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퇴계의 학문과 일본에 끼친 영향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본문내용

1818∼1891)는 大塚退野의 學을 그리워하고 李退溪를 존신했다. 小楠은 퇴계를 明의 薛瑄과 나란히 『古今絶無之眞儒는 朱子以後此二賢에 그친다.
) 山崎正董 『橫井小楠』 遺稿篇 本壓一部宛書翰 (阿部吉雄 『日本朱子學と朝鮮』 480頁所引)
」라고 말하여 『自省錄』의 「第一須先將世間窮通得失榮辱利害, 一切置之度外, 不以累於靈台, 旣弁得此心, 則所患蓋己五七分休歇矣
) 『退溪先生自省錄』 (日本刻版) 下 321頁 答南時甫彦經 『退溪先生文雄』 卷14 所收
」라는 글을 사랑했다고 한다. 퇴계는 세간 사람의 욕구하는 일체의 것을 가지고 천하의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그 고상하고 고귀한 형태의 금욕이야 말로 생을 최고로 충실케 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금욕적 도덕은 생의 충실감 혹은 강도에서 생기는 것이고, 그것은 또 대장부의 이룩하는 바에 속하는 것이라고 단정되었을 것이다. 小楠은 학문의 본령은 퇴계의 이 말에 있다고 했다고 한다.
) 『橫井小楠』 遺稿篇 德富一敬宛書翰 (阿部吉雄 『日本朱子學と朝鮮』 481頁所引)
元田東野는 明治天皇 侍講이 되어 明治 이후 일본의 교육방침에 강한 영향을 끼친 분이다.
-495-
幕末로부터 明治期에 있어서 가장 깊이 체험적으로 李退溪의 학문을 섭취한 것은 楠本碩水(1832∼1916)일 것이다.
碩水은 말한다. 「李退溪善學朱子, 觀其朱子書節要, 可以見矣」
) 『碩水先生遺書』 卷8 2頁表(겉)
, 「李退溪野皆善得朱子家法」
) 同上 23頁裏(속)
, 「闇齋則能究朱子之學, 退溪則能學朱子之道, 退溪文集及年譜, 言行錄皆不可不讀」
) 同上 卷10 23頁裏(속)
, 「朝鮮諸儒, 退溪以前折衷於退溪, 退溪以後無出於退溪之外者」
) 同上 卷11 22頁裏(속)
라고 한다. 碩水의 시에서 「山人獨耽靜, 焚香坐茅亭, 流水鳴石澗, 然人靜聽」
) 同上 卷2, 2頁表(겉)『間坐』 詩其2
라고 하였다. 碩水는 明治維新 이후, 時流를 타는 것을 굳이 거절하여 崎門學派의 하나의 주자학자로서 자기의 신조에 따라 긍지를 가지고 살아 나갔다. 碩水은 名利吟에 「求名則得名, 求利則得利, 所以世間人, 營營求不置, 一念苟焉, 足爲心術累, 透了此兩關, 如可全吾義, 丈夫期大成, 須且尙其志, 請看嶺頭松, 終年含晩翠」
) 同上 卷4, 2頁裏(속)
라고 하였다. 碩水은 名과 利라고 하는 兩關에 대한 執看, 악착같이 구하여 마지않는 생각 번뇌는 모든 生을 유익하게 이끌어야 할 창조적인 힘의 작용을 촉구하지 않고 역으로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러한 집간 속에 생명의 쇠퇴를 보기 때문이다. 名利의 兩關에 대한 적절한 단념과 淸澄하고 용기있는 무관심이야말로 생의 그 자체의 깊은 기쁨에 연결되는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 것이다. 「流水」나 「嶺頭松」 등은 碩水의 「全吾義」라는 내적인 무한한 기쁨에 이어지는 풍부한 원천이고, 자유롭고 평안한 生의 보람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도연명을 사랑하고 세속을 벗어나 「天眞」
) 『退溪先生文集』 卷1 和陶集飮酒 20首其2
을 보려고 한 李退溪의 心境에 이어지는 것이 있다.
-496-
碩水은 明治維新 이후 문명개화가 진보하는 가운데 전통문화는 무시되어 문명이 본질적으로 공리적으로 되어가는 시대상에 비판적이었다. 따라서 시류를 타고 영광을 잡는 것을 거부하고 외면적으로는 패배의 자세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는 山野에 獨居하여 스스로 믿는 學의 자득에 勵進한 것이다. 그러한 碩水의 硬質의 志操와 완고한 태도는 그대로 날카로운 시대 비판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阿部吉雄씨는,
「일본의 주자학은 幕藩體制의 안정화에 기여했으나 동시에 그 체제의 타파에도 기여하고 있다. 반주술적 합리주의의 추진력이 되어 학문이나 사상을 재빨리 종교교단의 지배에서 이탈시키는 힘으로 되었으나 동시에 일본인의 도덕적 심정을 심화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와같은 주자학의 사상은 朱晦庵에게서 李退溪를 거쳐 山崎闇齋에 이르러 드디어 발휘되어 민족의 활력의 원천으로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云云」
) 阿部吉雄 『日本朱子學と朝鮮』 序 5頁
라고, 일본 주자학의 특색과 李退溪의 영향에 대하여 간결하게 진술되어 있다. 또 아부씨는 李退溪를 제 2의 王仁이라고도 표현하고 있다.
) 阿部吉雄 『李退溪』 序說 2頁
-497-
주자학은 동아시아 세계에 있어서 수 세기 이상에 걸쳐 학술문화의 支柱로 되어 왔다. 특히 江戶期의 학술문화에 대한 李退溪의 주자학의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今後라도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더욱 연구를 깊이 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키워드

  • 가격1,3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2.04.26
  • 저작시기2002.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337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