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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을 창안하려는 이들의 문제의식은 좋다. 기존의 교사들이 떠맡아온 구실의 '일부'를 이것이 대신하리라는 예상은 충분히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 사업'을 기계가 온통 해결해 주리라 보는 것은 너무 얄팍한 생각이다. 학생을 주인으로 대접하라? 구성주의가 최초로 이 말씀을 퍼뜨렸노라, 유세하지 말라. 기존의 통찰력 있는 교육학 사상들은 다 나름으로 '학생을 중심에' 놓고자 애써 왔다. 이 구호를 핑계 삼아, 교육노동을 섣불리 유연화하고, 교육노동의 가치를 폄하해서는 학교 현장에 혼란만 부추길 따름이다. 학생이 '꼭 알아야할 고정세계'는 없는가? 기성 학교가 주입해온 지식들 중에는 불평등한 사회질서를 정당화하거나 엄밀한 과학성을 결여한 지식도 많았다. 그 독단성과 허술함을 밝혀내는 것은 의미있는 과업이지만, 그렇다 하여 객관적 지식/진리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해서는 '지적(知的)인 몽매주의'로 빗나가기 십상이다. 글 첫머리에 인용한 보고서에서는 2020년의 학교에 '교육 관료들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 예상한다. '학생/교육수요자/소비자'를 떠받든다면서, 왜 관료들이 주름잡는가? 관료 권력이 커진다 함은 이들이 누군가를, 다시 말해 교사 집단을 짓누르고 통제할 필요성이 상존(尙存)한다는 얘기 아닌가?
공교육은 혁신되어야 한다. 지리한 수업을 '더러' 기계가 대신해줄 부분이 있다면 두말없이 기계에게 넘겨야 한다. 학교는 지역의 문화체육센터로서 공동체 문화를 가꾸는 소임을 더 크게 맡아야 한다. '교육 복지'를 실현하려면 학교가 변함없이 바빠야 한다. 그런데 구성주의 담론에는 이 개념이 들어 있지 않다.
공교육은 혁신되어야 한다. 지리한 수업을 '더러' 기계가 대신해줄 부분이 있다면 두말없이 기계에게 넘겨야 한다. 학교는 지역의 문화체육센터로서 공동체 문화를 가꾸는 소임을 더 크게 맡아야 한다. '교육 복지'를 실현하려면 학교가 변함없이 바빠야 한다. 그런데 구성주의 담론에는 이 개념이 들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