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역사스페셜 - 삼국사기, 총신편, 기록타이트, 온달과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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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kbs역사스페셜 - 삼국사기, 총신편, 기록타이트, 온달과 공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스튜디오 1.>

<스튜디오 2.>

<스튜디오 3.>

<스튜디오 4.>

<스튜디오 5.>

스튜디오 6.>

본문내용

# FS -남한강유역에는 이곳 영월 왕검성을
비롯해 태화산성, 단양의 온달산성등
수많은 산성들이 밀집돼 있다.
산성들과 험한 산악지형은 온달이
이곳으로 내려왔을 가능성을 짐작케한다.
# 박효상 인터뷰 위치가 바로 왕검성이다, 강건너가 태화산성이고. 그 산뒤가
영춘. 온달산성이다. 왕검성에서 온달산성까지 40리 길이다.
# 국립지리원외경 -온달이 남한강유역을 이용해 내려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 내부 pan -항공사진분석을 통해 남진루트를
추정해보기로 했다.
# 모니터 -온달은 내륙방면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 사진 강 TR -이는 강원도와 영서지방, 충북지역을 통해
소백산맥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한강 하류지역의
신라군을 피해 이를 수 있다.
그중 가장 주목되는 것이 철원 춘천 홍천 원주
단양으로 연결되는 교통로다.
# 조한근인터뷰 항공사진을 보면 지형적인 특징을 볼 수 있다. 강원도 영서지역의 특성은
산이 높고 협곡이 발달돼 있고 협곡과 협곡을 연결하는 지류만 잘 연결해도
남한강 상류와 쉽게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원주 춘천 단양은 남한강 상류
만 잘 이용하면 자연적인 교통로가 형성이 된다.
# 중앙고속도로 -남진루트는 지금의 중앙고속도로와 비슷하다.
쉽고 빠르게 들어올 수 있는 길인 것이다.
# 지도 CG -온달은 철원을 지나 춘천, 원주,제천을
통해 단양으로 진격한다.
신라의 주력군을 피해 강원도 내륙지방으로
우회한 것이다.
# 서영일 인터뷰 서울 한강하류를 거쳐 충주에 이르는 길은 신라의 주력군이 방어하고 많은
방어시실이 있고 한강넓은 지역을 도강해야하는 어려움이 있고. 반면 강원도
내륙으로 우회하는 그런 위험이 덜할 뿐 아니라 신라의 주력을 피해 신라의
후방을 공격 허점을 노릿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죽령과 계립령을 통과해서 한
강하류로 연결되는 신라의 보급로를 차단해서 한강하류의 신라군을 무력화 시
킬 수 있다.
# 지도 CG -온달이 이길을 선택한 것은
경주에서 남천주로 이어지는 신라의
방어체계를 갈라놓고.
한강유역을 지키는 신라를 배후에서
압박 고립시키겠다는 의도였다.
# 말달리는 온달은 계속해서 신라군과 전투를 치르며
단양으로 진격해 들어간다.
# 이도학 인터뷰 고구려 군대가 남한강 상류지역에 진출하면 한강하류지역에 신라이 최정예부
대가 있기 때문에 이동해서 온달의 고구려 군대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는
것이다.이것을 차단하기 위해 고구려 군대가 한강하류를 공격해 신라군단의
발을 묶어놓게 되고 이것이 결국 온달이 이끄는 고구려 군대의 남하는 용이
하게 했다.
# 지도 CG -온달이 남진하는 동안 또다른 고구려군이
한강하류에 있는신라군의 발목을 묶어놓는다.
양동작전은 고구려의 전형적인 전술인 것이다.
# 부감->산성 -그러나 온달은 온달산성에서 최대의 고비를
맞게되고.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만다.
고구려의 염원을 안고 출정한 온달.
온달은 고토회복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일까.
# 사기 -온달이 상당한 영역을 회복했을 가능성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당의 사신인
현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입할 당시 신라가
우리땅 500여리를 빼앗았다.
수의 침입전에 누군가가 500여리를
확보한 것이다. .
# 말달리는 -수의 침입기는 598년과
612년에서 614년.
그런데 온달이 590년에 출병한다.
# CD롬
-수의 침입기전에 고구려와 신라사이에
전쟁이 없다면 500여리는 온달이 확보한 것이
된다.
# 컴퓨터보는 -삼국사기를 확인했지만 대규모 전쟁과 실지회복
기사는 없었고 온달이 출병한 것이 유일했다.
500여리를 확보한 것은 온달이 분명한 것이다.
# 서영일 인터뷰
일반적으로 고구려가 한강상류를 상실한 것은 553년으로 얘기된다.
그런데 연개소문은 신라가 고구려의 남쪽 500여리를 뺏아간 시기를 수의 침입기라고 말
한다. 수의 1차 침입은 598년에 있었고 2차침입은 612부터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그러
니까 598년 이전에 누군가가 잃었던 한강유역의 땅을 다시 회복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
러면 그 사람이 누구냐. 삼국사기 본기 고구전이나 신라본기는 전투기사가 없다. 다만
온달전에 보면 온달이 590년 초반에 출정한 것으로 돼 있다.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온달
이 590년에 출정해서 상당한 영역을 회복했고 그 이후에 다시 고구려가 신라에게 재상
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헬기S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리라는 염원을 안고
온달산성에서 최후를 맞은 온달.
그는 계립령과 죽령이서의 500여리를
회복했던 것이다.
# 관앞에 공주 온달이 죽자 시신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죽고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으니
그만갑시다라는 말을 듣자 관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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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6.>
# 관앞에 울고 있는 공주 , MC 다가가고
"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그만 갑시다. 장군."
사랑하는 평강공주의 간절한 호소에 그제서야 관이 움직였다는
이야기속에서 죽어서라도 고구려의 땅을 지키겠다는 온달의
강렬한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고구려의 옛땅를 회복하자는
원대한 목표를 함께 나누고 이를 위해 희생과 고통을 감내한
온달과 평강의 고귀한 사랑.
이속엔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물론 당시 고구려 사회의
정치적인 상황이 담겨 있습니다.
외적의 침입과 귀족사회의 내분을 수습하고
마침내 빼앗긴 영토 회복에 나서는 6세기 고구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온달과 공주 CG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 가난과 신분을 뛰어넘은 온달.
그는 신분상승에 대한 고구려 민중들의 열망을 대변하는 인물이었고
북방민족의 침입을 격퇴하고 대제국 고구려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나선 고구려인들의 국민영웅이었습니다.
당대 고구려의 꿈이자 희망이었던 바보온달.
평강공주와의 사랑이야기와 그의 비장한 최후는
지금까지도 그를 사랑받는 설화의 주인공으로 기억하게
만든 것입니다.
  • 가격3,300
  • 페이지수22페이지
  • 등록일2002.07.08
  • 저작시기2002.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8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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