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할 만큼 평이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그 누구도 완벽히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가 무한하다.” 딱 이 말에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하나님이 성경 속에 숨기고 있는 것은 없지만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인간으로써는 결코 하나님이 말하고자 하는 뜻과 목적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책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접촉하여 본인의 뜻을 보여주기 위해 수준을 맞추어 대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과의 미약하나마 교류가 가능한 것은 모두 이러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배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가진 선한 의지에서 비롯된 목적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인간 세계에서는 각종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제 개인의 쾌락과 욕망을 위해 다른 이웃을 괴롭히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교회에서조차 신학을 소홀히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들자 2권 마지막 쯤에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와 심판의 날이 언제쯤 당도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을 넓은 아량으로 항상 기다려주고, 그들의 죄악을 씻을 기회를 주시고자 한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땅에 내려와 아담과 이브가 인간에게 남긴 유전적 죄악을 씻어주기 위한 희생을 보이시기도 했으니 말이다.
사실 한낱 인간으로써는 이 정도의 희생 정신과 사랑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해가 어려우니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가 참된 인간의 길로 가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피조물로써 타고난 한계가 분명하기에 우리는 더욱 끊임없이 믿음을 수행하고 내재화 하는 과정으로 나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점차 교회의 기능은 흐릿해지고, 기독교는 그저 사회에서 희화화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떠한 시점에 어떠한 모습으로 인간들을 심판하기 위해 내려올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또 하나의 기회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인간들이 과연 회개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인간은 우연에 의해 발생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자기 형상을 본따 만들어 낸 존재이다.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인간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태어난 의존적 존재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존재로써 만들어졌다. 요즘 사회의 문제들은 이러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망각에서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현대 과학 경제 시대에서의 인간은 주체적으로 존재한다. 물론 그것이 절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 세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무궁한 노력을 펼쳤음은 사실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가 나타났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자연적 은사에서 비롯된 성과에 대해서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착각하는데서 오는 것이라고 본다. 모든 긍정적 결과가 자신의 독자적인 능력을 통해 발생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은사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쓰려 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다. 자기 것이라는 착각은 하나님이 성령의 은사를 내린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지름길이라 본다.
2권의 제19장에서는 명확하게 말한다. 은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말이다. 나는 이 챕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은사를 받고 이를 타인보다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 더 많은 경제적 성공을 위해서 이용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은사의 보다 근본적인 하나님의 의도는 공동체의 번영에 있는 것이라고 본다. 개인의 유익보다는 최종적으로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서 성령의 은사가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을 시간이 아직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반드시 어떤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날 것이고 그날에 그간의 온갖 죄와 악에 대한 단호한 형벌이 일어날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그러한 날이 진정 실제 삶의 과정에서 죽기 직전까지 오던 또 오지 않던 말이다. 반드시 구원에 도달하는 시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잘 가꾸어 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부활은 단순한 육체적인 부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의 연속성에 대한 내용이 성경에서 나왔는데 나는 전의 삶과 후의 삶이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점에 동의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삶을 위해서도 또 구원을 받은 이후에 찾아올 삶을 위해서도 복음을 실천하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영을 가꿈으로써 어떤 단계에 도달하면 분명히 유의미한 삶의 변화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 하듯 구원을 이루는 삶이란 믿습니다 한 마디에 구원 도장이 찍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사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의 날이 최종적 구원일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거룩을 기리며 사는 평생이 결국 구원을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종말은 개인적 종말과 우주적 종말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종말은 하나의 구원이기도 하다. 개인에게 있어서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종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또 새로운 삶을 얻어 부활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극히 개인의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여 나태한 신자 생활을 하는 것은 어쩌면 현재의 삶에는 작은 위안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코 진정한 의미의 구원은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을 속이는 일이고 동시에 하나님을 속이려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이전에는 대충 개요만 알고 있던 내용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리가 되는 것 같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또 조금 더 깊은 부분들까지 알게 될 때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조금 더 기독교인으로써의 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여러모로 기독교 신학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고,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 깊이를 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접촉하여 본인의 뜻을 보여주기 위해 수준을 맞추어 대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과의 미약하나마 교류가 가능한 것은 모두 이러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배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가진 선한 의지에서 비롯된 목적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인간 세계에서는 각종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제 개인의 쾌락과 욕망을 위해 다른 이웃을 괴롭히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교회에서조차 신학을 소홀히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들자 2권 마지막 쯤에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와 심판의 날이 언제쯤 당도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을 넓은 아량으로 항상 기다려주고, 그들의 죄악을 씻을 기회를 주시고자 한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땅에 내려와 아담과 이브가 인간에게 남긴 유전적 죄악을 씻어주기 위한 희생을 보이시기도 했으니 말이다.
