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이익
1) 성호 이익의 생애
2) 이익의 역사 연구
3) 사학사적 의의
2. 안정복
1) 순암 안정복의 생애
2) 안정복의 역사관
3) 안정복과 동사강목
4) 사학사적 의의
3. 이익과 안정복
1) 이익이 안정복에게 끼친 영향
2) 이익과 안정복의 비교
Ⅲ. 결론
<참고문헌>
Ⅱ. 본론
1. 이익
1) 성호 이익의 생애
2) 이익의 역사 연구
3) 사학사적 의의
2. 안정복
1) 순암 안정복의 생애
2) 안정복의 역사관
3) 안정복과 동사강목
4) 사학사적 의의
3. 이익과 안정복
1) 이익이 안정복에게 끼친 영향
2) 이익과 안정복의 비교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회현실 속에서 사족 위주의 안정화를 생각하였던 안정복은 하학 위주의 학문관에 기반을 두고 역사를 바라보고자 하였다.
(4) 숭명배청(崇明排淸)의 허구화된 이념을 좆던 시대에 조선의 실학자로서 민족의 현실적 문제를 조명하고, 우리 민족이 중국과는 다른 역사적 존재임을 인식시키고자 하였다.
(5) 삼국사기, 고려사, 동국통감 등 중요한 역사서들은 대부분 관찬사서인데 반해, 동국통감은 올바른 역사서를 쓰고 싶다는 개인의 뜻으로 작성한 사찬사서이다. 분량이나 내용 면에서 앞의 사서들에 뒤지지 않는 책을 개인의 힘으로 고증과 사료의 수집을 통해 편찬한 안정복은 본격적인 최초의 역사가라고 할만하다.
3. 이익과 안정복
1) 이익이 안정복에게 끼친 영향
이익이 안정복의 스승인 만큼 안정복은 이익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먼저 안정복은 실학자로서 스승인 이익의 경세치용학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이를 계승, 발전 시켰다. 사실 안정복은 이익을 만나기 전부터 경세치용에 대해 관심이 깊었다. 그가 이익을 만나기 전에 썼던 임관정요(당시 안정복 27세), 하학지남(당시 안정복 29세)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임관정요에서는 학문과 정치가 별개의 것이 아님을 주장하였고, 하학지남에서는 하학의 중요성을 제시하였는데 양자 모두 경세치용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을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고 이후에 동사강목을 저술하면서는 보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역사서를 쓰기 위하여 역사적 고증에 특히 신경을 썼고, 사론에서 전근대적인 조선의 사회제도에 대해 비판 하였다. 이익의 삼한정통론을 안정복이 계승하였다는 사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 결과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마한이 멸망할 때까지는 삼국을 독자적 국가로서 처리하지 않고 마한의 예속국가였던 것처럼 서술하였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근대 및 현대의 역사학과는 다른 중세적인 역사학의 속성이었다. 이러한 정통론은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 중국 중심적인 사대주의에 대한 비판과 조선 중심의 역사를 중시하는 주체적인 역사의식으로 나타났다. 즉, 기존의 동국통감이나 삼국사기와 같은 성리학적 사관에 입각한 사서들이 유교의 명분론적 제약에 의해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옹호, 강조하였던 기존의 사관을 비판한 부분이 두 인물의 공통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익과 안정복의 비교
안정복은 생전에 자신만의 사론을 집대성한 역사서를 집필하였지만, 이익은 자신만의 독립된 사서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이 사실이 두 인물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은 되지 않겠지만 이익의 사론에 대한 해석을 그가 생전에 남긴 문장이나 편지, 시문, 성호사설과 같은 기타 서적을 통해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사학사적으로 아주 의미가 없진 않을 것이다. 이익과 안정복의 학문적 관점을 놓고 보았을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점은 학문적 성향이다. 스승인 이익에 비하여 안정복은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그 차이는 안정복이 동사강목에서 강목체를 선택한 부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강목체란 유교에서 중시하는 의리와 명분을 가장 중요시하는 서체이다. 