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주제 선택의 배경과 이유
1-1. 주제 초안의 생각
2. 민가의 입지와 부지의 선택
평지의 민가
산 지의 민가
해 변의 민가
성내의 민가
3. 생활에 뿌리 내리고 있는 일본의 민가
3-1. 실내에서 볼 수 있는 지혜
대나무로 만든 방과 천장 생활의 지혜
아마야라고 불리는 현관
도마-(부엌과 마루와 같은 역할) 와 도자- (온돌과 비슷한 역할)
3-2. 실외에서 볼 수 있는 지혜
시시창 – 집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창 (짐승이 오는 것을 봄)
돌 받침대
벽의 목적과 지혜
입구에 있는 작은 장소의 의미
지붕으로 드나드는 현관
3-3. 지붕의 지혜
입지에 적응한 지붕의 지혜
가야부키(억새로 엮어서 만든 지붕) 지붕의 구조
시바도라는 지붕의 보강방법과 위안 효과
4. 민가의 보청(普請)
5. 민가에 있어서 불의 역할
부뚜막의 역할
이로리의 역할-(방바닥이나 마루바닥을 파서 난방이나 취가용으로 불을 피우는 장치)
이로리로 보는 생활의 지혜
6. 마무리 - 전체를 통한 감상 과 한국과의 비교
7. 참고문헌 – 가와사키(川崎市立) 日本民家園. 민가 탐험대
1-1. 주제 초안의 생각
2. 민가의 입지와 부지의 선택
평지의 민가
산 지의 민가
해 변의 민가
성내의 민가
3. 생활에 뿌리 내리고 있는 일본의 민가
3-1. 실내에서 볼 수 있는 지혜
대나무로 만든 방과 천장 생활의 지혜
아마야라고 불리는 현관
도마-(부엌과 마루와 같은 역할) 와 도자- (온돌과 비슷한 역할)
3-2. 실외에서 볼 수 있는 지혜
시시창 – 집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창 (짐승이 오는 것을 봄)
돌 받침대
벽의 목적과 지혜
입구에 있는 작은 장소의 의미
지붕으로 드나드는 현관
3-3. 지붕의 지혜
입지에 적응한 지붕의 지혜
가야부키(억새로 엮어서 만든 지붕) 지붕의 구조
시바도라는 지붕의 보강방법과 위안 효과
4. 민가의 보청(普請)
5. 민가에 있어서 불의 역할
부뚜막의 역할
이로리의 역할-(방바닥이나 마루바닥을 파서 난방이나 취가용으로 불을 피우는 장치)
이로리로 보는 생활의 지혜
6. 마무리 - 전체를 통한 감상 과 한국과의 비교
7. 참고문헌 – 가와사키(川崎市立) 日本民家園. 민가 탐험대
본문내용
만들어서 설치한 곳 등 생활에 따라서 다른 점을 엿볼 수 있다.
[부뚜막 No798]
이로리
방바닥 마룻바닥을 네모지게 파서 난방 취사용의 불을 피우게 만든 장치
이로리는 「히토코 호도 고로리 지로 히지로」 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지는데, 이 의미는 「사람이 있는 장소」 또는 「불이 있는 곳」을 말하며 추위가 심한 지방에서는 식사나 가족의 단란 저녁(농사일 준비)나 손님 접대로 모이며、 민가에서는 집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리 불은 일년 내내 꺼짐이 없이 타올라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리고 사람과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장소였다.
민가에 따라서는 「가족용」과 「손님용」 한방에 이로리가 2개있는 집도 있었다
이로리의 불을 둘러싼 생활 속에서는 그 지역 나름대로의 습관이나 예의가 규칙화되어 있다
아침저녁 불은「신께 감사」명절에는 제사축제 , 가장이 앉는 자리, 음식을 먹을 때 젓가락을 먼저 드는 차례, 술을 마실 때의 규칙 등이 중요하게 지켜졌다
예를 들면 앞에서 얘기한 세계유산 시라카와코 에서는 한집에 장남 차남 그리고 일꾼과 그 가족들 10수명이 같이 살았다. 그때는 집터가 좁아서 분가를 못 시키거나 양잠업에 잘 시간도 없이 바빠서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집에서는 거실의 이로리를 에워싸고 가장이 제일 안쪽 부엌에 가까운 곳에 여자들이 그 건너편에 장남부터 제일 현관 쪽에 아이들이 앉았다.
