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MU NOGUCHI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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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배경과 영향
1. 초기의 교육
2. Constantin Brancusi
3. 초현실주의
4. 동양적 미학

Ⅲ. 작품연구
1. 전전(戰煎)의 작품들
2. 40년대 작품들
3. 50년대의 작품들
4. 1960년대 이후의 작품들

Ⅳ. 결론
1. 추상조각의 전개
2. 동양미학의 수용
3. 총체적 예술의 실현

본문내용

모든 생물의 단위소를 결정하는 단위소를 상징한다. 후에 제작한 Fountain for Expo 70 이나 The Pylons for the Civic Plaza 등은 그의 이러한 이미지를 실험하는 작품이다. 1985년의 Helix of the Endless에서 이 이미지는 다시 반복된다. 이는 부랑쿠지의 Endless Column을 연상시킨다.
70년대 이후에도 노구찌의 환경조형물의 제작은 계속 왕성히 진행되었다. 76년에 제작한 뉴욕의 토쿄은행의 인테리어 디자인, 같은 해 제작한 Atlanta의 Piedmonk공원의 어린이 놀이터, 77년 역시 일본의 건축가이며 전위 적인 조형가인 Tange Genzo와 함께 만든 토쿄 소재의 Sogetusu 꽃꽂이 학교의 인테리어 디자인, 76-77년에 제작한 그의 대표적 조형물 중 하나인 Detroit Civic Center Plaza는 앞에서 설명한 The Pylons과 거대한 분수인 Fountaion를 포함하고 있다.
1971년에 노구찌는 일본의 Shikoku섬에 작업실을 내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화강석과 ba-salt를 현지의 석공예가들의 도움으로 조각했다. 70년대 초부터 그는 시코쿠에서 일년의 반을 보내며 그의 대부분의 조각작업을 했으며, 나머지 일년의 반은 뉴욕 롱아알랜드시의 작업실에서 보내며 대형의 환경 조형물을 계속 만들었다. 이들 시코쿠의 많은 작품들 중에는 아직 제목도 붙여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작품들이 있다고 한다.
1980년 미국의 Whity Museum of Art에서는 개관 50주년전으로 노구찌 회고전을 개최했다. 그리고 1983년 에는 뉴욕의 롱아일랜드에 노구찌의 Garden Museum이 세워져 많은 방문객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Ⅳ. 결론
1924년 첫 조각품을 만든 이래 그가 죽은 1989년까지 노구찌는 69년동안 지칠 줄 모르는 정력으로 작업에 임했으며, 무려 1천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이 작업량은 그의 작업속에 많은 수의 대형 조각품과 환경 조형물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욱 놀라운 것이다. 그의 작업량이 방대했다는 점과 함께, 노구찌는 앞에서 살핀바와 같이 조각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조형작업과 관계했으며, 수많은 조형적 실험을 병행했으므로, 작업의 전반적인 예술 사조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노구찌의 전 잔업을 시대별로 개관해본 논문에서는 이제 결론으로서 이들 작업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다음과 같이 세가지 측면으로 요약해 보고자 한다.
1. 추상조각의 전개
노구찌의 작업의 주종이라 할 수 있는 조각품들은 모더니즘 추상조각의 활달한 전개와 다양한 실헙이었다는 조각사적인 의의를 가진다. 브랑쿠지, 아르프, 피카소, 자코메티 등의 유럽에서의 최선두 추상조각가로부터 영향을 받은 노구찌는 40년대부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추상작품을 전개한다. 이들 작품의 바탕에는 최소한의 형태와 구조를 통한 물성과 이미지의 표현이라는 초기 추상운동의 개념이 흐른다. 40년대에는 초현실주의적 조형언어를 보여주며, 동양적인 미학에서 영향을 받으면서 50년대 이후의 형태는 더욱 단순해지는 미니얼리즘의 경향을 띄게 된다.
노구찌는 나무, 돌, 금속, 끈, 흙, 합성수지, 유기물질 등의 다양한 매체를 그의 작품에 활용했으며, 각 매체를 다룰 때마다 이들의 재질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형태와 구조를 찾아내는데 역점을 두었다. 또한 형태적으로 볼륨을 강조하는 형태, 선적 구조로 이루어진 형태, 유기적 형태, 기하학적인 형태, 건축적인 구조 등 매우 다양한 조형어휘를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노구찌의 조각은 청동주조와 철용접에 주로 의존했던 당시까지의 조각에 주류에 재질의 다양성, 그리고 형태적 구조에 다양성을 부가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2. 동양미학의 수용
노구찌의 작업은 동양의 미학을 서양적 모더니즘의 양식에 성공적으로 담아낸 예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인 아버지를 두었던 노구찌는, 조각가로서의 기본적인 조형훈련과 추상운동의 언어를 충실히 공부한 2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뿌리에 대한 연구와 이와 관련된 수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결과로 얻은 동양의 정신세계와 미학적 특징은 그의 전 작업을 통해 가장 중요한 잇슈가 된다.
재료와 재질감의 즉물적 처리, 무위성, 여백과 Void의 적극적인 도입, 원시적 단순성과 양식화, 즉흥성, 선의 동세를 모티브로 한 조형 등은 50년대 이후의 노구찌의 추상작품들에서 뚜렷하게 부각되는 조형적 특징들로 그의 동양적 체험의 결과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70년대 이후 일본에서 제작한 돌작품들을 보면 무위사상 혹은 서양의 후기 미니얼리즘의 경향이 농후하며, 그는 작품을 제작한다기 보다 재료가 이미 가지고 있는 미적 특징, 혹은 에너지를 단지 발굴해내고 소개하는 듯한 작업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3. 총체적 예술의 실현
노구찌의 작가적 역량은 그의 조형작가로서의 전문성과 함께 현실 사회에 대한 애정, 그리고 전통적인 형식이나 장르에 구애되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좋은 작품을 가능한 많은 대중들이 향유하길 바랬으며, 그 자신의 주변 환경을 끊임없이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이는 결가적으로 그가 조각가 뿐만 아니라 조경가, 실내 디자이너, 무대 예술가, 프로덕트디자이너로서 많은 작업을 하도록 만들었다.
노구찌는 그의 조각을 주변환경속에 수용시키거나, 혹은 일상의 기능과 접합함으로써 조각세계의 틀을 깨며 그 영역을 더욱 자유롭게 확대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각작품의 형태적 구조들을 그가 디자인한 가구에, 무대 위에, 놀이터에, 정원에, 자유롭게 끌어들임으로써 소위 정신예술과 실용예술의 간극을 없애며, 그의 형태와 구조에 끊임없이 새로운 옷을 입혀보고자 노력했다.
결론적으로, 노구찌는 이 많은 유형의 작업들이 각기 독립의 영역을 가진 개체들이 아니라, 상호유기적 관계를 가진 존재들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즉, 각 작품들은 상호간에 혹은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환경과 건강하게 관계를 가질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는 점을 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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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2.09.15
  • 저작시기2002.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3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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