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말
Ⅱ. 소크라테스의 변론
Ⅲ. 유죄판결이후의 변론
Ⅳ. 사형판결 이후의 변론
Ⅱ. 소크라테스의 변론
Ⅲ. 유죄판결이후의 변론
Ⅳ. 사형판결 이후의 변론
본문내용
볼 수 있다.
Ⅳ. 사형판결 이후의 변론
" 무엇인가 모자라서 유죄가 되긴 하겠지만, 그것은 말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후안과 무치와 그리고 여러분의 비위에 맞도록 말할 생각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면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비굴함을 면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 빨리 달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이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하지만, 여려분은 진리로부터 악과 부정의 선고를 받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생활을 따지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렇게 하겠지만,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반대가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따지려 드는 사람은 더욱 많아질 것이며, 여러분은 잘 모를 테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그들을 막아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젊기 때문에 더욱 사나와져서, 여러분은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무죄 투표한 사람에게 재판관이라 칭하며 말한다.
"재판관 여러분 나에게 있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번에 나에게 일어난 일은 아마 좋은 것인 듯싶고, 그리고 죽는 것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모든 생각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떠날 때가 되었군요,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들 중에 어느 편이 더욱 좋은 일을 만날는지, 그건 신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Ⅴ.결어
소크라테스 시대는 많은 군중이 판단하는 배심제도로 그 배심원들을 진실로 말하기보다는 돈이나 기타의 부정을 통하거나 혹은 재판시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소크라테스에 대한 판결의 결과가 그 당시의 배심제도의 공정성을 말해주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부정에 편에 섰지만 소크라테스가 진정한 재판관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일찍이 어지러운 정치에 관여하려고 했더라면 틀림없이 벌써 몸을 망치고, 여러분이나 자신에게 아무 이로운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라고 해서 고대에도 요즘 정치인처럼 타락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당시에는 하루라는 제한된 재판으로 끝나며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남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의 재판이 오랜 시간이 걸려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진실을 밝히는 시간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공정한 것이 되며 심급제도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자신을 아는 즉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함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의 교리,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라는 것에서 좋은 비교를 할 수 있다. 유명한 성자나, 종교인, 추앙받는 인물들을 찾아가 소크라테스의 대화방식으로 혹은 지혜있는 자가 그를 알아보았을 때는 그도 같은 죄인이면서 선한 사람인줄 알고 "나는 누구보다 선한 사람이다. 혹은 다른 세속의 사람보다는 훨씬 선하다." 라고 스스로 자처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위의 소크라테스의 명제와 좋은 비교가 된다고 생각한다.
Ⅳ. 사형판결 이후의 변론
" 무엇인가 모자라서 유죄가 되긴 하겠지만, 그것은 말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후안과 무치와 그리고 여러분의 비위에 맞도록 말할 생각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면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비굴함을 면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 빨리 달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이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하지만, 여려분은 진리로부터 악과 부정의 선고를 받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생활을 따지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렇게 하겠지만,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반대가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따지려 드는 사람은 더욱 많아질 것이며, 여러분은 잘 모를 테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그들을 막아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젊기 때문에 더욱 사나와져서, 여러분은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무죄 투표한 사람에게 재판관이라 칭하며 말한다.
"재판관 여러분 나에게 있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번에 나에게 일어난 일은 아마 좋은 것인 듯싶고, 그리고 죽는 것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모든 생각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떠날 때가 되었군요,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들 중에 어느 편이 더욱 좋은 일을 만날는지, 그건 신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Ⅴ.결어
소크라테스 시대는 많은 군중이 판단하는 배심제도로 그 배심원들을 진실로 말하기보다는 돈이나 기타의 부정을 통하거나 혹은 재판시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소크라테스에 대한 판결의 결과가 그 당시의 배심제도의 공정성을 말해주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부정에 편에 섰지만 소크라테스가 진정한 재판관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일찍이 어지러운 정치에 관여하려고 했더라면 틀림없이 벌써 몸을 망치고, 여러분이나 자신에게 아무 이로운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라고 해서 고대에도 요즘 정치인처럼 타락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당시에는 하루라는 제한된 재판으로 끝나며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남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의 재판이 오랜 시간이 걸려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진실을 밝히는 시간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공정한 것이 되며 심급제도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자신을 아는 즉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함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의 교리,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라는 것에서 좋은 비교를 할 수 있다. 유명한 성자나, 종교인, 추앙받는 인물들을 찾아가 소크라테스의 대화방식으로 혹은 지혜있는 자가 그를 알아보았을 때는 그도 같은 죄인이면서 선한 사람인줄 알고 "나는 누구보다 선한 사람이다. 혹은 다른 세속의 사람보다는 훨씬 선하다." 라고 스스로 자처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위의 소크라테스의 명제와 좋은 비교가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