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께 신학론에서 재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거룩함의 개념은 깨끗하지 못한것과 세속적인 것 두 개념과 대조된다. 그러나 거룩함이 완전히 깨끗한것과 동일시 된다면 거룩한 것은 그 깊이, 그 신비, 그 numinous적 성격을 잃게 된다. 그리고 세속적인 것에 대해서는 세속적인 것이 거룩한 것과 내재적으로 관계하고 있으며, 게다가 거룩한 것은 세속적인 것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종교와 문화의 역사는 거룩함의 뜻에 대한 분석과, 그것의 부정한 것과 세속적인 것에 대한 관계를 항상 확증하고 있다.
나가는 말
신의 현상학적 묘사에 있어서 발제자는 시인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을 생각해 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구절에서 나와 너의 관계를 나와 하나님의 관계로 설정하여 말한다면 아마도 틸리히는 꽃이라고 하는 것은 나에게 궁극적 관심의 대상인 "신(a being)"이 되기는 하지만 "존재자체(being-itself)"로서의 하나님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에게 a being 이면서 동시에 being-itself의 하나님을 따르기 원하고 그런 하나님을 찾고자 한다.
거룩함의 개념은 깨끗하지 못한것과 세속적인 것 두 개념과 대조된다. 그러나 거룩함이 완전히 깨끗한것과 동일시 된다면 거룩한 것은 그 깊이, 그 신비, 그 numinous적 성격을 잃게 된다. 그리고 세속적인 것에 대해서는 세속적인 것이 거룩한 것과 내재적으로 관계하고 있으며, 게다가 거룩한 것은 세속적인 것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종교와 문화의 역사는 거룩함의 뜻에 대한 분석과, 그것의 부정한 것과 세속적인 것에 대한 관계를 항상 확증하고 있다.
나가는 말
신의 현상학적 묘사에 있어서 발제자는 시인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을 생각해 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구절에서 나와 너의 관계를 나와 하나님의 관계로 설정하여 말한다면 아마도 틸리히는 꽃이라고 하는 것은 나에게 궁극적 관심의 대상인 "신(a being)"이 되기는 하지만 "존재자체(being-itself)"로서의 하나님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에게 a being 이면서 동시에 being-itself의 하나님을 따르기 원하고 그런 하나님을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