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화사에대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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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신화사 설정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2. 신화의 죽음과 부활
3. 한국의 신화의 존재양상과 층위
4. 시대구분론과 신화사적 전개

Ⅰ. 신화시대
1. 원초적 신국신화 시대
2. 건국신화 시대
(1) 자생형 건국신화 시대
(2) 이주형 건국신화 시대
Ⅱ. 신화시대 이후
1. 역사화 시대
2. 전용화 시대
(1) 종교적 전용
(2) 정치적 전용
3. 부흥화 시대
(1) 고려조의 부흥
(2) 조선조의 부흥
4. 운동화 시대
5. 상징화 시대

본문내용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이 이루어진 시기를 신화의 부흥화 시대로 분류한다. 문학사적으로는 민족 서사시의 출현이 눈에 띄며, 사회사적으로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시대였다. 무신의 집권과 몽고의 침략이 고려조를 검게 먹칠하고 있다. 이규보의 동명왕편 서문에나, 일연의 {삼국유사} 신이편의 서문에서 민족적 문제가 은연중 논급되고 있다. 내우외환의 혼란 속에서 민족적 주체성과 동질성을 담아낼 용기가 필요했던 시대다. 이 시대에 교훈적인 가전체소설류가 쏭아져 나왔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 시대적 필요가 그러한 작품을 양산해 냈듯이, 신화에 대한 관심 역시 이와 동떨어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현재 우리가 구해볼 수 있는 한국의 고대 신화들은 거의 모두 이 세대에 새롭게 문헌에 정착되거나 노래로 다시 불러졌던 것들이다.
신화가 새로 만들어진다는 것도 신화사적으로 중요하지만, 기존의 신화를 현재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 역시 신화사적 관심을 끄는 문제의 하나다. 동북아시아의 한 귀퉁이에 위치한 고려라는 나라에 세계문명이 불어닦친 시기이기도 해서 민족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당시 지식층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었을 것으로도 보인다. 세계 통일을 내다본 몽고제국의 흥기는 여러 가지 점에서 한민족에게는 위기감으로 다가왔고, 그런 점에서 시대를 민감하게 읽을 줄 아는 엘리트들은 이러한 민족사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신화에 눈을 돌려 그것의 부흥을 통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구의르네상스가 부활, 재생이라는 뜻임은 누구나 안다. 극단적 위기상황에서 그리스로 돌아가자라는 표어가 르네상스기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서 나왔듯이, 고려조의 이러한 어려운 시대적 상황은 당시 지식인들의 시각은 신화에 돌려졌고, 그것은 신화가 아닌 역사로서 해석해 냄으로써 민족사 문제에 대한 해결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런 점에서 고려조 신화의 재정리와 서사시의 출현은 한국의 신화사적 전개로 보아 하나의 부흥기를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2) 조선조의 부흥화
조선조 전기는 유학, 특히 성리학을 주체로 하는 사회사상이 압제자적 힘으로 사상과 종교적 통치를 이룩했던 시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신화는 잠복기에 들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난 이후 사상적 지반은 흔를렸고, 극단적인 가치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여러 모의 시도가 있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실학사상가들의 몫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모든 점에 있어 새로운 질서의 실현을 강구했던 실학사상가들은 그 모두가 민족적 주체성을 실현해야 한다는 시대적 당위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써 현전하는 자료로서는 유일본일 {규원사화}의 출현을 보게 되었다. 속종조 때 비전되던 문헌을 자료를 근거로 하려 써졌다는 이 책에서는 한국의 시원적 영토를 동북아는 물론이요 현재의 티벳지역까지 넓혀 놓았다. 중국과 일본 등의 직접적인 침략을 받아 초토화에 이른 민족를 신화를 통해 재설정해보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북곽산신에 의해 저술된 {규원사화}는 그런 점에 있어서 신화의 부흥만 아니라, 신화의 부흥을 통한 민족의 부흥을 내다본 것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후 {환단고기}로 이어지면서 더욱 구체화되어 갔다. 개화기의 혼란이 민족의 와해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뿌리를 통해 민족의 정기를 도모해야 한다는 쪽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3. 운동화 시대
동학과 천도교, 그리고 대종교의 출현 등은 이제 신화를 신화로써만 아니라 종교운동으로까지 확장하고 실천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신화가 언어적 사실 또는 믿음의 근거로만 취해진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종교운동을 통해 이들을 고취하고 그 이상을 실현하려는 것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특히 서구의 제국주의가 세계 지배의 야망을 실현시켜 가는 가운데 소위 미개지역으로 분류되던 곳에서는 이에 대한 반감이 하나의 종교적 운동으로 일어나게 된다. 특히 천년기복설(millenaism)을 통한 민족 영웅 혹은 신이 민족의 해방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는 종교운동이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등의 제도에서도 일었다. 바로 이런 시대와 궤를 같이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동학을 비롯한 민족종교운동이 일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민족종교의 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족신화가 다시 살아난 것으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사회적 지지의 층과 범위로 보면 큰 호응을 받거나 주도적인 위치로까지 확장 시모하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것이 구체화되고 실천적 의지가 드높았다는 점에서 운동화 시대에 들어 한국신화의 부활이 다시 화회적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4. 상징화 시대
개천절 하루를 취면서도 단군신화를 사실로 믿느냐고 우리 국민 누구에게 물어도 대개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개천절이라는 날은 우리나라의 3대 국경일의 하나요, 매년 반복되고 있다. 더 이상 믿어지지도 않는 신화를 근거로하여 국경일을 삼은 것이나 또 국민 전체가 쉬는 것 등은 무척 낭비적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중요한 것은 사실로 믿느냐 않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지평에서가 아니라 상징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옛날 사실이던 것이 본의를 잃으면 상징이 된다고 했다. 특히 집단에 의해 관습적으로 믿어지던 것일수록 시대가 지나 인식론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이제 상징화되어 남는다. 지금의 신화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의 신화는 믿어지기 떠문이 아니라 상징적 가치를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합리적 사고로 보아 신화는 더 이상 믿어질 수 없다. 믿어질 수 없는 시대에 와서 믿어져야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거지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의 신화에서 적극적으로 민족의식의 심층적 상징을 읽어내야 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신화가 더 이상 믿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신화가 아닌 것은 아니다. 옛날 믿음이 살았던 시대에는 믿어져야 신화였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신화적 차원의 상징적 가치를 지닌 것이 신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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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1.22
  • 저작시기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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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1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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