이익은 도덕사관의 지양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으나, 안정복은 동사강목의 사론을 통해 대내적으로는 군신 간의 충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의(義)와 예(禮)를 중시하여 성리학의 전통을 따르는 등 사뭇 도덕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정복이 강목체를 선택한데 있어서, 안정복 자신이 성리학적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강목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전하고, 사실에 입각한 적극적인 역사 해설을 하기 위해서라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곤 하나 동사강목에서 나타난 안정복의 성리학적인 명분을 강조한 측면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차이로 볼 수 있는 것은 천주교에 대한 시각이다. 이익은 천주교의 중심 교리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부분적으로 취할 점도 있다고 본 반면에 안정복은 좀 더 철저한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그가 천주교를 이단으로 본 이유는 천주교가 양반과 상민의 존재를 부정하고, 천당과 지옥이라고 하는 것을 들먹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Ⅲ. 결론
성호 이익과 순암 안정복은 18세기를 살아간 남인 학풍의 실학자들이다. 18세기는 남인들은 내부적으로 서로 분열하고 정치적으로 쇠퇴 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맞는다. 때문에 이익과 안정복은 관직에 나아가서 뜻을 펼치길 애초부터 포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호 이익은 제 1기의 경세치용 실학의 학문을 주도하였고, 안정복은 동사강목이라는 역사서를 만들어 사학사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말 그대로 속세를 떠나 초야에서 현실을 비판하고 학문에 정진하는 선비의 모습 그 자체이다. 많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진 두 인물이지만, 안정복이 이익의 문하에서 자신만의 학문관을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인 이익을 계승하는 요소가 있고, 동사강목을 창작함에 있어서 이익의 영향을 무단히 받았기에 그 둘을 완전히 분리해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조선 후기의 자주적 역사인식의 기틀을 잡은 이익과 이를 계승한 안정복으로 인해 중세적 역사인식을 극복하게 되었고, 과거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비판과 이를 뒷받침 하는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사학사적 의의가 크다. 결국, 성향의 차이는 있으나 두 실학자들은 당대의 학풍에 비해 진보적이었고, 자주적 역사인식을 강조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높였으며, 경세치용에 의한 실질적 사회개혁을 주장한 비판적 지식인들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강만길 외(1994) 한국사의 흐름 23책 - 한국사의 이론과 방법, 한길사
강명관(2011) 성호, 세상을 논하다, 자음과 모음
강세구(2000) 안정복의 역사이론 전개와 그 성격, 국사편찬위원회
김남현(2004) 성호이익시선, 예문서원
조동걸 외(1994)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상), 창작과 비평사
이익, 최석기 옮김(2007) 성호사설, 한길사
최영성, 성호사상의 종합적 검토-성호 이익의 역사인식, 한국철학사연구회, 1999
한국고전종합 DB, http://db.itkc.or.kr/
(4) 숭명배청(崇明排淸)의 허구화된 이념을 좆던 시대에 조선의 실학자로서 민족의 현실적 문제를 조명하고, 우리 민족이 중국과는 다른 역사적 존재임을 인식시키고자 하였다.
(5) 삼국사기, 고려사, 동국통감 등 중요한 역사서들은 대부분 관찬사서인데 반해, 동국통감은 올바른 역사서를 쓰고 싶다는 개인의 뜻으로 작성한 사찬사서이다. 분량이나 내용 면에서 앞의 사서들에 뒤지지 않는 책을 개인의 힘으로 고증과 사료의 수집을 통해 편찬한 안정복은 본격적인 최초의 역사가라고 할만하다.
