가 발생. 타이타닉호의 6배.
줄거리
할머니로부터 빌헬름 구스틀로프 호의 참상을 항상 듣고 자란 사춘기의 아들 콘라트는 인터넷에서 '피의증언'이란 사이트를 운영하며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사건에 대해, 독일의 패배에 대해 '유태인의 음모'라는 주장을 편다. 어느 날 콘라트는 온라인 상에서 자신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던 다비드(볼프강 슈트렘플린)와 만남을 갖고, 그 첫만남에서 다비드를 권총으로 쏘아 살해한다.
'나는 그 일을 되씹어야 했다. 그리고 아이로 하여금 그 저주받을 배를 그저 단순한 모형 장난감으로서 제때에 가지고 놀게 했더라면, 게다가 아버지답게 지도했더라면 내 아들이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고 자신에게 반문했다. ' (247쪽)
'그래, 우리는 과거와의 소통을 위한 말들을 사용해 왔다, 과거는 속죄되고 극복되어야 한다. 과거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한 노력을 다함을 뜻한다.'
독일의 역사에 있어 '빌헬름 구스틀로프 호'사건 같은 것은 이야기 되어져선 안 될 것들이었다. 허나 대다수가 외면하는 사이 그 사건들은 극우파들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독일에서 '역사적 터부'가 갖는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역사에 터부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건강한 역사관이 아니라는 것, 역사상의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4.역사가의 사명
"망각하려는 것은 유랑(流浪)"을 연장시키고, 기억이야말로 구원의 열쇠이다"--동유럽 유대운동의 신비주의자인 발 셈 토브(Baal Shem Tov)가 했다는 이 말은 전후 독일정치가들이 과거청산을 언급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구이다.
일본의 학자들이 식민사관을 주장하여 오늘날 우리가 입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신의 역사를 비하하고, 지금까지도 생활 곳곳에서 그릇된 지식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앞서 독일의 전쟁과 유태인 학살, 과거청산과정을 살펴보았다. 과연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역사관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가 학문의 영역에만 머물 수 있는 것인가? 역사가의 사명, 의무는 위의 두 질문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또 현재의 역사관이 가지는 문제점을 짚어내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경고하는데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의 과거청산정도와 역사를 바라보는 수준을 보여주는 예
낭만주의 浪漫主義
독일 獨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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