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을 위한 교회사 [브루스 셸리 저] 일부요약, 만약 티베르 강이 넘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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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을 위한 교회사 [브루스 셸리 저] 일부요약, 만약 티베르 강이 넘친다면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4. 만약 티베르 강이 넘친다면..
로마의 정책
박해의 이유들
성과 비방
황제께서 곧 주님이시다.


5. 역사의 변호: 정통 신앙의 기원
신앙과 신학
가짜의 복음들
지식의 인간들
지식의 위험


7. 죄인들을 위한 학교: 감독들의 권위
교회의 지도자들
감독들의 위치
용서 받지 못할 죄에 관한 문제
성자들의 탄생


8. 지성인들의 사도: 알렉산드리아인들
세상의 빛
철학자들을 위한 목자
오리겐과 진리에의 갈구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9. 제왕의 홀을 내리다
제국의 변환
기독교인들을 화형장으로
기독교의 새로운 수도
교회가 세력을 잡다


10. 삼위일체 교리의 정립
신비의 해석
진정한 하나님 가운데 진정한 하나
하나 속에 셋인 존재


11. 임마누엘! : 신앙고백들 속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시다
그리스도에 관한 중요한 이단들
진리의 영역을 확정하다

본문내용

교 예배의식에서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건한 학자들에게는 아직도 중요한 숙제가 남아있었다. 사도들은 일찍이 그리스도에 대해 말해와다. 2,3세기의 신자들은 에비온주의와 영지주의를 배격했다. 성육신의 의미에 관한 4,5세기의 논쟁들은 감히 그리스도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지혜로는 분류할 수 없으며, 설명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들의 신앙고백문들이나 신경들이 뛰어난 점은 이러한 신비를 훼손시키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러나 인간들의 “성숙지 못한 감수성”의 반항으로 인간들은 이러한 니케아, 칼케돈 신경들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알렉산드리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안디옥인들은 그리의 인성을 보다 강조했다. 알렉산드리아인 중 하나인 오리겐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며 “신=인”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그는 신적인 말씀(로고스)를 중심으로 한 심오하고, 열렬한 신비주의를 이룩했다. 그 후 닛사의 그레고리는 로고스이신 그리스도-한분의 신적인 인간-께서 자신 속에서 신성과 인성을 한데 연합하였다고 가르쳤다. 양성은 각각 존재하며, 서로 구별된다. 이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두 본질의 속성들이 서로 교환될 수 있도록 배열되어 있다.
안디옥 학파는 성경을 보다 단순하고 역사적인 양식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복음서에 나타난 인간적인 모습을 보다 더 강조하는 영향이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모범과 이루신 사역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덕들을 발견했기에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성을 보다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다. 안디옥 학파의 교훈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의 아들과 마리아의 아들들이 한데 연합하거나 결합하기 보다는 함께 동맹을 맺거나 그 세력을 모은 상태에 있는 두 개의 존재로서 이해되기 쉽게 되어 있었다.
성육신의 사건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세력 다툼이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중요한 이단들
아폴리나리우스 : 인간의 본질은 육체와 영혼을 포용한다. 성육신을 통해 신적인 말씀(로고스)이 인간의 몸 속의 사고하고 이성적인 영혼을 대체시키어 말씀과 그의 몸 사이에 “본질의 연합”을 이룩시켰다. 인간성은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그 영역이다. 그는 “신적인 말씀의 하나의 육신을 입은 성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러한 아폴리나리우스 이론에 대한 반론은 곧 제기되었다. 선택하고 죄를 지을 수 있는 인간 본성의 이성적 영혼을 대체하였다면, 인간이 어떻게 온전히 구원받을 수 있는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취함받지 않은 것은 복원될 수 없다” 이 가운데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두 번째공의회에서는 아폴리나리우스의 주장을 일거에 묵살했다.
네스토리우스 : 그는 마리아를 “하나님을 낳은자, 하나님의 모친”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하므로 그리스도가 두 위격을 연결한 듯이 주장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인성과 신성의 관계를 본질적 “연합”이 아니라 도덕적인 결합 혹은 의지들의 혼합처럼 파악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과 마리아의 아들, 두 아들로 분리시킨 적은 없었으나 예수의 인간적 행위들과 고통을 신성에 의거한 거승로 돌리기를 거부했다. “나는 성질들은 분리시켜서, 예배는 연합시켜서 주장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가 정죄받은 것은 교리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때문이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키릴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428년 말 키릴은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고, 네스토리우스의 입장을 지지하였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소집되었던 에베소 공의회에서 키릴은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하는 시리아 대표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그를 파문시키는데 성공했다. 시리아인들이 키릴은 정죄해으나, 로마의 대표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하여 키릴을 지지했다. 테오도시우스2세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네스토리우스를 수도에서 축출했고, 그는 450년 경 유배 중 이집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까지도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이 얼마나 이단이었는지, 얼마만큼이나 잘못된 이해와 해석의 희생자였는지 확실히 파악할 수 없다.
진리의 영역을 확정하다
에베소 회의(431) 얼마 후 제 3의 이단이 출현했다.
유티케스 : 그리스도안에 한 본질(단성론)을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그의 웅대한 신성속으로 용해되어버렸다. 유티케스는 그리스도께서 구세주로서 대속주로서 반드시 미리 갖추어야만 할 조건과 신비의 중심을 부인해버렸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플라비안은 유티케스를 회의에 소집하였으며, 그가 자기 주장을 철회하기를 거부하자 정죄하였다. 그러나 유티케스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디오스코루스의 지지를 받는데 성공했다. 티오스코루스의 진언에 따라 테오도시우스 2ㅔ는 다시 한번 “제국 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는 에베소에서 열렸는데(449), 여기서 유티케스의 위치를 복원시켰으나 전체 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교황 레오1세는 이를 “강도들의 회의”라고 불렀다. 그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지지하여 회의 소집을 제안했고, 테오도시우스의 후계자 마르시안 황제는 451년 칼케돈에서 제 4차 공의회를 소집했다. 400명의 감독들은 “강도 회의”의 조처를 비난하고 디오스코루스를 고발했다. 그후 대표들은 니케아 신경에 무엇을 첨가하는데 주저했으나 새로운 신앙과 신학적 정의를 표명했다. 교회는 아리우스에 대항하여 예수님이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아폴리나리우스에 대항하여 진정한 인간이심을, 유티케스에 대항하여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한데 연합하였을 때 제3의 본질로 변화되지 않았음을, 네스토리우스에 대항하여 예수님께서 분리, 분열되지 않으신 한 위격임을 주장하였다. 이때부터 로마 가톨릭, 프로텐스탄트, 정교회 대부분의 신자들은 특별하신 신-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구원의 기본적 토대를 위하여 칼케돈의 신앙고백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근동의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부인하며 단성론을 주장했고 동방 정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나가 이집트의 콥트교회를 조직하게 된다.
신성과 인성이 한 위격속에서 어떻게 연합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칼케돈에서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신경의 중요성은 진리의 경계를 확정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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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5.12
  • 저작시기2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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