3. 이익과 안정복
1) 이익이 안정복에게 끼친 영향
이익이 안정복의 스승인 만큼 안정복은 이익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먼저 안정복은 실학자로서 스승인 이익의 경세치용학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이를 계승, 발전 시켰다. 사실 안정복은 이익을 만나기 전부터 경세치용에 대해 관심이 깊었다. 그가 이익을 만나기 전에 썼던 임관정요(당시 안정복 27세), 하학지남(당시 안정복 29세)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임관정요에서는 학문과 정치가 별개의 것이 아님을 주장하였고, 하학지남에서는 하학의 중요성을 제시하였는데 양자 모두 경세치용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을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고 이후에 동사강목을 저술하면서는 보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역사서를 쓰기 위하여 역사적 고증에 특히 신경을 썼고, 사론에서 전근대적인 조선의 사회제도에 대해 비판 하였다. 이익의 삼한정통론을 안정복이 계승하였다는 사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 결과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마한이 멸망할 때까지는 삼국을 독자적 국가로서 처리하지 않고 마한의 예속국가였던 것처럼 서술하였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근대 및 현대의 역사학과는 다른 중세적인 역사학의 속성이었다. 이러한 정통론은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 중국 중심적인 사대주의에 대한 비판과 조선 중심의 역사를 중시하는 주체적인 역사의식으로 나타났다. 즉, 기존의 동국통감이나 삼국사기와 같은 성리학적 사관에 입각한 사서들이 유교의 명분론적 제약에 의해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옹호, 강조하였던 기존의 사관을 비판한 부분이 두 인물의 공통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익과 안정복의 비교
안정복은 생전에 자신만의 사론을 집대성한 역사서를 집필하였지만, 이익은 자신만의 독립된 사서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이 사실이 두 인물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은 되지 않겠지만 이익의 사론에 대한 해석을 그가 생전에 남긴 문장이나 편지, 시문, 성호사설과 같은 기타 서적을 통해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사학사적으로 아주 의미가 없진 않을 것이다. 이익과 안정복의 학문적 관점을 놓고 보았을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점은 학문적 성향이다. 스승인 이익에 비하여 안정복은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그 차이는 안정복이 동사강목에서 강목체를 선택한 부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강목체란 유교에서 중시하는 의리와 명분을 가장 중요시하는 서체이다. 이익은 도덕사관의 지양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으나, 안정복은 동사강목의 사론을 통해 대내적으로는 군신 간의 충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의(義)와 예(禮)를 중시하여 성리학의 전통을 따르는 등 사뭇 도덕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정복이 강목체를 선택한데 있어서, 안정복 자신이 성리학적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강목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전하고, 사실에 입각한 적극적인 역사 해설을 하기 위해서라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곤 하나 동사강목에서 나타난 안정복의 성리학적인 명분을 강조한 측면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차이로 볼 수 있는 것은 천주교에 대한 시각이다. 이익은 천주교의 중심 교리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부분적으로 취할 점도 있다고 본 반면에 안정복은 좀 더 철저한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그가 천주교를 이단으로 본 이유는 천주교가 양반과 상민의 존재를 부정하고, 천당과 지옥이라고 하는 것을 들먹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Ⅲ. 결론
성호 이익과 순암 안정복은 18세기를 살아간 남인 학풍의 실학자들이다. 18세기는 남인들은 내부적으로 서로 분열하고 정치적으로 쇠퇴 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맞는다. 때문에 이익과 안정복은 관직에 나아가서 뜻을 펼치길 애초부터 포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호 이익은 제 1기의 경세치용 실학의 학문을 주도하였고, 안정복은 동사강목이라는 역사서를 만들어 사학사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말 그대로 속세를 떠나 초야에서 현실을 비판하고 학문에 정진하는 선비의 모습 그 자체이다. 많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진 두 인물이지만, 안정복이 이익의 문하에서 자신만의 학문관을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인 이익을 계승하는 요소가 있고, 동사강목을 창작함에 있어서 이익의 영향을 무단히 받았기에 그 둘을 완전히 분리해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조선 후기의 자주적 역사인식의 기틀을 잡은 이익과 이를 계승한 안정복으로 인해 중세적 역사인식을 극복하게 되었고, 과거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비판과 이를 뒷받침 하는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사학사적 의의가 크다. 결국, 성향의 차이는 있으나 두 실학자들은 당대의 학풍에 비해 진보적이었고, 자주적 역사인식을 강조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높였으며, 경세치용에 의한 실질적 사회개혁을 주장한 비판적 지식인들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강만길 외(1994) 한국사의 흐름 23책 - 한국사의 이론과 방법, 한길사
강명관(2011) 성호, 세상을 논하다, 자음과 모음
강세구(2000) 안정복의 역사이론 전개와 그 성격, 국사편찬위원회
김남현(2004) 성호이익시선, 예문서원
조동걸 외(1994)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상), 창작과 비평사
이익, 최석기 옮김(2007) 성호사설, 한길사
최영성, 성호사상의 종합적 검토-성호 이익의 역사인식, 한국철학사연구회, 1999
한국고전종합 DB, http://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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