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책에 담긴 고사성어 이야기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전국책

3. 전국시대

4. 교섭술

5. 실력주의 전국칠웅

6. 전국시대 부국강병 - 변법

본문내용

잡아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를 죽였다가는 신의 없는 편협한 군왕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아 그대로 곱게 돌려보냈다. 이리하여 화씨지벽은 '온전한 구슬[完璧]'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인상여는 그 공으로 상대부(上大夫)에 임명되었다.
刎頸之交 -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귐. 또 그런 벗.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
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하 목현(繆賢)의 식객에 인상여 (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빼앗길 뻔했던 천하 명옥(名玉)인 화씨 지벽(和氏之璧)을 원상(原狀)대로 가지고 돌아온 공으로 일약 상대부(上大夫) 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3년 후(B.C. 280), 소양왕이 혜문왕을 욕보이려는 소양왕을 가로막고 나서서 오히려 그에게 망신을 주었다. 인상여는 그 공으로 종일품(從一品)의 상경(上卿)에 올랐다. 그리하여 인상여의 지위는 조나라의 명장으로 유명한 염파(廉頗)보다 더 높아졌다. 그러자 염파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싸움터를 누비며 성(城)을 쳐서 빼앗고 들에서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런데 입 밖에 놀린 것이 없는 인상여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놈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든 그 놈을 만나면 망신을 주고 말테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했다. 그는 병을 핑계대고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길에서도 저 멀리 염파가 보이면 옆길로 돌아가곤 했다. 이같은 인상여의 비겁한 행동에 실망한 부하가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그러자 인상여는 그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염파 장군과 진나라 소양왕과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물론 소양왕이지요."
"나는 소양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신하들 앞에서 소양왕을 혼내 준 사람이야. 그런 내가 어찌 염파 장군 따위를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강국인 진나라가 쳐들어 오지 않는 것은 염파 장군과 내가 버티어 있기 때문일세.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결국 모두 죽게 돼. 그래서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고 염파 장군을 피하는 거야."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그는 곧 '웃통을 벗은 다음 태형(笞刑)에 쓰이는 형장(荊杖)을 짊어지고[肉袒負荊:사죄의 뜻을 나타 내는 행위]' 인상여를 찾아가 섬돌 아래 무릎을 꿇었다.
"내가 미욱해서 대감의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소. 어서 나에게 벌을 주시오."하고 염파는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다고 한다.
4. 遠交近攻策의 '범수(范 )
魏나라 사람. 젊을 때 불우한 세객시대를 보냈으나 얼마 후에 秦나라 昭王에게 유세하여 '원교근공'의 대외전략을 주장, 인정을 받아 客卿으로 등용되었다. 5년후 에 내정의 쇄신을 진언하고 재상에 임명되었다. 세객으로서의 교섭술도 교묘했지만 정치가로서의 경륜도 초일류라고 할 수 있었다. 같은 세객 출신인 채택을 후임으로 추천하고 재상 자리를 물러났는데 퇴직할 때의 처신도 아주 훌륭했다.
遠交近攻 - p. 4 진책
5. 呂氏春秋편집한 '여불위(呂不韋)
원래는 양척의 거상이었으나 趙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던 秦나라이 왕자 자초(子楚)에게 눈독을 들여 거금을 던져가며 이면 공작을 벌인 끝에 왕위에 오르게 한다. 자초를 처음 찾아냈을 때 '奇貨可居', 보기 드문 물건을 사 두었다가 때를 보아 큰 이득을 남기고 판다는 뜻. 즉,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용한다는 뜻. 이 이야기는 유명한 얘기인데 그것을 시현시킨 재간을 보면 교섭술도 보통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자초가 즉위하지 승상으로 임명되어 권세를 부렸으나 다은 세대인 시황제 때 추문이 탄로나 실각했다.
奇貨可居 - p.5 진책 참조
6. 손무(孫武)와 버금 가는 '오기(吳起)'
衛나라 사람. 병법서 <吳子>의 저자로 유명하다. 젊었을 때 병법을 배워 魯나라의 총사령관이 되어 齊나라 대군을 무찔렀으나 노왕에 의해 소외당하여 실각. 위로 옮겨 문후를 섬겨 서하태수로 임명되자 크게 치적을 올렸으나 다음 대인 무후때 정적의 음로 위를 떠났다. 만년에는 초의 도왕을 섬기면서 초의 부강에 공헌했다.
7. 손빈병법서의 저자 '손빈(孫 )'
齊나라 사람. 손무의 자손이라 전해지며 병법서 <손빈병법>의 저자로 알려지고 있다. 젊어서 병법을 배워 입신하려고 했으나 같이 공부하던 방연에 속아 양 다리를 잃고 고민에 찬 나날을 보냈다. 이윽고 제나라 장군 전기의 인정을 받아 그의 천거로 위왕을 섬기게 되었다. 제나라의 군사가 되어 두 번에 걸쳐 방연이 이끄는 魏군을 무찔렀다. 이로서 그는 병법가로서의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마치며..
전국책은 전국시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사기와 같은 역사서의 사료가 되기도 하였다. 조사를 하면서도 전국시대의 그 수많은 세객들과 역사 사실들을 모두 다 알 수 있었던 아니다. 짧은 시간동안 알기에는 너무 많은 사실과 인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평소에는 잘 모르고 지나친 전국시대 나라들이나 고사성어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책을 읽은 것이 억지로 읽은 것이 아니라 책장이 그냥 넘어갈 만큼 흥미진진한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아울러 그 시대의 세객들의 현명하고 묘한 계책들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국책이 역사서이자 병법서이면서 인간 심리극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뒷부분을 읽으면 앞내용의 사건과 인물이 혼동될 정도로 내용도 조금 많고 계속 같은 인물이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았다.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충분히 공부를 많이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가 어떤 내용을 알 때에는 그 뒷면에 깔린 배경 지식도 있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전국책 뿐 만이 아니라 여러 책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 참고자료
明文堂 「新譯 全國策」 李相玉 譯
박우사 「재미있는 전국시대 이야기」 서현봉 역음
학민사 「고사성어로 배우는 중국사」 강용규 번역
www.hanjazoa.com
www.http://joke.netian.com/m/sung.htm

키워드

  • 가격2,3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2.12.02
  • 저작시기200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402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