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는 말
2. 본문의 전후 시대적 배경 : 사회적 상황
3. 그리스-로마 사람들의 결혼과 이혼
4. 유대인들의 결혼과 이혼
5. 복음(예수)가 말하는 결혼과 이혼 : 본문을 중심으로
6. 나가는 말
2. 본문의 전후 시대적 배경 : 사회적 상황
3. 그리스-로마 사람들의 결혼과 이혼
4. 유대인들의 결혼과 이혼
5. 복음(예수)가 말하는 결혼과 이혼 : 본문을 중심으로
6. 나가는 말
본문내용
와 여자가 하나로 맺어지는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를 이야기 한다. 여기서 ‘한 몸’(one flesh)이 된다는 말은 완전한 하나를 의미하는 셈어적(Semitic)표현법으로서 단순한 육체의 결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에 있어서 육체적 합일은 물론 중요하지만 영혼과 정신의 합일이 배제된 육체적인 결합만을 온전한 결혼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은 육체와 영혼이 혼연일체가 되어 전 인격적인 결합에 있다고 본다.
또한 한 몸을 이룬다는 말은 가정을 이룬다는 말이 되는데 가정이란 남녀 두 사람만의 결합체라는 좁은 의미보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념하는 사랑의 공동체요,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계속성을 유지하는 생명전파의 건전한 기관이자,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받고 그 통치의 확장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거룩한 선교적 공동 운명체라는 넓은 의미까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위에 6~8절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이혼의 부당성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결혼은 이처럼 남녀가 한 몸을 이루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질서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혼은 곧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한다는 결론이 가능해 진다. 9절에서 말하는 ‘짝지우다’는 말은 헬라어로 ‘쉬네쥬크센’(συνεζευξεν)이라고 하는데 본래의 뜻은 ‘함께 멍에를 메다’의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은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협력하는 동반자 이면서 같은 운명자임을 암시해 준다. 예수의 의도는 이처럼 결혼은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제도이며 그 결합은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믿고 남녀가 서로 협력하여 살아가는 공동운명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나누어서는 안된다.” 는 말에는 결혼의 불가분리성(不可分籬性), 곧 이혼의 절대 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권위가 자리 잡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혼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이 되는 이 말은 결혼은 하나님의 뜻이고 이혼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반역으로 암시된다. 결국 이혼의 금지는 하나님의 뜻임을 선포하고 있다.
[10~12절]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그는 그 여자에게 간음을 행한 것이요, 또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그 여인은 간음을 행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율법에 대한 새로운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비록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이혼증서를 써주어 이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 이혼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혼은 창조질서에 위배된다는 전제하에 법률적, 도덕적 탈선임을 설명한다. 즉 이혼 행위를 간음으로 규정했을 때 모세의 율법으로 보면 돌로 처형당할 만큼의 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당시의 이혼이란 재혼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으므로 예수가 이혼을 재혼과 간음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남자 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이를(간음죄) 적용함으로서 남녀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본다. 하지만 유대사회의 특성상 여자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았고 남편에 예속되어 왔음을 볼 때(참고: 4. 유대인의 결혼과 이혼, 4p 3번째 단락) 12절의 진정성(眞正性) 문제가 대두 되지만 이 구절은 아마도 당시 이방인들을 당시 로마사회는 여자의 권리가 다소나마 인정되었다.(참고: 2. 말씀이 나올 전후 시대적 배경, 2p 3번째 단락) 염두 해두고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재혼에 대한 금지를 말하기 위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결혼에 대한 예수의 입장은 유례없을 정도로 새로운 것이었다. 그는 일부일처제를 찬성했을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 이혼을 철저히 금했다. 또한 그는 이혼을 금지하면서 율법에 대한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왜냐하면 율법은 남자들의 강퍅한 마음 때문에 이혼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결혼은 취소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는 남자든 여자든 이혼한 사람과 재혼한 사람을 간음한 것으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짝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는 이유로 첫 번째 상대자와의 결혼관계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처럼 유례가 없을 정도로 결혼을 높이 평가하고 성화시킴으로써 결혼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선언한 성서의 말씀을 진지하게 다루었고 그 시대에 널리 퍼져있던 잘못된 결혼관과 이혼, 재혼하는 것 등을 지적하고 비판하였다.