사실 한낱 인간으로써는 이 정도의 희생 정신과 사랑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해가 어려우니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가 참된 인간의 길로 가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피조물로써 타고난 한계가 분명하기에 우리는 더욱 끊임없이 믿음을 수행하고 내재화 하는 과정으로 나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점차 교회의 기능은 흐릿해지고, 기독교는 그저 사회에서 희화화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떠한 시점에 어떠한 모습으로 인간들을 심판하기 위해 내려올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또 하나의 기회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인간들이 과연 회개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인간은 우연에 의해 발생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자기 형상을 본따 만들어 낸 존재이다.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인간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태어난 의존적 존재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존재로써 만들어졌다. 요즘 사회의 문제들은 이러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망각에서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현대 과학 경제 시대에서의 인간은 주체적으로 존재한다. 물론 그것이 절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 세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무궁한 노력을 펼쳤음은 사실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가 나타났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자연적 은사에서 비롯된 성과에 대해서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착각하는데서 오는 것이라고 본다. 모든 긍정적 결과가 자신의 독자적인 능력을 통해 발생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은사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쓰려 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다. 자기 것이라는 착각은 하나님이 성령의 은사를 내린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지름길이라 본다.
2권의 제19장에서는 명확하게 말한다. 은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말이다. 나는 이 챕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은사를 받고 이를 타인보다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 더 많은 경제적 성공을 위해서 이용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은사의 보다 근본적인 하나님의 의도는 공동체의 번영에 있는 것이라고 본다. 개인의 유익보다는 최종적으로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서 성령의 은사가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을 시간이 아직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반드시 어떤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날 것이고 그날에 그간의 온갖 죄와 악에 대한 단호한 형벌이 일어날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그러한 날이 진정 실제 삶의 과정에서 죽기 직전까지 오던 또 오지 않던 말이다. 반드시 구원에 도달하는 시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잘 가꾸어 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부활은 단순한 육체적인 부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의 연속성에 대한 내용이 성경에서 나왔는데 나는 전의 삶과 후의 삶이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점에 동의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삶을 위해서도 또 구원을 받은 이후에 찾아올 삶을 위해서도 복음을 실천하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영을 가꿈으로써 어떤 단계에 도달하면 분명히 유의미한 삶의 변화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 하듯 구원을 이루는 삶이란 믿습니다 한 마디에 구원 도장이 찍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사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의 날이 최종적 구원일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거룩을 기리며 사는 평생이 결국 구원을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종말은 개인적 종말과 우주적 종말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종말은 하나의 구원이기도 하다. 개인에게 있어서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종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또 새로운 삶을 얻어 부활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극히 개인의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여 나태한 신자 생활을 하는 것은 어쩌면 현재의 삶에는 작은 위안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코 진정한 의미의 구원은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을 속이는 일이고 동시에 하나님을 속이려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이전에는 대충 개요만 알고 있던 내용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리가 되는 것 같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또 조금 더 깊은 부분들까지 알게 될 때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조금 더 기독교인으로써의 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여러모로 기독교 신학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고,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 깊이를 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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