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윤리적 상대주의의 등장
(2) 상대주의 분석
1) 다양성 논제
2) 의존성 논제
3) 상대주의와 도덕성
(3) 주관적인 윤리적 상대주의 (주관주의)
(4) 관례적 윤리적 상대주의 (관례주의)
(5) 윤리적 상대주의 비판
1)다양성 논제 비판
2)의존성 논제 비판
3)번역의 불확정성에 대한 논증
(6) 결론
(2) 상대주의 분석
1) 다양성 논제
2) 의존성 논제
3) 상대주의와 도덕성
(3) 주관적인 윤리적 상대주의 (주관주의)
(4) 관례적 윤리적 상대주의 (관례주의)
(5) 윤리적 상대주의 비판
1)다양성 논제 비판
2)의존성 논제 비판
3)번역의 불확정성에 대한 논증
(6) 결론
본문내용
은 오히려 영어를 더욱더 풍부하게 해 준다. 그렇게 보면 번역의 불확정성이 언어 사용자들간에 일부 존재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사실로부터 번역이나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비교 문화적으로 의사 소통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삶 속에 중요한 많은 것들에 동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상대주의가 의존하고 있는 번역 불확정성론은 객관적 도덕에 대한 이의가 없을 때까지 그 스스로 상대화 되어야 한다.
상대주의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쨌거나 모든 원칙들이 본질적으로 문화적 고안물이라는 강한 의존성 논제이다. 그러나 왜 우리가 이런 식으로 도덕을 바라보아야 하고 또 약한 의존성 논제보다 강한 의존성 논제를 꼭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느 한 체계를 옹호하기 위해 추론하고 사고 실험을 해 볼 수 있으며 이것을 믿는 데에 있어서 정당화 될 수는 있다. 우리는 왜 도덕적 문제에 관하여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까. 왜 어느 한 문화를 이해하면서 그르다고 왜 말할 수 없는가. 자신의 자식들을 죽게 내버려두는 문화가 타 문화보다 덜 도덕적이라고 왜 말할 수 없는가.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의 습속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 이상을 통하여 원칙들을 추론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렇게 입장을 취하는 것은 종족중심주의가 아니다.
◆◆ 의존성 논제는 앞에서도 이미 나왔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상대주의자 들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화살인 번역의 불확정성. 상대주의자들은 언어가 서로 너무 상이해서 우리가 정확히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우선 그것은 절대적인 가에 의문이 들었다. 만약 우리가 화자와 번역자간에 공통성을 획득할 수 있으면 번역의 불확정성에 대해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화자와 번역자간의 대화에서의 동시에 관찰되는 상황, 또는 그 말에 대한 화자와 번역자간의 동일성. 사실 이 두가지는 판단이 객관적인지 주관적인지 너무 애매해서 판단하기 힘들어 보인다. 본문에 가바가이(gavagai)에 대한 예에 대한 실험을 TV에서 본적이 있다.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화면을 가르키며 가바가이라고 외친다. 물론 화면에는 토끼가 있다. 사람들은 토끼라고만 대답한 것이 아니라 토끼의 일부분이나 토끼와 관련된 다른 사물, 토끼와 관련된 말로 이해하는 등 제각기 달랐다. 그럼 그 말을 번역할 때 상황과 자극에 따라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 번역자가 가바가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화자의 자극정도를 보고 동일 자극이 나왔을 때 그 의미를 획득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번역의 불확정성은 상대주의자의 큰 무기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번역이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6) 결론
윤리적 상대주의는 얼핏 보기에는 적절해 보이지만 주관주의는 결국에 도덕적 관점의 개인 상호간의 특징을 본질적으로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로 빠지는 것으로 보인다. 또 관례주의는 개혁가의 문제, 문화를 정의하는 문제 그리고 도덕적 비평의 전(全) 작업등을 적절히 다루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도덕적 객관주의가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할 수 없다면, 상대주의는 이들 비판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 상대주의에 대한 글에 대해 분석과 사고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과연 상대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상대주의에서는 참인 것이 어떤 특정한 것을 뜻하는 게 아니고 누구의, 어떤 문화의 참인지를 묻는다. 그 어떤 주장이나 생각도 영원히 참이 될 수 없고 다른 곳에서는 거짓이 될 수도 있다. 또 상대주의는 모든 진리가 상대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반대와 비판과 따라서 상대주의의 문제점에 직면한다. 상대주의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여러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상대주의자가 더 옳아 보이기도 한다. 윤리적 상대주의를 정리하면서 좀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상대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객관주의자들이 펼치는 논박에 대해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논거를 갖추고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객관주의에 대한 문제점도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상대주의의 매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내가 윤리적 상대주의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남겨놓음으로써 앞으로 상대주의에 대한 내 생각을 차분히 정립해 보려고 한다.
