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 1장.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
제 2장. 김 부 식 (金富軾, 1075~1151)
1. 생 애
2. 역 사 인 식
3. 「삼국사기」의 성격
4. 사학사적 위치
제 3장. 일 연 (一然, 1206∼1289)
1. 일연의 생애
2. 역사인식
3. 역 사 학
▣ 평 론
제 2장. 김 부 식 (金富軾, 1075~1151)
1. 생 애
2. 역 사 인 식
3. 「삼국사기」의 성격
4. 사학사적 위치
제 3장. 일 연 (一然, 1206∼1289)
1. 일연의 생애
2. 역사인식
3. 역 사 학
▣ 평 론
본문내용
서 살펴볼 수 있다.
「삼국유사」는 전5권에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권은 왕력편과 기이편이고 제2권은 기이편의 계속이다. 제3권은 흥법편과 상편이며 제4권은 의해편이다. 그리고 제5권은 신주·감통·피은·효선편이다. 이와같은 「삼국유사」의 체재는 통상적인 사서나 승전과는 달리 자유로운 그러나 나름대로 면밀한 편성 형식을 보인 특이한 것이다.
왕력편은 신라 시조 혁거세로부터 고려 태조의 재통일에 이르는 삼국과 가락 그리고 후삼국의왕력을 중국과 함께 도표화하여 시대적 준거가 되게 한 것이다. 각 왕의 세계·기년 그리고 간략한 치적이나 중요한 역사적 사실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삼국사기」와 다른 사료도 많이 있어 고대의 왕위계승 연구등에 중요한 사료를 제공해준다.
기이편은 고조선 이래로 후백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대사의 광범위한 영역을 신이를 바탕으로 59항목으로 다루고 있다. 다른 편에도 신이한 자료가 많이 보이지만, 일연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기이편은 국가의 흥망에 신이한 힘이 크게 작용한다는 인식에서 '신이를 기록한다'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흥법편 이하는 모두 불교에 대한 기사로서 종합 불교사를 이룬다. 삼국에 불교가 전래하여 유통 정착되는 기사들을 영험을 중심으로 체계화해놓은 것으로서 삼국 중에서도 신라중심이다. 그 이유는 신라 중심의 사료편중 및 일연의 활동 무대가 대체로 경상도이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는 다방면의 고대문화 연구에 많은 자료를 제공해준다. 정치적 사건 혹은 제도를 설명하고 장원 경영과 같은 골품제도의 특권을 누리고 있던 지배층의 실제 생활 등을 담아 정치사회사 연구를 살펴볼 수 있으며 가장 풍부한 연구분야는 신라·고구려·백제를 망라하는 한국 고대 불교사이다.
「삼국유사」에 일연 자신의 견해가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은 찬(讚)이다. 내용은 자신의 신앙심을 기저에 두고 본문의 내용을 짧게 찬탄하는 것이 주축을 이루는데 주로 부처의 위력이나 영험 또는 이적 등을 감동적으로 읊은 것이 많다. 불심의 평담한 맛을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이 찬들은 일연의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3. 사학사적 의의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의의는 먼저 강렬한 국가의식을 표출하는 가운데 중국의 역사관을 수용하면서도 독자성과 융통성을 강조하여 현실긍정과 합리성이 두드러진 사서이다. 또한 민족 자주성과 문화의 우위성을 내세우고자 신이(神異)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불교의 선과 교 모두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고 민족의 주주정신과 등지를 고취하고자 불국토와 호국불교 사상을 강조하였다. 또 당시의 불교와 사회모순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 드러나있으며, 역사적 사실성에서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
자료 수집과 채록 노력은 고대문화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나 문학적인 탐구의 문을 크게 열어주었다.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찬술태도 및 우리 고대사를 자주적인 입자에서 새롭게 이해하려는 노력 등. 「삼국유사」가 가지는 사학사적 의의는 매우 소중하다.
▣ 평 론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
하나의 역사서가 당대는 물론 후대의 역사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그러한 면에서 지금까지 전해오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편찬 당시부터 현재까지 여러 긍정적·부정적 평가를 받아오며 우리 나라의 역사의식을 좌우했다고 본다.
