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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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담론의 장, 담론적 관계

2. 동질적 약호의 추론

3. 이질적 약호의 해석

4. 서사, 그 담론적 위상

본문내용

러나 기호를 해석하는 것은 기호를 만드는 것이고 그 기호 역시 온전한 해석에 도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해석의 언어를 창조할 뿐 그것이 가리키는 알맹이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문, 서사, 문화가 이러한 해석의 언어로 존재할 때, 우리는 이들을 실현된 발화로 본다. 문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들일 수 있고, 서사나 문화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서사나 문화일 수 있다. 이들 발화는 약호로 추론되기 이전의 언어로 존재하면서, 수많은 해석의 그물을 짜나간다. "인간은 비합리적 동물이다."라는 문과 춘향전이라는 소설과 근대의 기독교 문화라는 전혀 이질적인 약호를 지닌(것으로 간주된) 담론들이 만남으로써 새로운 해석의 그물을 짤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약호로부터의 해방! 그러나 완전한 해방은 존재할 수 없다는 역설적 상황에서 담론의 생산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앞서 제시한 문, 서사, 문화의 사례는 전혀 유사하지 않다. 우리는 이들 간에 공유하는 최소한의 것을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은 유사함을 바탕으로 한 동질적 약호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오독이며 잘못된 엉뚱한 해석이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은 단지 우리가 지배적인 약호를 절대적으로 신뢰한 데서 오는 것이지만, 실상 텍스트의 어느 한 모퉁이 아주 사소한 곳에서 이러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또다른 해석이 움틀 수 있다. 우리는 문, 서사, 문화를 동질적 약호로 보면서 이들이 갖는 유기성이나 구조적 정합성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로써 그치는 것이다. 새로운 해석은 오히려 그것이 전복되는 곳에서 시작한다. 그 새로운 해석이 갖는 <엉뚱함>을 그 해석은 많은 언어를 만듦으로써 극복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발상을 야기시킨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가설로 내세울 수 있다. 그 가설을 검증하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언어는 확실한 결론으로 우리를 유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검증을 통해 가설을 수정하고 다시 검증을 시작하는 순환의 고리 속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가추법의 과정 속에서 문, 서사, 문화는 그들의 이질성으로 인해 끝없이 새로운 언어를 생산하는 기호가 된다. 이제 우리는 서사나 문화의 <잘못된> 해석이 담론의 장 속에서 엄연히 자신의 역할을 다함을 보게 된다.
4. 서사, 그 담론적 위상
애초에 이 글은 그 전제부터 잘못되었을 수 있다. 문, 서사, 문화라는 분절된 개념을 전제함으로써 이들이 마치 어떤 관념적 범주나 지시물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게 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서 이러한 형이상학적 오류에 빠질 위험은 늘 존재한다. 그것은 모든 개념을 동질화하고 모든 관계를 고정시키려는 언어 자체의 위험한 도그마에서 비롯된다. 이 글은 문, 서사, 문화를 담론의 장 속에 놓고 그 관계들의 다양성을 모색함으로써, 이러한 도그마에서 벗어나려 했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도그마를 만든 뒤에야 그것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이다.
문, 서사, 문화가 동질적 약호로서 담론의 장 속에 존재하면서, 체계를 형성한다. 체계는 체계에 의해서만 해석된다. 우리가 문, 서사, 문화가 갖는 이질적 약호를 통해 이들 간에 존재하는 수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논의할 때도 이러한 체계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체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러한 체계로부터 뛰쳐나가 의미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가 형이상학적 관념 속에 남아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그것을 미지의 영역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의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언제나 의미를 지시하는 언어를 말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기호의 세계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번째는 이러한 체계를 해체하는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약호가 하나의 제약, 제도, 관습이라면 이러한 것들 틈새에 존재하는 말하여지지 않은 것들을 말할 수 있다. 가령, 문, 서사, 문화의 상호 해석 과정에 개입하는 모든 규칙적인 것들 넘어서에 존재하는 것들은 늘 그런 규칙적인 것들을 위협한다. 우린 그걸 기술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라고 또한 약호화시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면 다시 우리는 체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이를 해체적 전략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런 해체적 전략은 문, 서사, 문화의 경계에 대해 말할 뿐이다. 혹은 늘 경계에서 기술할 수밖에 없는 모든 글쓰기의 운명을 말할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문, 서사, 문화 사이에 경계에서 이런 경계를 무화시킴으로써 우리가 설정한 단위들 간의 <차이>도 무화시킨다. 이와 함께 이에 개입한 구조주의적 사유도 무화시킨다. 우리는 이 글에서 이를 향해 간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었을 뿐이다.
이 글에서 문, 서사, 문화의 약호들은 구조적인 관점에서 상호작용하고 상호해석한다. 이들은 모두 담론의 세계에 함께 존재한다. 이들이 담론의 세계에서 맺을 수 있는 수많은 관계들을 모두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담론의 세계는 또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을 갖는 담론을 생성하기도 한다. 담론을 넘어서고자 하는 담론이 지향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 형이상학적 관념의 세계이거나 해체적 언어의 세계다. 그러나 그것 역시 담론 속에 포함된다. 이러한 역설이 담론의 생생함을 보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서사가 담론의 세계에 존재하는 위상은 비록 불안하고 유동적이지만, 언어로 존재하고 또한 언어로 존재하는 서사 외적인 모든 것들과 관계맺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첨부
송효섭
주소: 서울 마포구 신수동 1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약력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삼국유사의 환상적 이야기에 대한 기호학적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삼국유사 설화와 기호학』 『문화기호학』 『설화의 기호학』이 있고,
논문으로 "국문학 교실에 <텍스트>는 있는가" "초월성의 기호학" 등이 있다.
  • 가격2,3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2.05.27
  • 저작시기2002.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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