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나
2. 사람 , 인형 그리고 나의 ‘머리’
3. 사회의 ‘눈’
4. 사회의 ‘눈’ 그리고 나의 ‘머리’
5. 철학적 사고의 확장
6. 끝난 책과 계속되는 생각
2. 사람 , 인형 그리고 나의 ‘머리’
3. 사회의 ‘눈’
4. 사회의 ‘눈’ 그리고 나의 ‘머리’
5. 철학적 사고의 확장
6. 끝난 책과 계속되는 생각
본문내용
의해 반역자로 낙인찍혀 죽음을 당하게 된다. 진리의 순교자가 된 것이다. 그런 에피스테메에게 비추어, 자신을 부인하고 순교를 당할만큼 용기있는 에피스테메의 모습에 비추어 나는 그럴 위인이 못된다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끝까지 붙들고 싶었다. 그러한 열망이 너무나 강력하여 지성의 눈을 흐리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있어야 진리도 유의미하다는 나의 옹졸한 생각이 반성이 되었다. 그런데 에피스테메 사건에서 약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이야기와 이야기를 연결시켜가는 고리가 너무나 우연적이어서 그 전체의 감동과 감화를 반감시킨다는 것이다. '어쩌다' 한 사람이 사슬에서 풀려났다는 부분과 '어떤' 사람이 에피스테메를 이끌고 동굴을 나간다는 부분이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으로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리라...그런 것에 집착한다면 진리 탐구를 아예 포기해야 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6. 끝난 책과 계속되는 생각
재미도 있었고 생각해 볼만한 건덕지도 많은 책이었다. 책상에서 시작하여 이데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생각의 영역이었다. 책의 저자는 철학 공부를 자기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언급해 두었다. 옳다. 정녕으로 옳은 말이다. 나는 그런 그의 정의에 미약하지만 몇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다.
철학은 '그것' 의 아주 작은 오차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것' 을 '그것' 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앞서 이 글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언급했듯이 현실은 완전치 않다. 그렇기에 진리와 상당한 괴리가 존재함이 사실이다. 인간이 본시 생각하는 동물이라서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한다. 좀 더 진리에 가까워지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 인간의 노력을 옆에서 응원하고 조력하는 것이 철학이다. (인간 노력의 주는 인간 스스로의 끊임없는 철학적 사고이다.) 인간이 0.0000001 % 의 오차 앞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철학은 인간을 등에 엎고 진리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억겁의 세월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철학은 잠들어 있는 인간의 이성에 불을 지핀다.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은, 지금의 우리를 우리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철학의 수훈이 아닌가 생각한다.
철학은 도전할 수 없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철학의 시작이 비판적인 질문의 시작과 동일 함을 볼 때, 이것은 우리 주변의 사소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장구한 세월을 이어온 권위에 이르는 다양한 것에 대한 도전이다. 까마귀는 다 검다. 그러나 검지 않을 수 도 있다. 물은 100 에 끓는다. 정말 그런가? 철학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권위와 사소함에 도전장을 낼 수 있었겠는가? 권위라는 것에 대해 철학은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 필연적으로 깨어질 필요성을 지니고 생겨나는 것이 권위이다. 우리가 사소함에 둘러싸여 지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철학은 또 어떤 권위에게 시비를 걸고 있을 줄 모르는 일이다.
철학의 정의를 내리자면 밤을 꼬박 세워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철학을 정의한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 일런지도 모른다. 이 한 권의 책은 지금 내 손에서 떠나지만 그 책이 돌려 놓은 생각의 굴렁쇠는 무중력의 철학 속에서 끝없이 돌고 있다.
오늘에서야 2권인 '아킬레스는 왜 거북을 이길 수 없을까?'를 받아 들었다. 그러나 내 시간과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또 다른 시작 앞에서 이 글을 끝을 맺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다음에 또 철학과 철학적 사고에 대해 서술 할 기회가 생긴다면 나머지 저서들을 섭렵하여 더욱더 완성도 있는 글을 쓰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1. 양윤덕,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 창비, 2003.
6. 끝난 책과 계속되는 생각
재미도 있었고 생각해 볼만한 건덕지도 많은 책이었다. 책상에서 시작하여 이데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생각의 영역이었다. 책의 저자는 철학 공부를 자기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언급해 두었다. 옳다. 정녕으로 옳은 말이다. 나는 그런 그의 정의에 미약하지만 몇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다.
철학은 '그것' 의 아주 작은 오차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것' 을 '그것' 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앞서 이 글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언급했듯이 현실은 완전치 않다. 그렇기에 진리와 상당한 괴리가 존재함이 사실이다. 인간이 본시 생각하는 동물이라서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한다. 좀 더 진리에 가까워지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 인간의 노력을 옆에서 응원하고 조력하는 것이 철학이다. (인간 노력의 주는 인간 스스로의 끊임없는 철학적 사고이다.) 인간이 0.0000001 % 의 오차 앞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철학은 인간을 등에 엎고 진리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억겁의 세월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철학은 잠들어 있는 인간의 이성에 불을 지핀다.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은, 지금의 우리를 우리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철학의 수훈이 아닌가 생각한다.
철학은 도전할 수 없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철학의 시작이 비판적인 질문의 시작과 동일 함을 볼 때, 이것은 우리 주변의 사소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장구한 세월을 이어온 권위에 이르는 다양한 것에 대한 도전이다. 까마귀는 다 검다. 그러나 검지 않을 수 도 있다. 물은 100 에 끓는다. 정말 그런가? 철학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권위와 사소함에 도전장을 낼 수 있었겠는가? 권위라는 것에 대해 철학은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 필연적으로 깨어질 필요성을 지니고 생겨나는 것이 권위이다. 우리가 사소함에 둘러싸여 지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철학은 또 어떤 권위에게 시비를 걸고 있을 줄 모르는 일이다.
철학의 정의를 내리자면 밤을 꼬박 세워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철학을 정의한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 일런지도 모른다. 이 한 권의 책은 지금 내 손에서 떠나지만 그 책이 돌려 놓은 생각의 굴렁쇠는 무중력의 철학 속에서 끝없이 돌고 있다.
오늘에서야 2권인 '아킬레스는 왜 거북을 이길 수 없을까?'를 받아 들었다. 그러나 내 시간과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또 다른 시작 앞에서 이 글을 끝을 맺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다음에 또 철학과 철학적 사고에 대해 서술 할 기회가 생긴다면 나머지 저서들을 섭렵하여 더욱더 완성도 있는 글을 쓰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1. 양윤덕,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 창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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