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부터 조선중기까지의 교육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성리학

2.관학

3.사학

4.조선 전기의 교육사상가

5.조선시대 실학의 교육사상

6.실학의 교육사상가

본문내용

한국의 역사나 지리 교과목을 신설할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많은 실학자들이 우리의 지리와 국어는 물론 과학과 기술의 연구를 하여 향토조선건설의 꿈을 실현코자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저 유명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아니던가.
또한 이들은 중국고전의 비교육적이고 비합리적인 단점을 지적하고, 천자문 또한 문자가 체계적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아 문자교육의 가치가 적고 비효과적이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중국의 역사를 초록한 사략은 천황씨, 지황씨 등의 전설적 인물 설정은 불신감만 불러일으키고, 우리 나라의 교육이 융성하려면 사략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실학파의 교육사상은 중국의 것들보다는 우리 나라의 것들 위주로 교육을 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6. 조선 실학사상기의 교육사상가
1 유형원(柳馨遠, 1622~1673)
유형원은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관리로의 꿈을 뒤로 하고 평생을 농촌에 묻혀 살며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면서 저술한 책이 반계수록이다.
그는 반계수록 전 26권에서, 개혁정신을 터전으로 불합리한 사회 제도 전반의 개혁을 역사적 문헌에서 고증하여 토지개혁에서부터 상공업 문제에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개선책을 제시하였다. 또한 선비의 진정한 사명과 교육의 기회균등, 나아가서 공거제로 일컬어지는 통일형·단계별 교육제도를 구상하여 과거제를 철폐할 것을 주장했다. 과거제도에 있어서 종래 불공정하고 결함투성이인 선발제도를 폐하고 전국에 읍학·영학·태학 등의 단계로 단선형 계통교육을 실시함으로써, 하급학교에서부터 호선으로 뽑혀 천거되는 유망한 인물을 계단식으로 상급학교로 진학시켜 각자의 능력에 맞춘 적재적소에 배치를 기하는 것으로서, 종래의 사문이나 시구·경전위주보다는 전인적인 덕행과 식견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곳에 기준을 두고 선사하려는 근본적 개혁안을 제안하고 있었다.
그의 교육사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선비는 농·공·상과 함께 사회적 사명의 한 직업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신분에 따른 인간차별은 부당하고, 모든 인간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교육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2) 지방 향촌에서 학교를 원조하고, 문벌이나 세도가문을 배제하여 학행이나 재덕을 기준으로 인물을 기르는 기풍과 공교육의 확립이 교육 정상화의 방안으로서 중요함을 지적하였다.
3) 유형원이 목표한 교육적 인간상은 '사람다운 행실과 능력을 지닌 인간' 이었다.
2 이 익(李瀷, 1681~1763)
그는 우선 민본사상과 사농합일의 생활관을 주장했다. 백성이 있어야 군왕이 있다는 주권재민 사상을 제시하였으며, 이런 생각은 그의 양천합일 사상을 낳게 되었고, 그 결과 노비제도의 철폐를 주장하게 된다. 그는 또 당쟁의 폐단을 막고 향촌에서 썩어버릴 수밖에 없는 수많은 예비관료의 무분별한 양산을 막기 위해서는 사농합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기르기 위하여 한국사를 학교의 교과목으로 또는 과거과목으로 부여해야 한다고 했으며, 교육방법론적으로는 '일신전공' 을 목표로 일신·득사·호문이 산 교육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호문(好問)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의 교육사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독서인이 무위도식하는 폐단을 없애고 사농합일로 나가야 한다. 따라서 교육의 목적은 무위도식하는 독서인이 되는 과거합격이 아니라 실제생활이다.
2) 교육은 문장의 자구에 구애받지 않고, 경세지무를 우선해서 이들 실사회에 베풀어 실효를 거두어야 한다.
3) 퇴계집과 우리의 역사인 동국사를 교육과정에 마땅히 포함시켜야 한다.
4) 교육방법에 있어서도 탐구심의 계발이 곧 자기계발의 요소가 되며, 수양에 있어서 매일 새롭게 스승을 구하고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며 질문하는 것이 살아있는 교육이다.
5) 주권재민사상을 구체적으로 제기하는데, 백성이 있어야 군왕이 존재한다는 사상이다.
6) 서양 문물에 조예가 깊었고, 서양의 교육제도 등에도 일가견이 있어 교육의 의식세계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였다.
3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정약용의 사상적 기반은 유형원과 성호의 사상을 계승하고 왕양명의 사상적 색깔을 지니면서도 또 박지원, 박제가 등의 북학파 사상도 흡수하여 이 모두를 집대성하였다고 보여진다.
그는 인간이란 자주적이고 고유한 존재로서 그의 심의는 후천적인 경험이나 교육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어, 존 로크의 Tabula rasa Theory 와 일치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는 소극적이며 방관적이고 비생산적인 인간형은 부정했다.
교육목적론으로는 효·제·자에 두고 있는데, 이 '자(慈)' 를 든 점이 특이하다. 이는 그의 도덕관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식은 효하고 부모는 자함으로써 유교의 종적인 도덕관을 횡적인 도덕관계로 보려 한 점이다. 그래서 재상자가 자를 결하면 재하자에게 효를 강요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교과내용에서 정약용은 먼저 오학론으로 유교주의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오학이란 △공리공론에 떨어진 성리학, △경전의 자의나 음훈을 일삼는 훈고학, △문장의 유희에 치중하는 문장학, △과거제도의 전면적 혁파를 주장한 과거학, △백성을 현혹시키는 도선의 비결과 정감록의 사설을 술수학으로 규정한 것 등이다. 이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이 학문이 사회를 구제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도리어 암적 존재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짖적하였다.
이와 같은 유교주의 교육을 비판하고 그는 교과목으로서 효·제·자를 기르는 경전을 비롯하여 십경·국사·기예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기예는 농업·군사·건축·방직·의술 교과목을 말한다.
정약용의 교육사상은 고도의 합리성과 과학성을 토대로 이루어져 있어서 실학사상 전체를 그대로 반영하고 함축하고 있다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듯 싶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사상이 그 당시에 성리학에 사로잡힌 위정자들에게 수용되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참고문헌
이원호, 1994 '교육사' 배영사
송승석, 1994 '교육사신강' 교육과학사
김병구, 1995 '한국교육사의 탐구' 교육출판사
박재문, 2001 '한국교육사' 학지사

키워드

성리학,   관학,   사학,   조선,   교육
  • 가격2,300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2.11.05
  • 저작시기200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039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