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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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육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교육의 개념이 논의되는 맥락(脈絡)

2. 강령적 정의

3. 교육의 개념에 대한 지적 자세

본문내용

떤 점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그런 느낌을 다소간은 함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그들의 정의를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가 당연히 짊어져야 할 지적부담(知的負擔)이다. 이 부담감을 감당할 자세나 능력이 없이 그들의 정의를 그냥 되받아 말하기만 하는 것은 그 정의7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의미를 전적으로 도외시하는 것이다.
이 장(章)의 첫머리에서 저자(著者)는, 이 책에서 '교육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몇가지 대안적(代案的)인 대답을 고찰하겠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대안적인'이란 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교육의 정의가 정범모 교수, 피터즈, 뒤르껭의 정의인 것으로 밝혀진 지금, 이들의 정의가 어떤 점에서 '대안적인'것인가에 대하여 궁금히 여기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이제 이 문제에 관하여 잠깐 언급하겠다.
여기서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이들의 정의는 모두 교육을 '총체적(總體的)으로' 정의하려는 시도(試圖)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정범모 교수의 정의를 예로 들어서 생각해 보면, '인간행동의 계획적(計劃的) 변화(變化)'라는 정의를 들 때, 우리는 이 정의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체의 활동을 포괄적(包括的)으로 규정한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여,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가 아닌 교육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인 교육이 따로 있고 그것이 아닌 교육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이다. 그 정의를 내린 정범모 교수의 관점이 그러하고, 우리도 그것을 그 관점에서 받아들여한다. '이간행동의 계획적 변화'인 교육이 그렇지 않는 교육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정의가 교육의 '총체(總體)'가 아닌, 한 '부분(部分)'을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에 우리는 그 정의에 의하여 규정되지 않는 나머지 부분(이것도 역시 정의라고 보아야 한다)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하는 해결 불가능한 난관(難關)에 봉착하게 된다. 이 난관은 오직 우리가 그 정의를 '총체적(總體的)인' 것이 아니라 '부분적(部分的)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빚어진 불필요한 난관이다.
이상 정범모 교수의 정의를 보기로 하여 말한 내용은 피터즈나 뒤르껭의 정의, 그리고 그 밖에 누구의 정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피터즈나 뒤르껭의 정의도 교육의 한 부분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체의 활동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하 이 책에서 고찰될 세 개의 정의를 이해할 때, 마치 그 세 개의 정의가 교육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 각각 한 조각씩 규정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 세 개의 정의는 각각 교육의 전체(傳遞)를 규정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 개의 상이한 '교육'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세 개의 상이한 '정의'를 가지게 된다. 각각 상이한 방향 또는 시각에서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물체를 상이한 시각에서 바라볼 때, 비록 그 물체 자체는 동일한 것이더라도 그것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교육의 정의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세 개의 정의는 교육이라는 하나의 총체를 보는 상이한 시각을 나타낸다. 앞의 '부분'이라는 용어와 정확하게 대비되는 용어를 써서 표현하자면, 그 세 개의 정의는 교육의 세 가지 양상(樣相)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교육의 상이한 양상은 각각 상이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교육이라는 활동을 상이한 시각으로 볼 때 교육은 상이한 문제를 가진 것으로 비친다. 이렇게 비친 교육의 모습이 곡 교육의 양상이다. 이렇게 말한 것은, '교육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특정한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교육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발언은 그 문제의식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다르게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정범모 교수의 정의가 교육의 한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난 뒤에도,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는 정의가 '모든 교육'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성립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 그렇다고 보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정의가 '모든' 교육을 설명하는가 하는 의문은,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를 제외한 나머지 교육에 있지 않는가 하는 뜻이 아니라,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하는 정의에 나타난 문제의식 이외에, 그것과는 다른 문제의식이 없는가, 그 정의에 의하여 파악되는 교육의 양상이 과연 교육의 '유일한' 양상인가 하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상의 고찰은 이 책에서 논의될 세 가지 정의가 어떤 뜻에서 '대안적(代案的)인' 것인가 하는 문제로 연결된다. 여기서 '대안적'이라는 말은 그 세 가지 정의의 시각이 교육을 보는 대안적인 시각이라는 뜻이며 그 세 가지 정의에서 드러내고자하는 교육의 양상이 대안적인 양상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지만, 저자가 보기에 그 세 가지 정의는 이때까지 교육학에서 논의된 교육의 양상으로서 대안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다룬다. 과연 그런지 아닌지는 독자가 판단할 문제이다. 나아가서 특이한 것이어서 서로 통합되거나 환원(還元)될 수 없는 것이라고 믿고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무모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종합적(綜合的)인' 정의가 어떤 형태를 띨 것인가도 불분명하지만, 설사 특별한 유용성을 가질 것인가도 의심스럽다. 그 세사지 정의가 서로 종합되거나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보다 확실하게 주장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정의에 의하여 설명되는 교육 현상(現像)이 어떤 종류의 것들이며 그 현상에 대하여 각각의 정의가 어떤 방식의 설명을 제시하는가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다소간이나마 자세하게 보이는 것은 이 책이 아닌 다른 기회로 미루는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
1. 장상호(1997), <학문과 교육 上>,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 정범모(1976), <교육과 교육학>, 서울: 배영사.
  • 가격7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4.02.19
  • 저작시기2004.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3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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