「삼국사기」는 군왕의 명령에 의해서 찬술된 역사서다. 김부식에 의해서 지어진 책이 아니라 묘청란 진압 이후 왕권의 강화와 고려왕조의 통치권 확립을 위한 노력이 요청되는 시기에 국왕의 요구하에 사관(史官)들과 함께 만들어낸 역사서이다. 그러므로 「삼국사기」는 김부식만의 사찬사서가 아니라 관찬사서이다. 때문에 특정한 사실을 날조하거나 첨삭하진 않았을 것이다. 유교적 도덕주의에 입각한 합리주의 사관으로 서술된 「삼국사기」는 그 이전보다 상당히 발전된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한 단계 뛰어넘은 역사서라 볼 수 있다.
부정적인 면을 살펴보면 "괴력난신(怪力亂神)은 말하지 않는다"는 신화에 대한 비판과 그로 인한 단군조선의 삭제 및 신라중심의 저술로 인해 사대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고대문화에 대해 낮게 평가한 김부식 하 사관들의 편협한 역사관일수도 있지만 관찬사서라는 점을 유념할 때 혹 자료의 한계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삼국사기」가 편찬되고 150여 년이 지난 후에 동일한 대상 시기의 역사를 재차 찬술한 점이 상당히 미심쩍다. 일연이 삼국사기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거나 아님 「삼국사기」에서 누락되고 위축되었던 부분에 대한 보강의 필요성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삼국유사」는 자료 수집 및 역사 서술 면에서 상당히 귀중한 역사서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배층은 물론 서민층의 생활을 서술함으로써 지배층이 민중들의 삶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였다고 볼수 있다. 또한 고대문화 및 설화를 정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확립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였으며 민족문화의 우위성을 강조하여 몽고 압제라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하나의 역사서를 보면서 긍정론과 부정론은 당연히 있을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역사서는 물론 역사의식이 발전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편에 치중되어 역사를 평가해서는 아니된다고 본다. 나 자신조차 좋은 면과 나쁜 면도 모두 분명히 있다. 그 훌륭하다던 영웅들조차 당연히 그렇다. 결국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그 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고 그로 인해 역사의식 및 민족 문화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다음 세대의 과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충분히 주었다는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역사서를 평가하는 데는 "역사인식"과 그 기록의 "객관성"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우리는 고대 문화를 재평가하고 연구하여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항상 그 자리에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불쌍한 삶인가? 과거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조건으로 이루어낸 우리 나라의 새로운 역사를 기대해본다.
「삼국유사」는 전5권에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권은 왕력편과 기이편이고 제2권은 기이편의 계속이다. 제3권은 흥법편과 상편이며 제4권은 의해편이다. 그리고 제5권은 신주·감통·피은·효선편이다. 이와같은 「삼국유사」의 체재는 통상적인 사서나 승전과는 달리 자유로운 그러나 나름대로 면밀한 편성 형식을 보인 특이한 것이다.
왕력편은 신라 시조 혁거세로부터 고려 태조의 재통일에 이르는 삼국과 가락 그리고 후삼국의왕력을 중국과 함께 도표화하여 시대적 준거가 되게 한 것이다. 각 왕의 세계·기년 그리고 간략한 치적이나 중요한 역사적 사실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삼국사기」와 다른 사료도 많이 있어 고대의 왕위계승 연구등에 중요한 사료를 제공해준다.
기이편은 고조선 이래로 후백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대사의 광범위한 영역을 신이를 바탕으로 59항목으로 다루고 있다. 다른 편에도 신이한 자료가 많이 보이지만, 일연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기이편은 국가의 흥망에 신이한 힘이 크게 작용한다는 인식에서 '신이를 기록한다'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흥법편 이하는 모두 불교에 대한 기사로서 종합 불교사를 이룬다. 삼국에 불교가 전래하여 유통 정착되는 기사들을 영험을 중심으로 체계화해놓은 것으로서 삼국 중에서도 신라중심이다. 그 이유는 신라 중심의 사료편중 및 일연의 활동 무대가 대체로 경상도이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는 다방면의 고대문화 연구에 많은 자료를 제공해준다. 정치적 사건 혹은 제도를 설명하고 장원 경영과 같은 골품제도의 특권을 누리고 있던 지배층의 실제 생활 등을 담아 정치사회사 연구를 살펴볼 수 있으며 가장 풍부한 연구분야는 신라·고구려·백제를 망라하는 한국 고대 불교사이다.
