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조나단 에드워즈의 목회적 배경
2.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
3.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
4. 조나단 에드워즈의 삼위일체론와 구속사역
Ⅲ.결론
Ⅱ. 본론
1. 조나단 에드워즈의 목회적 배경
2.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
3.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
4. 조나단 에드워즈의 삼위일체론와 구속사역
Ⅲ.결론
본문내용
구속자의 권세와 직무는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중보자를 주실 뿐 아니라 그의 중보를 받아들이시고, 중보자의 능력과 은혜로 사놓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주신다.
에드워즈는 구속 사역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의 상호동등성(coequality)을 강조하기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삼위일체론 속에서 삼위일체의 동등성을 논하면서 삼위는 모든 면에서 동등한 셋으로 된 공동체이고 가족이며 이들 세 분이 모두 하나님으로서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영예를 그 공동체와 가족 안에서 지니고 있다 고 말하였다. 성부는 그의 무한한 기쁨의 대상인 성자를 내어 주신 분이시고, 성자는 자신을 내어 주사 자기 목숨을 구속의 대가로 지불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성령은 구속에서 주어진 유익 자체이다. 우리는 특히 에드워즈가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 전통적인 신학보다도 더 강조하고 있는 점을 유념해 보아야 한다. 즉 전통적으로 성령은 그리스도가 이루신 객관적 구속을 신자들에게 적용하시는 분(agent)이라고 파악되지만, 에드워즈는 성령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해서 값 주고 사신 유익 자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에드워즈는 타락한 인류의 구원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의 중요성을 제대로 강조하고, 구속 사역에서 있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상호 동등성을 명확하게 천명하게 되었다. 에드워즈는 경륜적 삼위일체론 속에서 성자의 성부에 대한 종속, 그리고 성자에 대한 성령의 종속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경륜적 질서 속에서 그러한 것이고, 결단코 삼위격의 상호 동등성을 부정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 중 가장 독보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성령님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성령은 성부와 성자 간에 영원 전부터 주고받으시는 상호적인 사랑이며, 성부에게서 나오는 사랑이며, 성자에게서 나오는 은혜 그 자체이다. 따라서 구원 사역에 있어서도 성자께서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서 택자들을 위해서 획득하신 구속의 내용은 바로 성령이시다고 에드워즈는 주장하였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을 개인 신자들에게 적용하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개인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구속의 선물 그 자체라고 하는 것이 에드워즈의 아주 독특한 견해이다.
Ⅲ.결론
에드워즈는 철저히 개혁주의 전통위에서 칼빈주의의 교리를 근간으로 이론을 정립해 나갔다. 인간의 전적 타락으로 무능하고 인간 자신으로서는 구원에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하는 비참한 존재임을 부각시켰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영역에 진입하게 됨을 강조하고 있다. 에드워즈는 초자연적인 것을 모두 거부하고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았던 계몽주의 시대에 살아가면서, 그 시대정신에 대항하여 기독교 근본 교리인 삼위일체론을 변증하려고 했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표현된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동일한 하나의 신적 본질과 세 분의 위격성에 대하여 정통적으로 변호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웅,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 총신대학교 대학원 , 2008, p106~107
그리고 에드워즈는 현실 목회의 문제에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철저하게 신학적 저술과 설교를 통해서 개선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했을 뿐 아니라 반대 입장에 선 사람들에게도 신학적 이론을 통하여 바로 세우기 위해 굽히지 않는 노력을 하였다. 에드워즈의 삼위일체론은 오랫동안 오해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의 삼위일체론의 정통성을 시비하는 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에드워즈가 말한 바 있는 믿음과 감정 사이를 영적인 안목으로 잘 분간할 수 있는 우리 믿음의 능력이 필요하다. 성령체험(성령충만)의 의미나 영적감정이 남겨 준 것을 한국교회나 개인의 신앙에 적절하게 또는 단순하게 잘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로 남는다. 또한 결과적으로 개혁주의 전통이 재정립되어야 할 상황에 우리의 할 바는 신학을 바로 고수하며, 칼빈에서 현재까지 신학의 정통성을 바로 잡아야 한다. 또한 성령의 역사를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받아들이되, 우리의 지식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철학적인 관점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의 바탕과 계시의 이해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성령론을 통해서 바라본 한국 교회의 미래를 편향적인 말씀만 가지고 성령사역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말씀을 통해 성령의 조명을 받고 통찰력을 가지고 바른 해석을 통해서 진정한 회심을 통한 각성운동이 필요하다. 1903년 원산운동과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처럼 이런 운동이 재차 있어야 할 것이다. 성령론을 위시하여 한국교회는 성령위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에 대해서 구속역사적 관점의 우선을 강조하면서 그 단회성 또한 강조 하고 있다. 즉 구속역사로서의 성령강림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말씀편향주의에 치우치거나, 반대로 성령체험만을 고집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말씀과 성령이 함께 병행되고 구속사역적 관점에서 성령의 하시는 일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귀 기울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 맞는 신학과 신앙의 토대를 바탕으로 연결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성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숙제이며 또한 교회 역사의 업적을 받아들이면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깊은 묵상의 자세로 더욱 우뚝 선 모습으로 나갈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다.
