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생애
사상
학문관
논어 구절
노자가 본 공자
관직생
사상
학문관
논어 구절
노자가 본 공자
관직생
본문내용
는 것 역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 군자는 기본에 힘쓴다. 기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己所不欲 勿施於人
: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다.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
: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
6. 노자가 본 공자
공자가 젊었을 때 주나라의 서울인 낙읍에 간 일이 있었다. 그때 공자가 노자를 만났는데 노자에게 예(禮)에 관해서 물었더니 노자가 말했다.
" 그대가 말하는 성현들은 그 육신과 뼈가 모두 이미 썩어버리고 단지 그 말만 남아있을 뿐이요. 하물며 군자도 그깨를 만나면 관직에 나아가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이리저리 날려다니는 다북쑥처럼 떠돌아다니는 유랑의 신세가 될 것이오. 뛰어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히 숨겨두고 겉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이 보이고 군자는 훌륭한 덕을 간직하고 있으나 외모는 어리석게 보인다고 들었소. 그대의 교만과 탐욕, 허세와 지나친 욕망을 버리도록 하시오. 이러한 것들 모두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내가 그대에게 말할 것은 다만 이것뿐이요."
서로 헤어지게 되어 공자가 노자에게 작별 인사를 했더니 노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내가 들으니 부귀한 자는 사람을 전송할 때 재물로써 하고 어진 사람은 전송할 때 말로써 한다고 합니다. 나는 부귀하지는 못하나 인자(仁者)로 자처하기를 좋아하니 그대에게 이러한 말을 하면서 전송하렵니다. `총명하고 깊게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위험이 따르는데 이는 남을 잘 비판하기 때문이요,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그 몸이 위태로운데 이는 남의 결점을 잘 지적해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자녀된 자는 아버지 뻘 되는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사람의 신하된 자는 임금 앞에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는 법입니다. "
노자는 공자를 만나고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 새는 잘 날 수 있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칠 수 있으며 들짐승은 잘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달리는 들짐승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로 낚을 수 있으며 나는 새는 화살로 잡을 수가 있다. 그러나 용은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용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구나. 오늘 내가 노자를 만나보니 그는 마치 용과 같은 사람이었다."
7. 공자의 관직생활
.B.C. 496년(56세 때) 정승의 일까지 겸직하게 된 공자는 관리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대부 소정묘를 처형했다. 이렇게 되자 이웃 제나라에서는 노나라의 국력이 비대해짐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들은 대부 여서의 책략을 채택하여 노래와 춤에 능한 미녀 80명과 말 120필을 노에 보냈다. 정공과 계환자는 이 선물을 받고 사흘이나 조회를 열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공자는 이들과는 큰일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벼슬을 버린다.자신의 경륜을 펼치기 위해 주유천하의 길을 나선 공자는 위·조·송·정·진·채·초를 방문하였다. 공자는 여행 중 여러 차례 고난과 박해를 당해야 했다. 그는 송나라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겪었고, 또한 광에서는 양호로 오인되어 닷새 동안 잡혀 있기도 했다. 또한 진·채에서는 7일간이나 양식이 떨어져 고생하였다. 이렇게 공자는 13년 동안이나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자기의 도덕정치를 채택할 임금을 찾았으나 끝내 만날 수 없었다. 당시의 제후들은 공자의 주장을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으로만 생각했다.그것은 이들이 무력에 의한 영토 확장과 권모술수에 의한 권력 유지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제후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공자는 후진의 교육을 위해 13년 동안의 유랑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노나라에 돌아온다.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 군자는 기본에 힘쓴다. 기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己所不欲 勿施於人
: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다.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
: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
6. 노자가 본 공자
공자가 젊었을 때 주나라의 서울인 낙읍에 간 일이 있었다. 그때 공자가 노자를 만났는데 노자에게 예(禮)에 관해서 물었더니 노자가 말했다.
" 그대가 말하는 성현들은 그 육신과 뼈가 모두 이미 썩어버리고 단지 그 말만 남아있을 뿐이요. 하물며 군자도 그깨를 만나면 관직에 나아가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이리저리 날려다니는 다북쑥처럼 떠돌아다니는 유랑의 신세가 될 것이오. 뛰어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히 숨겨두고 겉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이 보이고 군자는 훌륭한 덕을 간직하고 있으나 외모는 어리석게 보인다고 들었소. 그대의 교만과 탐욕, 허세와 지나친 욕망을 버리도록 하시오. 이러한 것들 모두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내가 그대에게 말할 것은 다만 이것뿐이요."
서로 헤어지게 되어 공자가 노자에게 작별 인사를 했더니 노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내가 들으니 부귀한 자는 사람을 전송할 때 재물로써 하고 어진 사람은 전송할 때 말로써 한다고 합니다. 나는 부귀하지는 못하나 인자(仁者)로 자처하기를 좋아하니 그대에게 이러한 말을 하면서 전송하렵니다. `총명하고 깊게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위험이 따르는데 이는 남을 잘 비판하기 때문이요,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그 몸이 위태로운데 이는 남의 결점을 잘 지적해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자녀된 자는 아버지 뻘 되는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사람의 신하된 자는 임금 앞에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는 법입니다. "
노자는 공자를 만나고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 새는 잘 날 수 있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칠 수 있으며 들짐승은 잘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달리는 들짐승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로 낚을 수 있으며 나는 새는 화살로 잡을 수가 있다. 그러나 용은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용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구나. 오늘 내가 노자를 만나보니 그는 마치 용과 같은 사람이었다."
7. 공자의 관직생활
.B.C. 496년(56세 때) 정승의 일까지 겸직하게 된 공자는 관리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대부 소정묘를 처형했다. 이렇게 되자 이웃 제나라에서는 노나라의 국력이 비대해짐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들은 대부 여서의 책략을 채택하여 노래와 춤에 능한 미녀 80명과 말 120필을 노에 보냈다. 정공과 계환자는 이 선물을 받고 사흘이나 조회를 열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공자는 이들과는 큰일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벼슬을 버린다.자신의 경륜을 펼치기 위해 주유천하의 길을 나선 공자는 위·조·송·정·진·채·초를 방문하였다. 공자는 여행 중 여러 차례 고난과 박해를 당해야 했다. 그는 송나라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겪었고, 또한 광에서는 양호로 오인되어 닷새 동안 잡혀 있기도 했다. 또한 진·채에서는 7일간이나 양식이 떨어져 고생하였다. 이렇게 공자는 13년 동안이나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자기의 도덕정치를 채택할 임금을 찾았으나 끝내 만날 수 없었다. 당시의 제후들은 공자의 주장을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으로만 생각했다.그것은 이들이 무력에 의한 영토 확장과 권모술수에 의한 권력 유지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제후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공자는 후진의 교육을 위해 13년 동안의 유랑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노나라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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