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인간학 강좌 포트폴리오 모음 (주제- 몸 자유 의식주 소외 고통 예술의 인간학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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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철학적 인간학 강좌 포트폴리오 모음 (주제- 몸 자유 의식주 소외 고통 예술의 인간학적 의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서 살아가게끔 만드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人'이라는 글자 그대로, 서로 돕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 존재의 본래적 의미를 가장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인간학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 그것이 훌륭한 교육의 기준인 것이다.
그러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했던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과 정반대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루소의 견해와 일치하는 맥락이다. 교육은 인간의 자유를 질서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억압한다. 개인이 내재하고 있는 흥미와 욕구를 획일화하고, 본래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한다. 이러한 일련의 교육과정은 공장에서 기계를 생산해내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오랫동안 받은 사람일수록 계산적이고 차갑게, 즉 인간답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반대로 근대적 교육제도와는 거리가 먼 조부모님이나 오지세계의 사람들을 더 인간다운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왜 그런가? 교육 현장에서 인간다움이라는 가치가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보다 물질, 너 보다 내가 중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훌륭한 인격을 만드는 것 보다 돈 잘버는 법을 가르치고, 학생은 남을 이기기 위해서 공부한다. 그런 학교에서 교육받은 인간이 인간다움과 멀어지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칸트는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인간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교육을 통해서 누적되어온 역사의 지혜를 배울 수 있으므로, 그 말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육도 교육 나름이다. 교육은 인간을 타락시킬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이 바르게 가기 위한 조건은 매우 폭넓고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라고 생각한다. 향기로운 꽃이 있는 곳에 벌이 모여들 수밖에 없듯이, 훌륭한 교사가 있는 곳에는 좋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때 향기로운 꽃에 대응되는 교사의 개념은, 인간다운 교사다. 인간다움이란 끊임없이 탐구해야하는 개념이므로, 그것을 명확하게 규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다운 교사는 물질적 가치 이전에 내면의 인격을 먼저 생각하고, 경쟁의 승리보다 조화로움과 협력을 우선시한다. 사회 전체가, 교육까지도 물질 문명에 물들어 인간다움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 그런 과정이 계속된다면, 세상은 병들고 썩어서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세태에서 교사는 인간다움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어야하며, 바다의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한다.
철학적 인간학 6/11
예술의 인간학적 의미- 상상력과 인간
인간의 모든 활동 중에서 가장 인간다운 활동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예술'일 것이다. 인간 이외의 다른 어떤 존재도 예술 활동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너무나도 어렵고 포괄적인 질문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관점을 조금 좁혀서, 인간의 어떤 능력이 예술을 가능케 하는 것일까? 여기에도 다양한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그것이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상상력이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것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으로서,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으로서의 지성을 포괄하는 동시에 그것과는 다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즉, 상상력은 인간 정신활동의 근본이자 핵심이 되는 능력이다. 예술을 가능케 하는 상상력, 혹은 상상력을 통하여 이루어진 예술. 이것은 인간을 다른 존재들과 구별 짓고, 나아가 인간다움의 정도를 측정하는 결정적 기준으로 여겨진다.
예술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상상력, 그리고 상상력을 가진 인간을 설명하는 데 있어 다시 한 번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언급하고자 한다. 인간 존재가 無인 이유는 전적으로 인간이 상상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상은 그리움이고, 인간은 없는 것을 그린다. 즉, 상상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그 마음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며, 인간이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예술이다. 그리고 그 상상, 그 그리움은 영원히 온전하게 채워질 수는 것이기에 인간의 존재는 無이다. 진리를 찾기 위해 개와 같은 삶을 선택했던 디오게네스, 자유를 꿈꾸며 목숨을 내걸었던 프랑스 혁명의 시민들,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모진 고통을 감수했던 이순신 장군, 진학을 위해 취업을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는 학생들, 연인을 찾는 젊은이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모든 사람들..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다. 상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상상의 개념을 인간다움이라기보다, 욕심에 가까운 것으로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상상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단지 상상의 내용이 다를 뿐이다. 스님들도 상상을 하고, 자살하는 사람들도 상상을 한다. 다만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삶을 마감하고자 하는 상상일 뿐. 이처럼 인간인 이상 우리는 모두 상상을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상상은 일회적이지 않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상상을 하면서, 그리워하면서 살게끔 프로그래밍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노래했고, 그것을 향하는 마음이 '슬프고도 애달프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비록 슬픈 것일 수는 있어도, 아름답다.
만약 인간에게 상상력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력이라는 단 하나의 능력을 제거함으로써 인간이 이룩한 문명을 멸망시키고, 인간의 존재를 다른 동물들과 대등하게 만드는 일이 가능하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만큼 인간은 유일하게 상상력을 가진 존재며, 그 상상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활동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이렇듯 예술은 상상력의 증거이자, 인간됨의 증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은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예술이 된다. 그런 맥락에서 상상력은 신께서 진흙으로 우리를 빚고 난 후에 불어넣으신 바로 그 생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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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19.02.21
  • 저작시기2017.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8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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