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추천의 글 - 인류 문화를 이해하는 새롭고 강력한 무기
머리말 - 색,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를 읽는 코드
1장 태초에 색이 있었다
2장 국기의 색에 역사를 담다
3장 색으로 읽는 성서 이야기
4장 풍요와 열정의 색 가득한 이슬람의 세계
5장 빨강, 정열적으로 강하게
6장 순수한 파랑의 비밀
7장 노랑, 황제의 색인가 박해받는 자의 색인가
8장 하얀 세계 VS 검은 세계
9장 세계를 지배한 색, 그 뒷이야기
부록 - 색채의 소사전
참고문헌
머리말 - 색,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를 읽는 코드
1장 태초에 색이 있었다
2장 국기의 색에 역사를 담다
3장 색으로 읽는 성서 이야기
4장 풍요와 열정의 색 가득한 이슬람의 세계
5장 빨강, 정열적으로 강하게
6장 순수한 파랑의 비밀
7장 노랑, 황제의 색인가 박해받는 자의 색인가
8장 하얀 세계 VS 검은 세계
9장 세계를 지배한 색, 그 뒷이야기
부록 - 색채의 소사전
참고문헌
본문내용
로 경사, 검정 넥타이로 장례에 대처할 수 있다.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메이지유신 이후의 서구화 정책에 큰 영향을 받았다. 본래 일본인들은 하양을 맑고 깨끗하고 신성한 색으로 여기면서 장례용 색으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화 정책에 의해 점차 꺼림칙한 색으로서의 이미지가 사라졌다. 검정도 본래 어둠의 색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장례의 색이 된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이다.
일본에서 하양에서 검정으로 상복 색깔의 대전환이 일어난 것은 태평양 전쟁 때문이다. 공습에 의해 불타 죽은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상복을 대여해주는 업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때 대여업자들이 준비한 옷이 메이지 시대에 규정한 검은 몬츠키와 검은 양장이었다. 흰 옷의 수요도 있었지만 장례식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하양처럼 더러워지기 쉬운 색은 아무래도 멀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검정색 상복이 사람들 속에서 정착하여 사람들은 점차 검정색 상복에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9장 세계를 지배한 색, 그 뒷이야기
피를 빨아먹은 벼룩의 색은?
침낭을 가리켜 영어의 속어로 플리백(fleabag)이라 한다. 플리(flea)란 벼룩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벼룩을 쉽게 볼 수 없지만 예전 일본에서는 잠자기 전에 꼭 모기장을 치고 벼룩 잡는 가루를 뿌렸다. 사실 벼룩과의 싸움은 태곳적부터 계속되어 왔다. 근세까지 왕후 귀족의 화려한 치장 뒤에는 벼룩으로 고생한 역사가 있었다. 중세 유럽의 귀부인들도 크고 풍성하게 퍼진 드레스 안의 벼룩과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넓게 퍼진 드레스 속으로 가늘고 긴 벼룩 잡는 도구를 집어넣은 귀부인도 있었다고 한다.
방에서 편히 쉴 때도 벼룩과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매일 그렇게 벼룩과 서로 맞대고 있다 보면 피를 빨기 전의 벼룩, 피를 빨아먹은 후의 벼룩을 구별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14세기가 되자 프랑스에서 퓨스(puce, 벼룩)라는 새로운 색이 탄생했다. 이는 피를 빨아먹은 벼룩의 색, 즉 적갈색이다. 영어에도 같은 말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18세기 후반,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대에 이 퓨스는 인기가 높은 색이었다고 한다. 또한 왕비가 옷을 새로 맞출 때마다 ‘벼룩의 배’, ‘빨간 얼굴의 벼룩’ 등 새로운 색이 차례차례 발표되기도 했다. 이 색들은 벼룩과의 싸움에 지친 사람들의 기분 전환을 위해 태어난 듯도 하지만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대에는 여러 가지 기묘한 색이 차례로 발표되고 있었다.
