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여성주의 방법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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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들어가는 말: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던 여성주의에 대한 예비적 고찰

2.데리다의 차연 그리고 해체

3.맺는 말

본문내용

전략은 논리적으로 정연한 방식으로 짜여져 있지만 여전히 관념적 유희에 불과하다는 비난의 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차이나 다름을 기반으로 성립하는 기호 체계의 유희에 머물러 있는 데리다의 해체 전략은 근원적인 면에서도 한계를 나타낸다. 데리다의 침묵이나 심연, 무덤, 절대적으로 아님 등은 기호 체계가 드러내는 차이에 기생해서만 작용한다. 데리다의 절대 타자는 우선적으로 현존하는 것(또는 기호)들의 가능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차이에 기생해서 작용한다. 데리다의 타자는 그것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지니지 않는, 다시 말해서 인간적 규정이나 현존하는 것들의 고유성을 전혀 갖지 않는 침묵하는 무엇이다. 데리다의 차연 작용에서 등장하는 침묵하는 타자는 이 세상에 드러난 것들의 현전성, 그것들을 드러나게 하는 현전 작용을 매개로 해서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전하는 것들에 대한 효과적인 해체의 계기로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현전하는 것들의 고유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데리다의 절대 타자는 현전하는 것들의 고유성이나 동일성과 연관을 갖는다. 데리다의 절대타자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주어진 기호(개념), 또는 현존하는 것들의 규정성이나 고유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또 그에 기생해서만 작동하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에서 주어진 개념이나 기호, 또는 현존하는 것들은 불가피하게 해체의 길을 걷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무근거한 것은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의 차이나 차별이 대립하고 있는 두 개체들 중 어느 한편의 소멸을 의미할 경우, 소멸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 차별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기 존립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차별이 생기는 순간 한 개체가 소멸할 수밖에 없다면 그 차별은 어떤 의미에서도 그 개체의 의미나 가치의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침묵하는 절대 타자는 이렇게 발생하는 순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체들의 완전한 소멸을 초래하는 차별의 "기원"으로서 등장하지 않는다.
존재와 비존재가 어떤 의미에서도 공존이 불가능하고, 비존재가 존재의 소멸을 함축한다면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차이(difference)는 존재의 정립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런 차별이나 차이는 어떤 경우에도 현전하는 것들의 고유성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나 이유일 수 없다. 이에 비해 데리다의 차연 작용이 기생하고 있는 차이는 현전이나 존재의 조건이다.
상대와의 차별 때문에 힘없고, 돈 없고, 배운 것 없이 철저하게 소외된 자들, 강대국의 위협 앞에 자존심을 굽혀야만 하는 약소국들, 전쟁에 패배하여 비참하게 종속되어 역사를 상실한 민족들에게 기호들의 차이에 기생해서 그런 차이 정도만을 해체하는 계기로 등장하는 데리다의 절대 타자나 차이의 유희 작용은 구원의 목소리가 될 수 없다. 현실 세계 가운데서 철저한 절망, 좌절, 소외를 체험한 인간이나 민족에게 상대와의 차별이나 불평등을 해체해낼 수 있는 계기는 데리다가 말하고 있는 절대타자에 의해서 마련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 점은 여성주의의 근본이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실천 속에서 찾아진다고 보았을 때 데리다의 해체는 그러한 해방이 왜 유의미한 것인가를 정당화해주지 못하는 결정적 결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3.맺는 말
데리다는 의미 이해와 기호 교환의 배후에 있는 차이의 그물망은 전체적인 것이되 닫혀진 체계가 아니며, 또한 거기에는 고정된 위계나 질서도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차연은 현재 속에서 배제되거나 부재하는 타자들이 현재의 가능성을 구성하면서 남기는 차이와 지연의 흔적이다. 이렇게 그의 해체 속에는 개방과 무위계 그리고 타자의 끊임없는 침투가능성이 담겨있다. 그리고 아마도 여성주의가 데리다에게 매료당하는 것이 있다면 이런 것들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음성중심주의와 남근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중심과 주변 그리고 즉자와 타자 사이의 이분법을 끊임없이 해소한다.
그러나 그의 해체에는 언어를 구성하는 최후의 원리로서의 '행위' 그리고 이 행위가 실천되는 '삶의 형식(The form of life)'이 배제되어 있다. 아마도 이 삶의 컨텍스트를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데리다의 해체의 본질적인 측면이며, 데리다의 해체작업이 파괴적인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삶은 텍스트와 더뷸어 시작하는 것이 아니며, 세계 또한 텍스트와 더불어 시작하지 않는다. 그리고 철학 역시 삶의 일부로서 생각되는 한에서, 텍스트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 Newton Garver and S.C. Lee, Derrida and Wittgenstein(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1994) p.193
따라서 여성주의를 여성주의이게 하는 근거가 구체적인 삶의 맥락에서 모든 억압에서 해방된 여성을 지향하는 실천에 있다면, 데리다의 해체는 남성도 여성 못지 않게 타자라는 것은 보여줄지 모르지만 차별당하는 여성들의 삶을 설명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맥락을 발견한다.
"이러한 비판자들은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을 진정한 혁명적 투쟁행위 - 행진, 캠페인 벌이기, 보이코트, 저항행위 - 에서 지적 유희의 정원으로 돌아가는 현대의 쾌락주의자들로 간주한다."
) 로즈마리 통, 같은 책, p.365
다양성, 비본질주의, 비합리성 그리고 탈구성에 대한 찬양은 우리에게 기존의 것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고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심적인 여성의 자존심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남성들을 함께 주변으로 몰아내는 전략을 통해서 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의 서열관계를 정할 어떤 대안도 없을 때 여성주의가 지향하는 숭고한 목표의 가치는 누가 부여할 것인가. 인간의 해방의 귀중함은 인본주의와 인간가치와 평등의 궁극성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일 사정이 이런 것이라면, 여성주의는 오히려 계몽과 진보 그리고 지평의 확대를 믿는 하버마스의 끝나지 않은 현대에 그 보금자리를 차지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유혹에 나는 빠지게 된다. 여기서 다시 인간과 철학은 부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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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5.18
  • 저작시기2002.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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