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석방하고 평화를 누리게 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정하상은 마지막으로 교리에 대한 오해를 풀려고 한다. 이는 죽은 사람 앞에다가 술과 음식을 차려 놓은 것과 신주에게 절하는 것이다. 잠든 부모에게 음식을 대접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죽은 부모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올바르지 못하다고 말한다.
만약, 개신교가 먼저 이 땅에 들어왔다고 해도 그 가르침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그 논리가 매우 명약관화하며, 그 글에 실려 있는 힘이 매우 장중하게 다가온다. 순교의 길에 있어서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은 배교한 사람들에 비해 매우 적었지만, 그러한 모습들은 일본 강점기 아래의 개신교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으며, 진리에 대한 탐구, 하나님에 대한 논리정연한 논증, 확신에 찬 자세와 가르침은 가히 시대를 건너뛰어서 하나님의 자녀는 다 동일하구나 하는 감동을 가지게 한다.
백서에 나타난 황사영의 심정은 루터가 종교개혁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심정을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며, 그 방법에 있어서 무리한 면이 있지만, 지도자적인 입장에 있었던 저자의 성격에 비추어 별 오해를 살만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이 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뿌렸으며, 척사의 근거가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역사적 근거를 제시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또한, 서구의 침략과 함께 선교의 마당이 확대되었다는 후대에 비판에 대해 실제로 그 당시에 살았고, 그러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던 이로부터의 실질적인 심경을 들을 수 있기에 조금이나마 그 상황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정하상은 마지막으로 교리에 대한 오해를 풀려고 한다. 이는 죽은 사람 앞에다가 술과 음식을 차려 놓은 것과 신주에게 절하는 것이다. 잠든 부모에게 음식을 대접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죽은 부모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올바르지 못하다고 말한다.
만약, 개신교가 먼저 이 땅에 들어왔다고 해도 그 가르침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그 논리가 매우 명약관화하며, 그 글에 실려 있는 힘이 매우 장중하게 다가온다. 순교의 길에 있어서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은 배교한 사람들에 비해 매우 적었지만, 그러한 모습들은 일본 강점기 아래의 개신교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으며, 진리에 대한 탐구, 하나님에 대한 논리정연한 논증, 확신에 찬 자세와 가르침은 가히 시대를 건너뛰어서 하나님의 자녀는 다 동일하구나 하는 감동을 가지게 한다.
백서에 나타난 황사영의 심정은 루터가 종교개혁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심정을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며, 그 방법에 있어서 무리한 면이 있지만, 지도자적인 입장에 있었던 저자의 성격에 비추어 별 오해를 살만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이 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뿌렸으며, 척사의 근거가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역사적 근거를 제시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또한, 서구의 침략과 함께 선교의 마당이 확대되었다는 후대에 비판에 대해 실제로 그 당시에 살았고, 그러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던 이로부터의 실질적인 심경을 들을 수 있기에 조금이나마 그 상황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