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신학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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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즉 하나님의 어린양에 관해서만 끊임없이 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접근하기 위하여서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169) 프란즈 크사베르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가 인도에서 우상숭배자들 을 만나기만 하였던 반면에 일본에서는, 일본의 문화는 우상숭배 이상이라는 것을 인정하여야만 했다. 겐지헨은 이 말에 동의하여, 복음의 내용을 손상시키지않기 위하여 단순히 변치않게 보관괸 정보 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불만족스러우며 , 그러나 복음을 듣는이들이 이미 알고 있거나 소유한 것에 대한 신념을 단순히 강화해주는 것 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이다고 말하였다. (170) 그가 이 문제를 상세하게 다루면서 다음의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의사소통은 양극사이에서 즉, 한편으로는 현지의 문화에 단순히 적응하는 것,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적인 갱신하고 강조점을 이동시키는 것 항상 왔다갔다해야 한다 ; 왜냐하면 우리는, 복음이 문화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아니함을 확신하며, 장기간의 모든 변화들이 문화 그자체로부터, 그리고 다른 영향들 때문에 문화의 충돌을 경험할 수 있는 곳에서 조차도 나올 수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171)
사도의 편지인 Catechesi Tradendae"(177)가 나타난 이래로, Inkulturation이라는 용어는 로마가톨릭 내에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그것을 넘어서 이미 채용되었다. 교황 요한네스 바울 2세는 생각하기를, 이 신조어는 성육신의 엄청난 비밀의 한 가지 면을잘 표현해준다 고 한다. 이 용어는 복음의 능력을 문화와 문화들의 한가운데로 가져가자 고 요구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문화들과 문화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는 아는 것, 문화의 가장 의미심장한 표현들을 배우는 것, 그리고 문화의 가치와 풍부함을 존중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태도는 감추워진 신비한지식을 문화들에 제공해줄 수있을 것이며, 그리고 문화들이 자신들의 현존하는 전통으로부터 그리스도교적인 삶과 의식과 사상을 독창적으로 표현하도록 도울 것이다. 교황은 반복해서 이 신조와와 복음의 성육신 사이의 비슷한 면들을 이끌어낸다. 또한 문화를 변형하는 것 , 거듭나게 하는 것 , 그리고 올바르게하는 것 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적인 대화 가 단순한 문화들의 대화 와는 구분이 되는 것임을 발견한다.(173) 이 교황이 특별히 문화들을 존중하였다는 점은, 예를 들면, 1979년 4월 26일에 성경위원회로 보낸 그의 편지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만약 하나님께서 문화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도구 로 사용하신다면, 문화들은 확실히 매우 커다란 가치를 가져야만 한다. 이 점은 이미 하나님의 로고스가 태어날때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복음을 선표할 때에 현대의 문화적 표현들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며, 그럼으로써 현대의 문화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위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174)
토착인 선교사에 관한 문제는 오늘날 단지 역사적인 문제거리일 뿐이다. 토착의 사람이 스리스도교 생활의 성숙 에서 중요한 요소이라는 생각은 지금까지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175) : 교리문답자, 교사들, 평신도지도자들, 수도사들, 사제들, 주교들. 그러나 이것이, 해외 평신도 선교사들을 혀용해서는 안된다거나 혹은 성직자는 온통 토착인 이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이 경우에는 세게성이 풍부하게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식민지 시대에 종종 있었전 일인데, 지도적인 위치에서 현지인들을 배제하는 생각에는 반대할 것임을 뜻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희망적인 두가지 발전을 언급하고 싶다.
a. 우리시대에 가장 즐거운 표지들 중의 하나는, 신생교회들 자신들이 선교사가 되었다는 점, 그교회들이 선교사들을 파송한다는 점이다. 이 점을 고려하여,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선교의 시대라고 말한 바 있다. 인도인들이 뉴기니아와 아프리카에서, 필리핀사람들이인도네시아와 남미에서, 가나사람들이 보츠와나에서, 일본인들이 브라질에서 일한다. 한국과 필리핀 출신의 간호사들이 독일에서 활동중이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교이다. 유럽인들은 선교의 시대가 이미 끝났는지에 관하여 의심하는 동안에, 신생교회들은 모든 민족에게로 가라는 주님의 명령이 또한 자신들에게도 주어지는 것임을 발견한다. 선교의 은사를 의식하는 것은 젊은 열정과 신선함의 징표이다; 모든 책임을 포기하고 자기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노쇠함의 징표이다. 또한 우리가 신생교회들에게서 선교의 열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징표이다.
b. 이방인들에게(Ad Gentes)라는 선교칙령은 교회를 심어놓을 때부터 종교적인 삶이 조심스럽게 촉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종교적인 삶은 선교활동에 값어치있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것은 교회안에서 하나님께 깊이 헌신함으로써 그리스도교적인 소명의 내면적인 특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176) 그런데 그 칙령이 신생교회들에게 명상적인 삶을 추천하는 방식은 더 주목할 만한 점이다: 명상의 삶은 모든 곳에서 회복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교회의 현존의 충만성에 속하기 때문이다. (177) 교회의 일들 (178)이라는 회칙에 드러난 피우스 11세의 권고와 같이, 이러한 권고는 열정적인 반응을 얻었고 그리고 많은 명상적인 명령들이 뒤따랐다. 인간의 활동은 중요하나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결정적이지 못하다라는 깨달음을 우리에게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하나님의 활동이야말로 결정적인 것이며, 이러한 까딸에 영적인 수단들이 우선권을 가진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부들은 이러한 확신을 그 칙령40항목에서 표현하였다: 기도, 고해, 고난 등드로써 명상적인 삶을 수행하는 것은 영혼을 회심시키는 데서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써 일꾼을 추수하러 보내셨고(참고. 마9:38), 비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듣게 하시고(비교.행16:14),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에서 구원의 말씀이 열매맺히도록 하시기(비교. 고전3:7)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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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2.10.03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5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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