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읽기의 방법적 추구 --심리주의 비평의 현황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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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사텍스트 분석의 방향과 기준

2. 서사텍스트 분석의 실제

3. 반성과 제안

참고문헌

본문내용

술적 표상성을 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오정희 소설의 텍스트 무의식, 혹은 '원형적 상상력'을 의논할 수 있을 것이다)
'내부의 불기운(火候) 조절' 혹은 '불의 강을 건너감'이 비록 '안개 낀 듯 흐릿한 말하는 방식'이긴 하나 오히려 그런 관계로 '국지적인 차원이 아니라 소설을 관통하는 정신(spirt)'
)프랭크 커모드, 앞의 논문, 『현대 서술 이론의 흐름』, 앞의 책, 93쪽 및 99쪽 참조.
을 각인할 수 있는 것이라면, 「불의 강」은, 그 '배반적 텍스트'의 신화·주술적 의미를 통해, 작가 오정희의 '서사적 정체성'이 어떤 지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3. 반성과 제안
오정희 소설 「織女」와 「불의 강」을 심리주의적 상징 해석의 방법으로 분석, 나름대로의 해석을 시도해 보았다. 「織女」에서는 '육손이' 상징 분석이 '영원한 사랑을 열망하는 자의 근원적인 불안'이라는 텍스트 무의식의 해석에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살폈고, 「불의 강」에서는 '반서술'의 차원에서 불의 통어를 통한 주술적 비상(자아의 전체성 회복)이라는 텍스트 무의식을 읽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서는 역사적 진실보다는 서사적 진실의 층위에서 텍스트의 서술순서에 크게 개의치 않는 해석 행위를 꾀하였다. 논자가 보기에는 그러한 해석 행위를 통해서 오정희 텍스트가 보다 깊고 넓게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이 두 작품이 지닌 어떤 '절망'의 느낌, 이를테면 일찍이 세상 끝에 이른 자의 나락감(奈落感)과도 같을 그 어떤 느낌을 본고의 분석은 '느끼지만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타나토스라는 개념으로 억압하는 것은 더더욱 유용한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 두 작품에서 소중한 것은 지금껏 읽어낸 내용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읽기'로는 설명을 용납하지 않는 그 '절망'이라는 생각이 든다. 논자의 짧은 견문의 소치이겠지만 이른바 전문가 그룹에서 행하고 있는 심리주의비평이 그 '절망'과, 그리고 그것에 연원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恨적인 어떤 느낌' 혹은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적절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심리주의비평이 관심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건너뛰고서는 문학을 '공부'하는 일이 도로일 것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심리주의비평 혹은 정신분석비평은 문학하는 이들의 언어(형식)에 대한 한없는 애정에 부응하는 한편, 그러한 애정이 손상시킬 수 있는 '인간적인 것'에 대한 해명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많은 비평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프로이트도 말했듯이 정신분석은 이른바 예술적 재능의 근원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적 재능의 근원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은 그것이 감동의 근원에 대해서도 완전한 설명을 해줄 수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작가들이 작품에 남겨놓은 희미한 흔적을 통해서만 우리가 알게 되는 어떤 욕망의 사소한 움직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읽는 작가들의 욕망(혹은 텍스트의 욕망) 역시 그리 다양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것 같다. 크게 보면 둘 중의 하나에 속한다. (억압된) 욕망의 (위장된) 성취이거나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강박 사고의 결과가 그 하나일 것이고(프로이트), 자기실현의 서사적 정체성이 그 둘일 것이다(융). 그렇다면, 심리주의 비평은 결국은 언어(형식)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결론이 정해진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언어(형식) 해석이 과연 얼마만큼의 인문학적 가치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병적인 근원과 예술적인 근원이 동일한 원천을 지닌다고 해서 양자가 근친관계를 형성한다고 단언할 수 없는 것처럼, 심리주의비평이 구성해 내는 텍스트의 서사적 진실(혹은 초역사적 진실)이 특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것만이 작품의 본질을 석명한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독선을 위한 배타적 설득력, 혹은 회의를 용납하지 않는 믿음은 오해나 편견으로 향한 지름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문학 예술작품의 본질은 아무래도 정신분석적 이해의 체계와는 다른 어떤 곳을 배회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의 심리주의비평가들에게 어떤 제안이 가능하겠는가?
문학예술이 지닌 감동의 근원은 어떠한 분석 도구로서도 설명될 수 없다는 것, 나아가서 모든 설명은 오히려 가해적(加害的)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인식 위에서 보다 철저한 자기분석의 수행을 통한 '텍스트 무의식으로의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 등이 미진하나마 이 자리에서의 대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계를 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덕목일 것이다. 덧붙인다면, 그러한 자기분석의 전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읽는 자'가 아무런 조건 없이 '아는 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겠고, 그리고 설혹 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언제나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아야겠다는 것이 아닐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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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부(1996), 현대정신분석비평. 서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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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1997), 오정희 소설의 소설화 과정 분석, 현대소설연구 6.
이부영(1991), 분석심리학. 서울: 일조각.
정재서(1996), 동양적인 것의 슬픔. 서울: 살림.
로버트 스콜즈/김동윤 옮김(1997), 언어· 서술과 반서술, 현대서술이론의 흐름. 서울: 솔.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홍성화 옮김(1986), 동화심리학. 서울: 교육과학사.
막스 밀네르/이규현 옮김(1997), 프로이트와 문학의 이해. 서울: 문학과지성사.
욜란드 야코비/유기룡 양선규 옮김(1986), 콤플렉스·원형·상징. 대구: 경북대출판부.
줄리아 크리스테바/김영 옮김(1995), 사랑의 역사. 서울: 민음사.
프랭크 커모드/김동윤 외 옮김(1997), 비밀과 서술순서, 현대 서술 이론의 흐름. 서울: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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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1.09
  • 저작시기200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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