이런 일본 각 지역의 사는 법이 문화나 습관 속에, 「이로리가 있는 생활」은 집안에서 「생활의 중심지」라는 것 외에도 가족들간을 이어주는 끈끈한 연으로 소중한 역할을 했다
[이로리 No758] [2개의 이로리 No788]
이로리로 보는 생활의 지혜
가족이 모이는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이로리지만 거기에는 생활해 가기 위한 여러 가지 지혜를 볼 수 있다
이로리를 보면, 이로리 위에 선반 같은 것이 있다. 그 선반을 「화천(火天)」또는「불 선반」 이라 불렀다. 눈이나 비에 젖은 짚신이나 우산 도롱이 등을 말리는데 썼다.
또 이로리 위에 이로리와 같은 넓이로 선반을 만든 이유는 열기가 퍼지는 대류효과로 열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과 이로리가 있는 방에서 가족이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따뜻한 공기가 천장에 직접 닿지 않고 방 전체를 따뜻하게 하는 난방효과를 낳았다.
더 중요한 효과는 방화(防火)였다. 타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진 지붕은 화재가 제일 무서운 일이지만, 이 선반이 있으므로 인해 상승기류로 올라가는 불꽃을 막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생선이나 곡물 등 식품을 건조 시키기도 하고, 훈제를 만들어 보존식품을 만드는 용도로도 사용했다.
이렇게 보면 이로리는 “건조” “난방” 방화(防火) “보존”등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는 만능기구 역할을 했다고 느낀다.
【棚 No838】
또 이로리는 일년 내내 불이 꺼지는 일이 없는데 거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1층의 연기는 2층 바닥 틈을 통해 가야부끼 지붕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다.
연기는 가야부끼(억새) 지붕을 받치는 대들보 기둥을 그슬리고, 병충해나 곰팡이 부패에서
집을 지키고 방충 살균 방부 효과가 있었다. 또 연기와 먼지가 밀착되어 비가 새는 것을 막는 방수효과도 있었다. 연기로 인해 내구성 있는 지붕으로서 조금이라도 길게 보존 할 수 있는 지혜를 엿 볼 수 있다. 잠자는 시간대에는 재를 덮어 화력을 약하게 해서 다음날 아침 「불 피우기」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로리의 연기 No815]
6. 마무리 -전체를 통한 감상 과 한국과의 비교
가와사키시립 민가원은 급속히 사라져 가는 고 민가를 영원히 미래에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1967년에 개원한 고민가 야외 박물관이다. 일본 民家園은 시민의 문화, 학술, 교육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애도시대(18세기-19세기)의 고민가를 이축 복원시켜 가장 좋은 형태로 남긴다는 것을 목적으로, 고 민가/전통생활 문화에 관한 자료를 조사 수집하며 전시하여 보급활동에 힘쓰고 있다.
또 실내 건축 박물관도 설치하여 구민가를 이축할 때 민가의 관련자료 이외에도 그 시대에
사용했던 건축용구들을 수장하고 있다.
한눈에 건축박물관과 야외 고민가 박물관을 체험하면서 한국사람인 내가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까? 라고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일본의 강점기 시대가 있었고 그리고 임진 왜란 등 우리의 문화유산이 너무도 많이 불타버렸다는 아쉬움과
강점기 36년 동안 우리의 민속이 우리의 문화 유산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머금고 사라졌 을 까? 생각하며 이런 상념들과 겹쳐서 너무도 잘 보존되어 있는 민가원이 조끔 샘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동일본을 중심으로 이축된 민가를 답사하면서 일본의 역사와 지리 이외에도 이들의 생활에 밀착된 고민가를 앎으로서 생활의 지혜와 자연과 공존해오며 살아온 지혜를 엿볼 수 있었고
앞으로 내가 일본에서 살아가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비상식품으로 토란줄기를 흙과 섞어서 벽을 만들었고 식량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어질 때는 벽을 헐어가면서 토란줄기를 먹었다라는 부분이었다.