※ 참고문헌
김성기,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화론”- 지속적 회심의 과정으로서의 성화, 계명대학교 대학원, 2013
이상웅,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 총신대학교 대학원 , 2008
양낙흥, 『조나단 에드워즈 생애와 사상』, 부흥과개혁사, 2012
백금산,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 없을까』, 부흥과 개혁사, 2011
Hart, D.G. , 『조나단 에드워즈의 유산』, 부흥과 개혁사, 2009
신은섭,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은혜와 칭의에서의 성령의 사역 고찰, 안양대학교 신학 대학원, 2009
에드워즈는 구속 사역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의 상호동등성(coequality)을 강조하기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삼위일체론 속에서 삼위일체의 동등성을 논하면서 삼위는 모든 면에서 동등한 셋으로 된 공동체이고 가족이며 이들 세 분이 모두 하나님으로서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영예를 그 공동체와 가족 안에서 지니고 있다 고 말하였다. 성부는 그의 무한한 기쁨의 대상인 성자를 내어 주신 분이시고, 성자는 자신을 내어 주사 자기 목숨을 구속의 대가로 지불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성령은 구속에서 주어진 유익 자체이다. 우리는 특히 에드워즈가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 전통적인 신학보다도 더 강조하고 있는 점을 유념해 보아야 한다. 즉 전통적으로 성령은 그리스도가 이루신 객관적 구속을 신자들에게 적용하시는 분(agent)이라고 파악되지만, 에드워즈는 성령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해서 값 주고 사신 유익 자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에드워즈는 타락한 인류의 구원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의 중요성을 제대로 강조하고, 구속 사역에서 있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상호 동등성을 명확하게 천명하게 되었다. 에드워즈는 경륜적 삼위일체론 속에서 성자의 성부에 대한 종속, 그리고 성자에 대한 성령의 종속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경륜적 질서 속에서 그러한 것이고, 결단코 삼위격의 상호 동등성을 부정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 중 가장 독보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성령님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성령은 성부와 성자 간에 영원 전부터 주고받으시는 상호적인 사랑이며, 성부에게서 나오는 사랑이며, 성자에게서 나오는 은혜 그 자체이다. 따라서 구원 사역에 있어서도 성자께서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서 택자들을 위해서 획득하신 구속의 내용은 바로 성령이시다고 에드워즈는 주장하였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을 개인 신자들에게 적용하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개인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구속의 선물 그 자체라고 하는 것이 에드워즈의 아주 독특한 견해이다.
Ⅲ.결론
에드워즈는 철저히 개혁주의 전통위에서 칼빈주의의 교리를 근간으로 이론을 정립해 나갔다. 인간의 전적 타락으로 무능하고 인간 자신으로서는 구원에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하는 비참한 존재임을 부각시켰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영역에 진입하게 됨을 강조하고 있다. 에드워즈는 초자연적인 것을 모두 거부하고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았던 계몽주의 시대에 살아가면서, 그 시대정신에 대항하여 기독교 근본 교리인 삼위일체론을 변증하려고 했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표현된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동일한 하나의 신적 본질과 세 분의 위격성에 대하여 정통적으로 변호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웅,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 총신대학교 대학원 , 2008, p106~107
그리고 에드워즈는 현실 목회의 문제에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철저하게 신학적 저술과 설교를 통해서 개선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했을 뿐 아니라 반대 입장에 선 사람들에게도 신학적 이론을 통하여 바로 세우기 위해 굽히지 않는 노력을 하였다. 에드워즈의 삼위일체론은 오랫동안 오해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의 삼위일체론의 정통성을 시비하는 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에드워즈가 말한 바 있는 믿음과 감정 사이를 영적인 안목으로 잘 분간할 수 있는 우리 믿음의 능력이 필요하다. 성령체험(성령충만)의 의미나 영적감정이 남겨 준 것을 한국교회나 개인의 신앙에 적절하게 또는 단순하게 잘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로 남는다. 또한 결과적으로 개혁주의 전통이 재정립되어야 할 상황에 우리의 할 바는 신학을 바로 고수하며, 칼빈에서 현재까지 신학의 정통성을 바로 잡아야 한다. 또한 성령의 역사를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받아들이되, 우리의 지식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철학적인 관점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의 바탕과 계시의 이해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성령론을 통해서 바라본 한국 교회의 미래를 편향적인 말씀만 가지고 성령사역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말씀을 통해 성령의 조명을 받고 통찰력을 가지고 바른 해석을 통해서 진정한 회심을 통한 각성운동이 필요하다. 1903년 원산운동과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처럼 이런 운동이 재차 있어야 할 것이다. 성령론을 위시하여 한국교회는 성령위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에 대해서 구속역사적 관점의 우선을 강조하면서 그 단회성 또한 강조 하고 있다. 즉 구속역사로서의 성령강림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말씀편향주의에 치우치거나, 반대로 성령체험만을 고집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말씀과 성령이 함께 병행되고 구속사역적 관점에서 성령의 하시는 일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귀 기울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 맞는 신학과 신앙의 토대를 바탕으로 연결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성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숙제이며 또한 교회 역사의 업적을 받아들이면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깊은 묵상의 자세로 더욱 우뚝 선 모습으로 나갈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다.
※ 참고문헌
김성기,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화론”- 지속적 회심의 과정으로서의 성화, 계명대학교 대학원, 2013
이상웅,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 총신대학교 대학원 , 2008
양낙흥, 『조나단 에드워즈 생애와 사상』, 부흥과개혁사, 2012
백금산,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 없을까』, 부흥과 개혁사, 2011
Hart, D.G. , 『조나단 에드워즈의 유산』, 부흥과 개혁사, 2009
신은섭,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은혜와 칭의에서의 성령의 사역 고찰, 안양대학교 신학 대학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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