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신약성경에 나타난 <코이노니아>의 뜻과 쓰임새
1.1. 일반 고대 헬라어에서 <코이노니아>와 관련 낱말이 지니는 뜻
1.2. 신약 성경에 <코이노니아> 및 그 관련 낱말이 나오는 횟수와 개역 성경의 번역
1.3. `사귐`을 뜻하는 <코이노니아>
1.4. `참여`를 뜻하는 <코이노니아>
1.5. `나눔`을 뜻하는 <코이노니아>
1.6. <코이노니아>와 선포, 교육, 봉사, 예전
1.7. 정리
2. 헬라어 구약 성경에 나오는 <코이노니아>와 관련 낱말
3. <코이노니아>와 목회
3.1. 균형 잡힌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목회
3.2. 하나님과 사람의 <코이노니아>를 강화하는 목회
3.3.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코이노니아>를 강화하는 목회
3.4. 교회와 교회 사이의 <코이노니아>를 강화하는 목회
3.5. 열린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목회
1.1. 일반 고대 헬라어에서 <코이노니아>와 관련 낱말이 지니는 뜻
1.2. 신약 성경에 <코이노니아> 및 그 관련 낱말이 나오는 횟수와 개역 성경의 번역
1.3. `사귐`을 뜻하는 <코이노니아>
1.4. `참여`를 뜻하는 <코이노니아>
1.5. `나눔`을 뜻하는 <코이노니아>
1.6. <코이노니아>와 선포, 교육, 봉사, 예전
1.7. 정리
2. 헬라어 구약 성경에 나오는 <코이노니아>와 관련 낱말
3. <코이노니아>와 목회
3.1. 균형 잡힌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목회
3.2. 하나님과 사람의 <코이노니아>를 강화하는 목회
3.3.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코이노니아>를 강화하는 목회
3.4. 교회와 교회 사이의 <코이노니아>를 강화하는 목회
3.5. 열린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목회
본문내용
- 이런 마음으로써는 사람을 제대로 사귈 수가 없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코이노니아>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적으로, 그러니까 신앙적으로 무엇인가 주고받은 것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복음 안에서 빚지고 있다는 의식이 중요합니다. 돈 있는 사람, 학력이 높은 사람, 신앙의 연륜이 오랜 사람만이 무엇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가르친 바와 같이, 복음을 전해 받은 사람은 자기 가진 것을 복음 전해 준 사람과 나누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그 받은 가르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 가진 모든 좋은 것을, 말씀을 가르친 사람과 나누도록 목회자는 잘 안내해야 합니다.
(4) 균형 잡힌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목회자는, 바울이 언급하였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코이노니아>의 특별한 경우로 교회 지도자들 사이의 <코이노니아>도 소중히 여깁니다. 이 점에서 오늘 우리 교역자 세계에는 안타까운 점이 많습니다. 같은 교역자이지만, 큰 교회 교역자는 크게 대접받고, 작은 교회 교역자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큰 교회 교역자나 작은 교회 교역자나 마찬가지로 귀중한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작은 교회 교역자가 더 사랑스러우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교역자들이 서로 아름다운 <코이노니아>를 이루지 못하면서, 어떻게 신자들에게 <코이노니아>에 대해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교역자들 사이의 <코이노니아>는 또한 동역자 사이의 <코이노니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귀는 사귐입니다.
3.4. 교회와 교회 사이의 <코이노니아>를 강화하는 목회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이방 교회 신자들에게서 모금을 했고, 이 일에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힘에 넘치게 참여했습니다. 이로써, 교회와 교회 사이의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역 현장에서도 이런 <코이노니아>가 강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교회만 아는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일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저는 지역마다 교단을 넘어서서 교회끼리 사귀는, 그리스도의 일을 함께 하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일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교회들이 서로 아름다운 <코이노니아>를 유지할 때, 우리 나라 교회는 사회로부터 칭찬을 받고, 복음 선교의 길도 크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교단과 교단 사이의 <코이노니아>도 강화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단만이 최고다, 좋다고 내세우며 남의 교단을 비난하는 일은 사라져야 합니다. 남의 교단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안타깝게 보며, 위해 기도하며 그 문제가 해결하는 데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교회와 교회 사이의 <코이노니아>는 한국 교회와 다른 나라 교회 사이의 <코이노니아>도 포함합니다. 이리하여, 마침내 하늘 아래 모든 교회가 하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룸을 온 천하에 드러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3.5. 열린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목회
하나님(예수님, 성령님)과 그리스도인의 <코이노니아>,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인들만 위한 <코이노니아>가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다른 한편으로는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코이노니아>의 관계를 맺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두운 세상 한 가운데로 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한 가운데서 참된 <코이노니아>를 이루고, 모든 사람이 그 <코이노니아>를 맛볼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누리는 <코이노니아>는 온 세상을 향해 그 문을 활짝 열어둔 <코이노니아>입니다. 요한이서 11절에서 거짓 가르침을 퍼뜨리는 자에게는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코이노니아>가 닫힌 <코이노니아>란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맡기신 책임을 제대로 다하려고 할 때 겪을 수 있는 유혹의 손길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닫힌 <코이노니아>는 그 울타리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구원과 복만을 생각합니다. 닫힌 <코이노니아>는 오래지 않아 사라지고 맙니다. 주전 2세기 중엽 당시 타락한 종교계를 떠나 유다 광야에 자리잡고 자기들만이 마지막 구원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경전 연구와 금욕 생활에 몰두했던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쿰란 공동체가 그것입니다. 이 쿰란 공동체는 닫힌 <코이노니아>의 대표적인 보기입니다. 이들은 결국 주후 68년 경 로마군의 공격을 받아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쿰란 공동체와 대조적인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였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나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의 <코이노니아>는 열린 <코이노니아>로서 그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로 나아간 <코이노니아>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코이노니아>를 세상 끝날까지 유지하고 강화하고 확장해 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선후배 동역자 여러분,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목회"를 해 보려고 이미 여러분께서 많이 힘써 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함께 살펴본 내용은 오늘 처음 듣는 바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던 것이기도 합니다. 