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조선적 기독교- 조선적의 문제 조선적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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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회사] 조선적 기독교- 조선적의 문제 조선적 운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그러나 최태용은 늘 자기 안에 서양과 일본도 아닌 ‘자기신학’을 구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태용은 1935년 복음교회를 창설하고 조선인의 교회를 시작한다.
이용도는 구체적으로 자신이 속한 감리교회에서 이탈하여 독자적인 교회를 운영할 의사가 없었다. 그러나 기존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고 새로운 신앙운동을 표방했기 때문에 서북 장로교회의 심한 견제를 받았다. 이용도를 따라 나온 다수의 평양 신도들이 예수교회의 평양파를 형성하였다. 예수교회의 또 다른 흐름은 원산파인 백남주, 한준명, 그리고 유명화다. 백남주, 한준명은 선다 싱과 스베덴보리의 사상에 한 동안 심취해 있었는데 그 때 입신과 예언을 하는 유명화를 만남으로써 신학적 궁합이 맞아 떨어졌다. 이용도, 이호빈, 백남주, 한준명, 유명화를 주축으로 해서 1933년 예수교회가 설립된다. 예수교회 초기 교회의 교리와 신학은 모두 원산파가 설계하였다.
5. 결론
당시 장로교나 감리교나 분립하는 교회에 대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는 교회가 갈라지고 교회 안에 갈등이 존재하는 실재적인 문제였다. 큰 상처였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을 ‘이단’으로 정죄해 버린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행위는 조선교회가 서구교회와 서구신학의 영향력 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였다. 일부 교단의 인식은 현재진형형이다. 이들에게 조선적 기독교는 단지 교회 분립이며, 이단일 뿐이다. 자신의 자리를 성찰하고 역사적 재평가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뼈아픈 일이다. 그러나 이들 소종파에게 한국 교회사에서 조선적 기독교를 추구한 이들이었다는 역사적 자리는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소종파는 이단으로 전락하면 주류가 되지 못하는 이상 비주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가톨릭교회나 프로테스탄트 교회 안에 이단적 행위는 많았다. 그러나 이들을 이단으로 정죄할 수 있는 상위 기구는 존재하지 않았다(물론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되었으나 프로테스탄트가 주류가 되어 이를 극복하였다. 프로테스탄트가 주류가 되지 못했다면 우리 또한 가톨릭 교회사의 한 이단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교회사학자는 정통과 이단, 正과 邪를 구분 짓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자리다. 교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객관적으로 밝히고, 그들의 역사적 위치를 자리매김해 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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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2.02
  • 저작시기2019.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79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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