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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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엡 4:23, 고전 6;6, 골 3:12-13 딤전 6:12.
23절 끝에 보면 이같은 것을 금지할 것이 없다고 하는데, 헬라원문에 보면 의미가 조금 다른데, 금지할 것이 반대할 사람으로도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덕의 목록은 율법이 아니다. 덕은 어떤 법도 위반하지 않는다.
24절-영과 육 사이의 싸움은 이미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결판나 버린 과거의 일이다. 세례시에 이미 정욕과 육체의 삶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이다. 롬 6:6
$$$$$report는 6월 21일까지 대표에게 제출할 것$$$$$
5장25-6장 6절(성령에 따른 삶의 구체화)
25절 성령으로 살며...이 말은 우리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살라고 권면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를 향한 권면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받아 살지만 그와 모순되는 삶이 많기 때문이다.
헛된 영과, 노엽게하다, 투기하다는 단어들은 신약성서 가운데 여기에만 나오는 것이다. 이런 단어를 가리켜 Hapaxlegomena라고 한다. 하팍스라는 말은 '유일회적인'이라는 말로 단 한번 나왔다는 말이다. 한번 밖에 안나왔다는 것은 저자의 자료가 아닌 빌려온 것일 경우가 많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6장 1절-형제들아 만일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을 "누군가가 잘못으로 덮친다면..."또는 "범죄한 일이 누군가 제 3자에 의해 발견된다면"이라는 번역이 가능하다.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 당황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여기서 "범죄"는 가 아니다. 여기서는 인데, 하마르티아는 신학적 용어이다. 여기서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하는 말이기에 신학적 의미의 죄가 아니라는 말이다. 실생활에 있어서의 윤리적 행위의 잘못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좋다.
이러한 말이 나타나는 것은 갈라디아 교회에 분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후반절에는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해결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을 신령한 자라고 부르면서 온유한 심정으로 바로잡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 잘못된 것을 고치라고 권면하고 있다.
6장2절- 짐을 서로지라고 권면한다.
다음에 나오는 것이 짐을 서로 지는 것에 대한 해석인데,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하고 있다. 교회를 바로 세우는(덕스럽게)일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문제가 일어났을 때, 덕을 세우는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법이란 개념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룩한 삶의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빌 2:5에서(바울이 썼지만 바울이 쓴 것이 아니다. 선배들이 쓴 시를 인용한 것) 자기를 낮추셨다고 하면서 자기낮춤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삶의 원리가 그리스도의 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을 롬 8;2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한다. 다른 이해로는 생명의 열매를 낳는 법,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영위하게 하는 법을 그리스도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를 억압하고 목을 죄는 그런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6장 3-5절 : 자기 비판이 불가피하다는 차원에서 서로가 짐을 져주자고 한다.
6장 6절 : 교사와 공동체원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것은 문맥에서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내용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것을 Glosse라고 하는데, 이 말은 나중에 누군가 첨가한 말이라는 것이다. 하여간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cf. 고린도후서는 원래 그 모양의 서신으로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 바울이 쓴 편지들을 후대의 누군가가 하나의 서신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빌립보서도 마찬가지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통일성이 떨어지는 것을 근거로 이러는 경향이 있는데, 조심할 필요가 있다.
6절은 Glosse의 성격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6장 7-10절 : 종말론 적인 결론(셋째 본론의 결론)
여기에서 바울은 성령의 따른 삶이 어떻게 영생을 약속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말하고 있다.
7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말로 문장을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무언가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바울이 심각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라는 말로 이끌고 있는데, 이것은 강조할 때 주로 쓰인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속담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즉 하나님은 조롱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 업신여김을 받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예를 들면 "나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영에 따라 살지 않으면 이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업신 여기는 사람이라고 바울은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업신여김의 결과가 결국은 그 사람에게 되돌아가게 되는데, "심는대로 거두리라."고 하면서 원칙을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뒤에서 보충 설명을 한다. "성령을 따라 심는자는....육체를 따라 심는자,...썩어질 것을 거둔다."고 한다.
9절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선을 행하되 피곤치 말고, 낙심치 말고 선을 행하라는 호소를 하고 있다.
선을 행함이라고 우리말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영에 심는 것과 같은 차원이다. 8절에 성령에 따라 심는 것과 같은 맥락의 내용이다. 선을 행함에 피곤치 않은자에 대해 말하는데, 성령을 받아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은 피곤치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10절-마지막 호소를 하고 있는데, 착한 일을 하라, 성령안에서 거닐라는 호소를 하고 있다.
그리고 '기회가 있는대로'라는 표현을 쓰는데, 기회가 없을때가 온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때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재림하시는 때이다.
모든이에게 적용되는 말이지만 실제적인 면에서는 제한해서 말하고 있는데 믿음의 가정이라고 하고 있다. 이런 말이 나온 배후에는 당시 교회가 오늘과 같은 교회가 아니라 가정과 같은 교회이기 때문이었다. 믿음으로 연결된 친척, 가족, 공동체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오늘날 큰 교회에서는 이러한 가정과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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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38페이지
  • 등록일2002.11.03
  • 저작시기200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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