남은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실천하느냐 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특별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목회를 하려면, 일보다 사람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일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코이노니아>는 사라집니다. 교인은 교역자의 꿈이나 비젼을 실현하는 쓰이는 도구가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함께 하는 것, 동무되는 것이 <코이노니아>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코이노니아>가 우리와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만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랫동안 귀담아 들어주셔서 매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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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균형 잡힌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목회자는, 바울이 언급하였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코이노니아>의 특별한 경우로 교회 지도자들 사이의 <코이노니아>도 소중히 여깁니다. 이 점에서 오늘 우리 교역자 세계에는 안타까운 점이 많습니다. 같은 교역자이지만, 큰 교회 교역자는 크게 대접받고, 작은 교회 교역자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큰 교회 교역자나 작은 교회 교역자나 마찬가지로 귀중한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작은 교회 교역자가 더 사랑스러우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교역자들이 서로 아름다운 <코이노니아>를 이루지 못하면서, 어떻게 신자들에게 <코이노니아>에 대해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교역자들 사이의 <코이노니아>는 또한 동역자 사이의 <코이노니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귀는 사귐입니다.
3.4. 교회와 교회 사이의 <코이노니아>를 강화하는 목회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이방 교회 신자들에게서 모금을 했고, 이 일에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힘에 넘치게 참여했습니다. 이로써, 교회와 교회 사이의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역 현장에서도 이런 <코이노니아>가 강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교회만 아는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일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저는 지역마다 교단을 넘어서서 교회끼리 사귀는, 그리스도의 일을 함께 하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일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교회들이 서로 아름다운 <코이노니아>를 유지할 때, 우리 나라 교회는 사회로부터 칭찬을 받고, 복음 선교의 길도 크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교단과 교단 사이의 <코이노니아>도 강화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단만이 최고다, 좋다고 내세우며 남의 교단을 비난하는 일은 사라져야 합니다. 남의 교단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안타깝게 보며, 위해 기도하며 그 문제가 해결하는 데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교회와 교회 사이의 <코이노니아>는 한국 교회와 다른 나라 교회 사이의 <코이노니아>도 포함합니다. 이리하여, 마침내 하늘 아래 모든 교회가 하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룸을 온 천하에 드러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3.5. 열린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목회
하나님(예수님, 성령님)과 그리스도인의 <코이노니아>,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인들만 위한 <코이노니아>가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다른 한편으로는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코이노니아>의 관계를 맺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두운 세상 한 가운데로 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한 가운데서 참된 <코이노니아>를 이루고, 모든 사람이 그 <코이노니아>를 맛볼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누리는 <코이노니아>는 온 세상을 향해 그 문을 활짝 열어둔 <코이노니아>입니다. 요한이서 11절에서 거짓 가르침을 퍼뜨리는 자에게는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코이노니아>가 닫힌 <코이노니아>란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맡기신 책임을 제대로 다하려고 할 때 겪을 수 있는 유혹의 손길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닫힌 <코이노니아>는 그 울타리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구원과 복만을 생각합니다. 닫힌 <코이노니아>는 오래지 않아 사라지고 맙니다. 주전 2세기 중엽 당시 타락한 종교계를 떠나 유다 광야에 자리잡고 자기들만이 마지막 구원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경전 연구와 금욕 생활에 몰두했던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쿰란 공동체가 그것입니다. 이 쿰란 공동체는 닫힌 <코이노니아>의 대표적인 보기입니다. 이들은 결국 주후 68년 경 로마군의 공격을 받아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쿰란 공동체와 대조적인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였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나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의 <코이노니아>는 열린 <코이노니아>로서 그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로 나아간 <코이노니아>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코이노니아>를 세상 끝날까지 유지하고 강화하고 확장해 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선후배 동역자 여러분,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목회"를 해 보려고 이미 여러분께서 많이 힘써 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함께 살펴본 내용은 오늘 처음 듣는 바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던 것이기도 합니다. 남은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실천하느냐 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특별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목회를 하려면, 일보다 사람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일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코이노니아>는 사라집니다. 교인은 교역자의 꿈이나 비젼을 실현하는 쓰이는 도구가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함께 하는 것, 동무되는 것이 <코이노니아>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코이노니아>가 우리와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만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랫동안 귀담아 들어주셔서 매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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