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선언
1) 예술정의의 기준, 식별가능성의 종말
2) 예술정의의 유일한 기준, 해석가능성
2. 예술의 종말 선언에 대한 비판
3. 예술정의 논쟁의 향후 전개 방향
Ⅲ. 결론
Ⅱ. 본론
1.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선언
1) 예술정의의 기준, 식별가능성의 종말
2) 예술정의의 유일한 기준, 해석가능성
2. 예술의 종말 선언에 대한 비판
3. 예술정의 논쟁의 향후 전개 방향
Ⅲ. 결론
본문내용
상력을 확장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논쟁이라 할 수 있다.
Ⅲ. 결론
서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술은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을 의미한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브릴로 상자와 외관상 차이가 없다. 과연 이 작품을 위해 앤디 워홀이 어떠한 창조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식별이 불가능하다. 만약 우리가 <브릴로 상자>는 예술이 아니다 라고 정의한다면 예술정의 논쟁은 해당 작품에 한정될 뿐 확장되기가 어렵다. 하지만 아서 단토는 <브릴로 상자>를 본 후 ‘예술의 종말’을 선언하였다. 그는 <브릴로 상자>를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였으며, 그로 인해 더 이상 예술 작품을 정의하는 기준으로서 식별가능성이 의미가 없어졌다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그의 선언은 예술정의 논쟁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아서 단토의 선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예술정의 논쟁은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반 대중들은 예술 작품에 대해 이해할 때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만약 <브릴로 상자>를 예술 작품으로 인정할 경우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은 매우 다양해질 것이다. 아서 단토는 이에 대해 앞으로의 예술에서 철학자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예술은 철학자들만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다. 예술가가 외관상으로 차이가 없는 물체를 전시하고 대중들이 철학자들의 해석에 의존하여 예술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기만행위일지도 모른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모방이라 하였다. 모방에서 시작된 예술은 시간이 흘러 하나의 학문이 되었고 이제는 식별할 수도 없고 오로지 해석만이 존재하는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철학자를 대표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되살아난다면 예술이 철학자의 해석에 의존하는 대상이 되었음을 인식하고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서 단토의 선언은 분명 예술정의의 새로운 논쟁거리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예술이 아니다 라는 주장 또한 의미 있게 받아들여짐으로써 ‘예술의 종말’이 오지 않았다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 김혜숙·김해련. 예술과사상.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7
- 아서 단토 저, 이성훈 역. 예술의 종말 이후. 미술문화. 2004
- 정낙림. ‘예술의 종말’과 종말이후의 예술. 니체연구 제30집. 2016
Ⅲ. 결론
서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술은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을 의미한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브릴로 상자와 외관상 차이가 없다. 과연 이 작품을 위해 앤디 워홀이 어떠한 창조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식별이 불가능하다. 만약 우리가 <브릴로 상자>는 예술이 아니다 라고 정의한다면 예술정의 논쟁은 해당 작품에 한정될 뿐 확장되기가 어렵다. 하지만 아서 단토는 <브릴로 상자>를 본 후 ‘예술의 종말’을 선언하였다. 그는 <브릴로 상자>를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였으며, 그로 인해 더 이상 예술 작품을 정의하는 기준으로서 식별가능성이 의미가 없어졌다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그의 선언은 예술정의 논쟁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아서 단토의 선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예술정의 논쟁은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반 대중들은 예술 작품에 대해 이해할 때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만약 <브릴로 상자>를 예술 작품으로 인정할 경우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은 매우 다양해질 것이다. 아서 단토는 이에 대해 앞으로의 예술에서 철학자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예술은 철학자들만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다. 예술가가 외관상으로 차이가 없는 물체를 전시하고 대중들이 철학자들의 해석에 의존하여 예술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기만행위일지도 모른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모방이라 하였다. 모방에서 시작된 예술은 시간이 흘러 하나의 학문이 되었고 이제는 식별할 수도 없고 오로지 해석만이 존재하는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철학자를 대표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되살아난다면 예술이 철학자의 해석에 의존하는 대상이 되었음을 인식하고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서 단토의 선언은 분명 예술정의의 새로운 논쟁거리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예술이 아니다 라는 주장 또한 의미 있게 받아들여짐으로써 ‘예술의 종말’이 오지 않았다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 김혜숙·김해련. 예술과사상.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7
- 아서 단토 저, 이성훈 역. 예술의 종말 이후. 미술문화. 2004
- 정낙림. ‘예술의 종말’과 종말이후의 예술. 니체연구 제30집.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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