6. 나가는 말
이상과 같이 마가복음 10:1~12의 말씀이 나올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사상적 조류 속에서 자행 되어온 결혼법과 이혼법을 예수의 말씀과 비교해 보았다. 당시의 로마사회나 유대사회에서 문란했던 이혼과 재혼의 문제가 비단 그 사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의 20대, 30대의 이혼율이 세계최고에 육박하고 부정한 성관계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예수의 말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 하겠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결혼의 상대자를 쉽게 포기해 버리려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결혼에는 더욱 더 고귀하고 참된 또 다른 일면이 있다. 복음은 결혼을 남녀가 서로를 속박하는 인간적인 법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영구적인 축복의 수단이 되는 것 이라고 이야기 한다. 진정한 결혼은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또한 축복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신성하게 제정된 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고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인간의 본질이 가장 충만한 완전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 참 고 도 서
『國際聖書註釋/한국신학연구소편 1986』
에두아르드 로제역『신약성서 배경사/대한기독교출판사 2002』
요아힘 예레미아스역『예수시대의 예루살렘/한국신학연구소 1988』
헬무트 쾨스터역『신약성서 배경연구/은성 1996』
한상인역『신약 고고학과 배경사/대한기독교서회 2002』
『호크마주석/기독지혜사 1990』
『기독교대백과사전(The christian encyclopedia)/기독교문사 1997』
『신약성서 시대사/한국신학연구소 1986』
최영실역『신약성서의 여성들/대한기독교서회 1997』
고병려역『마가福音의 理解/종로서적 1981』
또한 한 몸을 이룬다는 말은 가정을 이룬다는 말이 되는데 가정이란 남녀 두 사람만의 결합체라는 좁은 의미보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념하는 사랑의 공동체요,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계속성을 유지하는 생명전파의 건전한 기관이자,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받고 그 통치의 확장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거룩한 선교적 공동 운명체라는 넓은 의미까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위에 6~8절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이혼의 부당성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결혼은 이처럼 남녀가 한 몸을 이루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질서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혼은 곧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한다는 결론이 가능해 진다. 9절에서 말하는 ‘짝지우다’는 말은 헬라어로 ‘쉬네쥬크센’(συνεζευξεν)이라고 하는데 본래의 뜻은 ‘함께 멍에를 메다’의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은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협력하는 동반자 이면서 같은 운명자임을 암시해 준다. 예수의 의도는 이처럼 결혼은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제도이며 그 결합은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믿고 남녀가 서로 협력하여 살아가는 공동운명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나누어서는 안된다.” 는 말에는 결혼의 불가분리성(不可分籬性), 곧 이혼의 절대 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권위가 자리 잡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혼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이 되는 이 말은 결혼은 하나님의 뜻이고 이혼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반역으로 암시된다. 결국 이혼의 금지는 하나님의 뜻임을 선포하고 있다.
[10~12절]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그는 그 여자에게 간음을 행한 것이요, 또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그 여인은 간음을 행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율법에 대한 새로운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비록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이혼증서를 써주어 이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 이혼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혼은 창조질서에 위배된다는 전제하에 법률적, 도덕적 탈선임을 설명한다. 즉 이혼 행위를 간음으로 규정했을 때 모세의 율법으로 보면 돌로 처형당할 만큼의 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당시의 이혼이란 재혼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으므로 예수가 이혼을 재혼과 간음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남자 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이를(간음죄) 적용함으로서 남녀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본다. 하지만 유대사회의 특성상 여자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았고 남편에 예속되어 왔음을 볼 때(참고: 4. 유대인의 결혼과 이혼, 4p 3번째 단락) 12절의 진정성(眞正性) 문제가 대두 되지만 이 구절은 아마도 당시 이방인들을 당시 로마사회는 여자의 권리가 다소나마 인정되었다.(참고: 2. 말씀이 나올 전후 시대적 배경, 2p 3번째 단락) 염두 해두고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재혼에 대한 금지를 말하기 위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결혼에 대한 예수의 입장은 유례없을 정도로 새로운 것이었다. 그는 일부일처제를 찬성했을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 이혼을 철저히 금했다. 또한 그는 이혼을 금지하면서 율법에 대한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왜냐하면 율법은 남자들의 강퍅한 마음 때문에 이혼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결혼은 취소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는 남자든 여자든 이혼한 사람과 재혼한 사람을 간음한 것으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짝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는 이유로 첫 번째 상대자와의 결혼관계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처럼 유례가 없을 정도로 결혼을 높이 평가하고 성화시킴으로써 결혼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선언한 성서의 말씀을 진지하게 다루었고 그 시대에 널리 퍼져있던 잘못된 결혼관과 이혼, 재혼하는 것 등을 지적하고 비판하였다.
6. 나가는 말
이상과 같이 마가복음 10:1~12의 말씀이 나올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사상적 조류 속에서 자행 되어온 결혼법과 이혼법을 예수의 말씀과 비교해 보았다. 당시의 로마사회나 유대사회에서 문란했던 이혼과 재혼의 문제가 비단 그 사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의 20대, 30대의 이혼율이 세계최고에 육박하고 부정한 성관계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예수의 말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 하겠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결혼의 상대자를 쉽게 포기해 버리려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결혼에는 더욱 더 고귀하고 참된 또 다른 일면이 있다. 복음은 결혼을 남녀가 서로를 속박하는 인간적인 법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영구적인 축복의 수단이 되는 것 이라고 이야기 한다. 진정한 결혼은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또한 축복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신성하게 제정된 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고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인간의 본질이 가장 충만한 완전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 참 고 도 서
『國際聖書註釋/한국신학연구소편 1986』
에두아르드 로제역『신약성서 배경사/대한기독교출판사 2002』
요아힘 예레미아스역『예수시대의 예루살렘/한국신학연구소 1988』
헬무트 쾨스터역『신약성서 배경연구/은성 1996』
한상인역『신약 고고학과 배경사/대한기독교서회 2002』
『호크마주석/기독지혜사 1990』
『기독교대백과사전(The christian encyclopedia)/기독교문사 1997』
『신약성서 시대사/한국신학연구소 1986』
최영실역『신약성서의 여성들/대한기독교서회 1997』
고병려역『마가福音의 理解/종로서적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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