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변화 시킨 인물 선택하여 조사하기 - 조조 맹덕 (曹操 孟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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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을 변화 시킨 인물 선택하여 조사하기 - 조조 맹덕 (曹操 孟德)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조를 선택하게 된 선정 동기 .......... 2


2. 조조에 대한 기존 연구 및 평가 .......... 2


3. 본문 (조조의 시대적 배경 및 업적) ..... 3


4. 결론 ................................... 7


참고 문헌 .............................. 8

본문내용

. 198년 조조는 장수, 유표의 연합군을 안중에서 격파하고, 하비에서는 여포를 사로잡아 처형한다. 다음해에는 원술을 토벌하고 장수를 다시 굴복시켜 그를 받아들였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이때 조조는 군사를 몰아 장성을 넘어 모돈(冒頓 또는 묵돌)을 죽였다고 한다. 모돈은 기원전 209년부터 기원전 174년까지 흉노의 선우(대족장)를 지냈던 사람으로 조조와는 4백년 가까이 시차가 있는 인물이다. 조조의 모돈 살해는 나관중이 삼국지연의에서 꾸며낸 이야기다.
이후, 적벽대전에서 천하통일을 향한 야심을 품고 전쟁을 일으켰으나, 그때마다 조운, 장비, 관우에게 차례로 습격당한다. 이후 중국 대륙은 위, 촉, 오 삼국의 삼국 시대에 접어들어 완전한 통일의 꿈이 멀어지지만 조조의 우세한 세력 기반은 변하지 않았다.
(4) 삼국정립과 조조의 죽음
210년에 조조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求賢令. 201년에 조조가 천하통일을 야심으로 두고 신분을 막론하고 실시했던 대규모 인재등용 방침.
구현령과 위나라 내에서 수여받은 4현 3만 호 가운데 3현 2만 호를 황제에게 반환하고, 제위 찬탈 등 야망이 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제도.
술지령을 공포한다. 213년 위공(魏公)으로 책봉되었고, 216년 조조가 위왕(魏王)에 봉해지면서 위나라의 건국이 이루어졌다. 헌제는 사실상 허수아비였으며 이 무렵 후한의 실권자는 조조였으나 황제가 되지는 않고 죽을 때까지 위왕으로 남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비판도 만만찮다. 조조의 위공 취임을 반대한 순욱에게 자살을 명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자신의 의지에 반대하는 자는 비록 공로자라고 할지라도 가차없이 처분했다는 것이다.
211년 마초와 한수 등이 관중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조조가 토벌에 나섰다. 그런데 군대가 먼저 강을 건너 세력이 약해진 틈에 마초에게 습격당하여 위기에 빠졌지만 다행히 허저의 도움으로 구조된다. 결국 가후의 이간책으로 마초와 한수 사이가 벌어지게 하여 적을 물리치고 관중을 평정한다. 212년 오나라 정벌에 나서고 다음해 유수구에서 격파한다. 이때 다시 군사를 일으킨 마초를 토벌, 215년에는 한중의 장로를 항복시키는 등 매년 지칠 줄 모르고 전투를 벌였다.
217년에는 손권과 다시 싸우고 219년 유비에게 한중을 빼앗기지만, 대신 손권과 연대해 형주의 관우를 멸한다. 관우가 죽은 이듬해, 220년 1월 23일, 조조가 낙양에서 향년 66살의 나이로 서거했다.
한편 문인으로서도 뛰어났던 조조는 훗날 아들 조비, 조식과 함께 당대의 문학계의 이름 있는 사람들이라 해서 삼조(三曹)라 불리기도 한다.
4. 결론
지금까지 조조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 아마 세상에 태어나서 조조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끼리 얘기하다가 "에라이! 조조 같은 놈!" 것과 같은 꾸중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때는 조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괜한 꾸중에 조조라는 얘기만 들으면 안 좋은 인식이 심어지게 되었을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조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얘기를 듣게 되면 화를 내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 능력을 부풀려 칭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줬으면 좋겠다.
분명 조조는 중국 후한 말 하루하루를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대 혼란기를 맞아, 감히 누구도 넘길 수 없는 공적을 남긴 인물이다. 이러한 시기에 조조는 백성을 위하여 민심을 개혁하는 방안을 만들어 성공적 정책을 많이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나, 중원통일 과정은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치밀한 전략 및 전술 창조, 뛰어난 지도력이 밑거름이 되었다.
나는 이번과제를 통해서 느낀 것은, 다시 한 번 조조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세계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동양에서는 이미 모든 이들의 정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조조라는 인물을 통해서 허구적 기록 때문에 간사한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는 현재 실체 보다는 오히려 후세 사람들이 조조에게 배울게 많다는 걸 알려 주고 싶다. 인간적이고 열정적 이었으며 역대 중국 왕조들과 빗대어 봐도 누구보다도 더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조를 넘는 이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과제를 마치면서 요약을 하자면, 그는 불의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자신의 안일이나 영광을 보지 않았으며, 그리고 중국문화의 발전에 지울 수 없는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 참고 문헌 : "人間 조조" 이재하 지음 - 바다 출판사 -
"조조 병법" 유동환 지음 - 바다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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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4.12.29
  • 저작시기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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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4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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