상대주의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쨌거나 모든 원칙들이 본질적으로 문화적 고안물이라는 강한 의존성 논제이다. 그러나 왜 우리가 이런 식으로 도덕을 바라보아야 하고 또 약한 의존성 논제보다 강한 의존성 논제를 꼭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느 한 체계를 옹호하기 위해 추론하고 사고 실험을 해 볼 수 있으며 이것을 믿는 데에 있어서 정당화 될 수는 있다. 우리는 왜 도덕적 문제에 관하여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까. 왜 어느 한 문화를 이해하면서 그르다고 왜 말할 수 없는가. 자신의 자식들을 죽게 내버려두는 문화가 타 문화보다 덜 도덕적이라고 왜 말할 수 없는가.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의 습속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 이상을 통하여 원칙들을 추론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렇게 입장을 취하는 것은 종족중심주의가 아니다.
◆◆ 의존성 논제는 앞에서도 이미 나왔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상대주의자 들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화살인 번역의 불확정성. 상대주의자들은 언어가 서로 너무 상이해서 우리가 정확히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우선 그것은 절대적인 가에 의문이 들었다. 만약 우리가 화자와 번역자간에 공통성을 획득할 수 있으면 번역의 불확정성에 대해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화자와 번역자간의 대화에서의 동시에 관찰되는 상황, 또는 그 말에 대한 화자와 번역자간의 동일성. 사실 이 두가지는 판단이 객관적인지 주관적인지 너무 애매해서 판단하기 힘들어 보인다. 본문에 가바가이(gavagai)에 대한 예에 대한 실험을 TV에서 본적이 있다.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화면을 가르키며 가바가이라고 외친다. 물론 화면에는 토끼가 있다. 사람들은 토끼라고만 대답한 것이 아니라 토끼의 일부분이나 토끼와 관련된 다른 사물, 토끼와 관련된 말로 이해하는 등 제각기 달랐다. 그럼 그 말을 번역할 때 상황과 자극에 따라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 번역자가 가바가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화자의 자극정도를 보고 동일 자극이 나왔을 때 그 의미를 획득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번역의 불확정성은 상대주의자의 큰 무기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번역이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6) 결론
윤리적 상대주의는 얼핏 보기에는 적절해 보이지만 주관주의는 결국에 도덕적 관점의 개인 상호간의 특징을 본질적으로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로 빠지는 것으로 보인다. 또 관례주의는 개혁가의 문제, 문화를 정의하는 문제 그리고 도덕적 비평의 전(全) 작업등을 적절히 다루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도덕적 객관주의가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할 수 없다면, 상대주의는 이들 비판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 상대주의에 대한 글에 대해 분석과 사고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과연 상대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상대주의에서는 참인 것이 어떤 특정한 것을 뜻하는 게 아니고 누구의, 어떤 문화의 참인지를 묻는다. 그 어떤 주장이나 생각도 영원히 참이 될 수 없고 다른 곳에서는 거짓이 될 수도 있다. 또 상대주의는 모든 진리가 상대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반대와 비판과 따라서 상대주의의 문제점에 직면한다. 상대주의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여러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상대주의자가 더 옳아 보이기도 한다. 윤리적 상대주의를 정리하면서 좀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상대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객관주의자들이 펼치는 논박에 대해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논거를 갖추고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객관주의에 대한 문제점도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상대주의의 매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내가 윤리적 상대주의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남겨놓음으로써 앞으로 상대주의에 대한 내 생각을 차분히 정립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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