「삼국유사」에 일연 자신의 견해가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은 찬(讚)이다. 내용은 자신의 신앙심을 기저에 두고 본문의 내용을 짧게 찬탄하는 것이 주축을 이루는데 주로 부처의 위력이나 영험 또는 이적 등을 감동적으로 읊은 것이 많다. 불심의 평담한 맛을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이 찬들은 일연의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3. 사학사적 의의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의의는 먼저 강렬한 국가의식을 표출하는 가운데 중국의 역사관을 수용하면서도 독자성과 융통성을 강조하여 현실긍정과 합리성이 두드러진 사서이다. 또한 민족 자주성과 문화의 우위성을 내세우고자 신이(神異)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불교의 선과 교 모두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고 민족의 주주정신과 등지를 고취하고자 불국토와 호국불교 사상을 강조하였다. 또 당시의 불교와 사회모순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 드러나있으며, 역사적 사실성에서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
자료 수집과 채록 노력은 고대문화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나 문학적인 탐구의 문을 크게 열어주었다.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찬술태도 및 우리 고대사를 자주적인 입자에서 새롭게 이해하려는 노력 등. 「삼국유사」가 가지는 사학사적 의의는 매우 소중하다.
▣ 평 론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
하나의 역사서가 당대는 물론 후대의 역사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그러한 면에서 지금까지 전해오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편찬 당시부터 현재까지 여러 긍정적·부정적 평가를 받아오며 우리 나라의 역사의식을 좌우했다고 본다.
「삼국사기」는 군왕의 명령에 의해서 찬술된 역사서다. 김부식에 의해서 지어진 책이 아니라 묘청란 진압 이후 왕권의 강화와 고려왕조의 통치권 확립을 위한 노력이 요청되는 시기에 국왕의 요구하에 사관(史官)들과 함께 만들어낸 역사서이다. 그러므로 「삼국사기」는 김부식만의 사찬사서가 아니라 관찬사서이다. 때문에 특정한 사실을 날조하거나 첨삭하진 않았을 것이다. 유교적 도덕주의에 입각한 합리주의 사관으로 서술된 「삼국사기」는 그 이전보다 상당히 발전된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한 단계 뛰어넘은 역사서라 볼 수 있다.
부정적인 면을 살펴보면 "괴력난신(怪力亂神)은 말하지 않는다"는 신화에 대한 비판과 그로 인한 단군조선의 삭제 및 신라중심의 저술로 인해 사대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고대문화에 대해 낮게 평가한 김부식 하 사관들의 편협한 역사관일수도 있지만 관찬사서라는 점을 유념할 때 혹 자료의 한계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삼국사기」가 편찬되고 150여 년이 지난 후에 동일한 대상 시기의 역사를 재차 찬술한 점이 상당히 미심쩍다. 일연이 삼국사기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거나 아님 「삼국사기」에서 누락되고 위축되었던 부분에 대한 보강의 필요성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삼국유사」는 자료 수집 및 역사 서술 면에서 상당히 귀중한 역사서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배층은 물론 서민층의 생활을 서술함으로써 지배층이 민중들의 삶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였다고 볼수 있다. 또한 고대문화 및 설화를 정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확립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였으며 민족문화의 우위성을 강조하여 몽고 압제라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하나의 역사서를 보면서 긍정론과 부정론은 당연히 있을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역사서는 물론 역사의식이 발전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편에 치중되어 역사를 평가해서는 아니된다고 본다. 나 자신조차 좋은 면과 나쁜 면도 모두 분명히 있다. 그 훌륭하다던 영웅들조차 당연히 그렇다. 결국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그 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고 그로 인해 역사의식 및 민족 문화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다음 세대의 과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충분히 주었다는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역사서를 평가하는 데는 "역사인식"과 그 기록의 "객관성"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우리는 고대 문화를 재평가하고 연구하여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항상 그 자리에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불쌍한 삶인가? 과거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조건으로 이루어낸 우리 나라의 새로운 역사를 기대해본다.
추천자료
고려시대 무신정권하의 권력구조변천에 대한고찰
고려시대의 사상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 대한 서평
고려시대 차 문화
고려시대의 자기
고려시대의 교육
[고려]고려시대의 군사제도에 관한연구
고려도경을 통해 본 고려시대의 음식문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농민항쟁, 조선사림정치
교육철학 및 교육사 -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PPT자료
[A+] 고려시대 서민문화 - 고려인 의료혜택, 병원, 음주문화, 고려장, 장례풍속, 금주령, 장...
[과거시험(과거제도)]과거시험(과거제도, 과거)과 고려 광종, 과거시험(과거제도, 과거)과 고...
고려시대 토지제도 - 전시과제도와 공전·사전, 민전의 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