벼룩 색과 함께 선호되었던 것이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머리색인 블론드에 가까운 노랑이었다. 그리고 노랑 계통의 새로운 색이 차례로 발표되어 짙은 노랑에 ‘황태자의 똥’, ‘솔개의 똥’ 등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그 밖에도 노랑과 녹색의 혼합색으로 ‘런던의 쓰레기’, ‘독을 마신 원숭이‘, ’카르멜파 수도사의 아랫배‘, ’살아 돌아온 죽은 자‘, ’천연두‘ 등의 기묘한 이름의 색이 있었다. 이를 감안하면 피를 먹은 벼룩의 색 등은 그나마 품위 있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메이지유신 이후의 서구화 정책에 큰 영향을 받았다. 본래 일본인들은 하양을 맑고 깨끗하고 신성한 색으로 여기면서 장례용 색으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화 정책에 의해 점차 꺼림칙한 색으로서의 이미지가 사라졌다. 검정도 본래 어둠의 색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장례의 색이 된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이다.
일본에서 하양에서 검정으로 상복 색깔의 대전환이 일어난 것은 태평양 전쟁 때문이다. 공습에 의해 불타 죽은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상복을 대여해주는 업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때 대여업자들이 준비한 옷이 메이지 시대에 규정한 검은 몬츠키와 검은 양장이었다. 흰 옷의 수요도 있었지만 장례식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하양처럼 더러워지기 쉬운 색은 아무래도 멀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검정색 상복이 사람들 속에서 정착하여 사람들은 점차 검정색 상복에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9장 세계를 지배한 색, 그 뒷이야기
피를 빨아먹은 벼룩의 색은?
침낭을 가리켜 영어의 속어로 플리백(fleabag)이라 한다. 플리(flea)란 벼룩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벼룩을 쉽게 볼 수 없지만 예전 일본에서는 잠자기 전에 꼭 모기장을 치고 벼룩 잡는 가루를 뿌렸다. 사실 벼룩과의 싸움은 태곳적부터 계속되어 왔다. 근세까지 왕후 귀족의 화려한 치장 뒤에는 벼룩으로 고생한 역사가 있었다. 중세 유럽의 귀부인들도 크고 풍성하게 퍼진 드레스 안의 벼룩과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넓게 퍼진 드레스 속으로 가늘고 긴 벼룩 잡는 도구를 집어넣은 귀부인도 있었다고 한다.
방에서 편히 쉴 때도 벼룩과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매일 그렇게 벼룩과 서로 맞대고 있다 보면 피를 빨기 전의 벼룩, 피를 빨아먹은 후의 벼룩을 구별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14세기가 되자 프랑스에서 퓨스(puce, 벼룩)라는 새로운 색이 탄생했다. 이는 피를 빨아먹은 벼룩의 색, 즉 적갈색이다. 영어에도 같은 말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18세기 후반,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대에 이 퓨스는 인기가 높은 색이었다고 한다. 또한 왕비가 옷을 새로 맞출 때마다 ‘벼룩의 배’, ‘빨간 얼굴의 벼룩’ 등 새로운 색이 차례차례 발표되기도 했다. 이 색들은 벼룩과의 싸움에 지친 사람들의 기분 전환을 위해 태어난 듯도 하지만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대에는 여러 가지 기묘한 색이 차례로 발표되고 있었다.
벼룩 색과 함께 선호되었던 것이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머리색인 블론드에 가까운 노랑이었다. 그리고 노랑 계통의 새로운 색이 차례로 발표되어 짙은 노랑에 ‘황태자의 똥’, ‘솔개의 똥’ 등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그 밖에도 노랑과 녹색의 혼합색으로 ‘런던의 쓰레기’, ‘독을 마신 원숭이‘, ’카르멜파 수도사의 아랫배‘, ’살아 돌아온 죽은 자‘, ’천연두‘ 등의 기묘한 이름의 색이 있었다. 이를 감안하면 피를 먹은 벼룩의 색 등은 그나마 품위 있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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