일본은 고온 다습한 기후로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서 아마 이러한 지혜를 구상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습기가 거의 없는 대륙성 기후이기 때문에 고사리나 고구마대 같은 말린 식품을
비상 보존식품으로 해오지 않았을까 하는 선인들의 지혜를 재 인식했다.
또 우리주거환경에서 남쪽지방에서는 부엌에 굴을 파서 겨울에 먹을 식품을 저장했다는 지혜를 생각해보며 주거환경이 가져다 주는 지혜는 무궁무진함을 느꼈다.
이번 리포트를 기회로 한국에 갈 때마다 민속과 관련되는 족보박물관등 많은 곳을 찾아보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내년에는 꼭 강릉 단오제 때(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과 수학여행으로) 가야겠다는 계획과 희망을 품고, 우리의 문화뿐만이 아니라 민속도 같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일본에서 우리의 민속을 많이 소개하고 또 한국을 찾을 기회 제공을 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7. 참고문헌
“가와사키 시립 일본 민가원” 가이드 북
“ 민가 탐험대”
출판 : 가와사키 시립 민가원
[부뚜막 No798]
이로리
방바닥 마룻바닥을 네모지게 파서 난방 취사용의 불을 피우게 만든 장치
이로리는 「히토코 호도 고로리 지로 히지로」 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지는데, 이 의미는 「사람이 있는 장소」 또는 「불이 있는 곳」을 말하며 추위가 심한 지방에서는 식사나 가족의 단란 저녁(농사일 준비)나 손님 접대로 모이며、 민가에서는 집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리 불은 일년 내내 꺼짐이 없이 타올라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리고 사람과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장소였다.
민가에 따라서는 「가족용」과 「손님용」 한방에 이로리가 2개있는 집도 있었다
이로리의 불을 둘러싼 생활 속에서는 그 지역 나름대로의 습관이나 예의가 규칙화되어 있다
아침저녁 불은「신께 감사」명절에는 제사축제 , 가장이 앉는 자리, 음식을 먹을 때 젓가락을 먼저 드는 차례, 술을 마실 때의 규칙 등이 중요하게 지켜졌다
예를 들면 앞에서 얘기한 세계유산 시라카와코 에서는 한집에 장남 차남 그리고 일꾼과 그 가족들 10수명이 같이 살았다. 그때는 집터가 좁아서 분가를 못 시키거나 양잠업에 잘 시간도 없이 바빠서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집에서는 거실의 이로리를 에워싸고 가장이 제일 안쪽 부엌에 가까운 곳에 여자들이 그 건너편에 장남부터 제일 현관 쪽에 아이들이 앉았다.
이런 일본 각 지역의 사는 법이 문화나 습관 속에, 「이로리가 있는 생활」은 집안에서 「생활의 중심지」라는 것 외에도 가족들간을 이어주는 끈끈한 연으로 소중한 역할을 했다
[이로리 No758] [2개의 이로리 No788]
이로리로 보는 생활의 지혜
가족이 모이는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이로리지만 거기에는 생활해 가기 위한 여러 가지 지혜를 볼 수 있다
이로리를 보면, 이로리 위에 선반 같은 것이 있다. 그 선반을 「화천(火天)」또는「불 선반」 이라 불렀다. 눈이나 비에 젖은 짚신이나 우산 도롱이 등을 말리는데 썼다.
또 이로리 위에 이로리와 같은 넓이로 선반을 만든 이유는 열기가 퍼지는 대류효과로 열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과 이로리가 있는 방에서 가족이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따뜻한 공기가 천장에 직접 닿지 않고 방 전체를 따뜻하게 하는 난방효과를 낳았다.
