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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와 근본적으로 다른 차별성이 드러난다.
모옴은 그 자신이 장애를 극복하여 성공하였듯이, 인간의 굴레는 개인의 삶에 대한 성찰과 노력을 통해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방해물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유추시켰다. 반면에,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그것이 싸워서 이겨낼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삶의 조건으로서 상정되었다.
따라서 굴레는 의지와 무관하게 개인에게 침투된 운명처럼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는 그것이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사회적 합의와 공유가 형성될 때 가능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환경을 자각하고 주위로도 시선을 던져보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현실에는, 모옴과 그의 소설 속 주인공 필립처럼 속박장치를 극복한 사람보다는, 도태되고 소멸되어 버린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땅, 어느 곳에서는 상실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지금 까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을 써봤지만 영화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저예산영화, 독립영화, 주류영화, 블록버스터, 등을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영화는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 졌든, 얼마만큼의 제작비가 들었든, 어떤 배우가 출연하든 ... 이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배우, 그리고 스텝들이 그들만의 영화적 개성과 혼을 실어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나라 영화의 발전방향은 바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 한 영화가 명확히 길을 열어줬다고 생각한다.
모옴은 그 자신이 장애를 극복하여 성공하였듯이, 인간의 굴레는 개인의 삶에 대한 성찰과 노력을 통해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방해물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유추시켰다. 반면에,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그것이 싸워서 이겨낼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삶의 조건으로서 상정되었다.
따라서 굴레는 의지와 무관하게 개인에게 침투된 운명처럼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는 그것이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사회적 합의와 공유가 형성될 때 가능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환경을 자각하고 주위로도 시선을 던져보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현실에는, 모옴과 그의 소설 속 주인공 필립처럼 속박장치를 극복한 사람보다는, 도태되고 소멸되어 버린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땅, 어느 곳에서는 상실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지금 까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을 써봤지만 영화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저예산영화, 독립영화, 주류영화, 블록버스터, 등을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영화는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 졌든, 얼마만큼의 제작비가 들었든, 어떤 배우가 출연하든 ... 이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배우, 그리고 스텝들이 그들만의 영화적 개성과 혼을 실어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나라 영화의 발전방향은 바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 한 영화가 명확히 길을 열어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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