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속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질서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영국에서는 허치슨이 선의 가치는 미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직접적 방식, 정서에 알맞는 방식으로 파악된다고 말하고 있다. 허치슨은 도덕적 감관이라는 개념을 윤리학에 도입하려 노력했다. 그는 우리의 윤리적 가치적 가치 판단은 반성이 아니라, 직관에 기인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어떤 행동의 윤리적 가치 또는 무가치는 직접적·직관적 방식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셸러는 윤리적 가치 인식은 독특한 인식이며, 이 인식은 모든 합리적·논증적 인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이 인식은 합리적 직관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사실 가치는 우리에 의하여 관조된다. 그러나 이 관조는 사유의 작용이 아니고, 오히려 정감 작용이다. 그것은 감정적 관조이거나 체험함이다. 셸러는 이것을 "지향적 정감 작용", 다시 말하면 주관의 단순한 상태로서의 "감정"과 대립하여 대상적으로 향해있고 지향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정감 작용이라 부른다. 인간이 지성만 가지고 있다면, 그는 가치 경험도, 실재성의 경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종교적 가치 경험은 미적·윤리적 가치 경험과 대조를 이룬다. 종교적 가치 경험은 종교적 가치 대상, 즉 성스러운 것이거나 신적인 것과 관계한다. 성스러운 것은 최고선으로서 뿐만 아니라 최고 실재자로서 체험되기 때문에, 종교적 경험은 가치 경험일 뿐만 아니라 실재성의 경험이다. 그것은 감정적·의지적 요소를 그리고 지적 요소도 들어낸다. 그러므로 인간 정신의 모든 힘은 이 종교적 경험에 관여하고 있다. 종교적 경험은 말하자면 전 인격성의 기능이다. 우리는 이것을 합리적·감정적·의지적 직관과 대조시켜서 총체적 직관이라 부를 수 있다.
종교적 경험은 두 가지의 주된 형태로, 즉 신비적 경험과 예언적 경험으로 나타난다. 전자의 특징은 미적 체험에 가깝다는 것이고, 후자의 특징은 윤리적 경험과의 유사성이다. 전자에서는 신적인 것이 오히려 정지해 있는 가치로서 체험되고, 후자에서는 작용하는 힘 즉 활동적 의지로서 체험된다. 그러므로 신비적 경험 속에서는 감정적 요소가, 예언적 경험 속에서는 의지적 요소가 좀더 강하게 등장한다.
종교적 경험의 이념은 고대와 근대의 모든 철학자들에게서 발견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의 신과의 직접적인 접촉, 즉 신비적인 신의 직관을 가르쳤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중세의 신비 사상 속으로 흘러들었다. 스콜라 사상이 형이상학적·종교적 영역에서 합리적·논증적 인식 작용만을 타당하게 한 반면에, 신비 사상은 내적 경험과 직관을 통하여 신의 체험을 가르쳤다. 신비 사상에서 신에 이르는 본래적 길은 "체험으로 증명된 신의 인식"이다. "냉정하고 추상적이며, 비인격적인 삼단논법의 방법은 신비 사상에서는 진리 파악을 위한 이상이나 유일한 수단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신비 사상은 오히려 진리 원천을 주관적인 체험과 경험 속에서, 주관적인 관조 속에서, 정신적인 시각, 지각 그리고 체험 속에서, 그리고 내적 체험 및 직관과 결합되어 있고, 사정에 따라서는 그러한 정감 작용과 노력 속에서 발견한다." 근대에 와서는 파스칼이 종교적 직관의 권리를 알려주고 있는데, 그의 학풍은 19세기에 인식의 3가지 원천, 즉 지와 신앙과 예감을 구별한 프라이스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예감은 "순수한 정감에 의한 인식"이다. 이 인식을 매개로 하여 우리는 시간적인 것 속에서 영원한 것을, 그리고 세속적인 것 속에서 신비적인 것을 파악한다. 따라서 예감은 종교적 인식 기관이다. 슐라이어마허도 종교는 그 핵심에 따라서 세계 전체와 세계 근거를 감정적·직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종교는 "우주에 대한 정감이요, 직관"임을 주장한다.
종교적 가치 경험은 미적·윤리적 가치 경험과 대조를 이룬다. 종교적 가치 경험은 종교적 가치 대상, 즉 성스러운 것이거나 신적인 것과 관계한다. 성스러운 것은 최고선으로서 뿐만 아니라 최고 실재자로서 체험되기 때문에, 종교적 경험은 가치 경험일 뿐만 아니라 실재성의 경험이다. 그것은 감정적·의지적 요소를 그리고 지적 요소도 들어낸다. 그러므로 인간 정신의 모든 힘은 이 종교적 경험에 관여하고 있다. 종교적 경험은 말하자면 전 인격성의 기능이다. 우리는 이것을 합리적·감정적·의지적 직관과 대조시켜서 총체적 직관이라 부를 수 있다.
종교적 경험은 두 가지의 주된 형태로, 즉 신비적 경험과 예언적 경험으로 나타난다. 전자의 특징은 미적 체험에 가깝다는 것이고, 후자의 특징은 윤리적 경험과의 유사성이다. 전자에서는 신적인 것이 오히려 정지해 있는 가치로서 체험되고, 후자에서는 작용하는 힘 즉 활동적 의지로서 체험된다. 그러므로 신비적 경험 속에서는 감정적 요소가, 예언적 경험 속에서는 의지적 요소가 좀더 강하게 등장한다.
종교적 경험의 이념은 고대와 근대의 모든 철학자들에게서 발견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의 신과의 직접적인 접촉, 즉 신비적인 신의 직관을 가르쳤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중세의 신비 사상 속으로 흘러들었다. 스콜라 사상이 형이상학적·종교적 영역에서 합리적·논증적 인식 작용만을 타당하게 한 반면에, 신비 사상은 내적 경험과 직관을 통하여 신의 체험을 가르쳤다. 신비 사상에서 신에 이르는 본래적 길은 "체험으로 증명된 신의 인식"이다. "냉정하고 추상적이며, 비인격적인 삼단논법의 방법은 신비 사상에서는 진리 파악을 위한 이상이나 유일한 수단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신비 사상은 오히려 진리 원천을 주관적인 체험과 경험 속에서, 주관적인 관조 속에서, 정신적인 시각, 지각 그리고 체험 속에서, 그리고 내적 체험 및 직관과 결합되어 있고, 사정에 따라서는 그러한 정감 작용과 노력 속에서 발견한다." 근대에 와서는 파스칼이 종교적 직관의 권리를 알려주고 있는데, 그의 학풍은 19세기에 인식의 3가지 원천, 즉 지와 신앙과 예감을 구별한 프라이스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예감은 "순수한 정감에 의한 인식"이다. 이 인식을 매개로 하여 우리는 시간적인 것 속에서 영원한 것을, 그리고 세속적인 것 속에서 신비적인 것을 파악한다. 따라서 예감은 종교적 인식 기관이다. 슐라이어마허도 종교는 그 핵심에 따라서 세계 전체와 세계 근거를 감정적·직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종교는 "우주에 대한 정감이요, 직관"임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