더 중요한 효과는 방화(防火)였다. 타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진 지붕은 화재가 제일 무서운 일이지만, 이 선반이 있으므로 인해 상승기류로 올라가는 불꽃을 막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생선이나 곡물 등 식품을 건조 시키기도 하고, 훈제를 만들어 보존식품을 만드는 용도로도 사용했다.
이렇게 보면 이로리는 “건조” “난방” 방화(防火) “보존”등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는 만능기구 역할을 했다고 느낀다.
【棚 No838】
또 이로리는 일년 내내 불이 꺼지는 일이 없는데 거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1층의 연기는 2층 바닥 틈을 통해 가야부끼 지붕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다.
연기는 가야부끼(억새) 지붕을 받치는 대들보 기둥을 그슬리고, 병충해나 곰팡이 부패에서
집을 지키고 방충 살균 방부 효과가 있었다. 또 연기와 먼지가 밀착되어 비가 새는 것을 막는 방수효과도 있었다. 연기로 인해 내구성 있는 지붕으로서 조금이라도 길게 보존 할 수 있는 지혜를 엿 볼 수 있다. 잠자는 시간대에는 재를 덮어 화력을 약하게 해서 다음날 아침 「불 피우기」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로리의 연기 No815]
6. 마무리 -전체를 통한 감상 과 한국과의 비교
가와사키시립 민가원은 급속히 사라져 가는 고 민가를 영원히 미래에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1967년에 개원한 고민가 야외 박물관이다. 일본 民家園은 시민의 문화, 학술, 교육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애도시대(18세기-19세기)의 고민가를 이축 복원시켜 가장 좋은 형태로 남긴다는 것을 목적으로, 고 민가/전통생활 문화에 관한 자료를 조사 수집하며 전시하여 보급활동에 힘쓰고 있다.
또 실내 건축 박물관도 설치하여 구민가를 이축할 때 민가의 관련자료 이외에도 그 시대에
사용했던 건축용구들을 수장하고 있다.
한눈에 건축박물관과 야외 고민가 박물관을 체험하면서 한국사람인 내가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까? 라고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일본의 강점기 시대가 있었고 그리고 임진 왜란 등 우리의 문화유산이 너무도 많이 불타버렸다는 아쉬움과
강점기 36년 동안 우리의 민속이 우리의 문화 유산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머금고 사라졌 을 까? 생각하며 이런 상념들과 겹쳐서 너무도 잘 보존되어 있는 민가원이 조끔 샘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동일본을 중심으로 이축된 민가를 답사하면서 일본의 역사와 지리 이외에도 이들의 생활에 밀착된 고민가를 앎으로서 생활의 지혜와 자연과 공존해오며 살아온 지혜를 엿볼 수 있었고
앞으로 내가 일본에서 살아가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비상식품으로 토란줄기를 흙과 섞어서 벽을 만들었고 식량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어질 때는 벽을 헐어가면서 토란줄기를 먹었다라는 부분이었다.
일본은 고온 다습한 기후로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서 아마 이러한 지혜를 구상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습기가 거의 없는 대륙성 기후이기 때문에 고사리나 고구마대 같은 말린 식품을
비상 보존식품으로 해오지 않았을까 하는 선인들의 지혜를 재 인식했다.
또 우리주거환경에서 남쪽지방에서는 부엌에 굴을 파서 겨울에 먹을 식품을 저장했다는 지혜를 생각해보며 주거환경이 가져다 주는 지혜는 무궁무진함을 느꼈다.
이번 리포트를 기회로 한국에 갈 때마다 민속과 관련되는 족보박물관등 많은 곳을 찾아보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내년에는 꼭 강릉 단오제 때(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과 수학여행으로) 가야겠다는 계획과 희망을 품고, 우리의 문화뿐만이 아니라 민속도 같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일본에서 우리의 민속을 많이 소개하고 또 한국을 찾을 기회 제공을 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7. 참고문헌
“가와사키 시립 일본 민가원” 가이드 북
“ 민가 탐험대”
출판 : 가와사키 시립 민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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