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인식의 경계와 경계로부터의 해방
2. 생산, 노동, 축적 - 소모, 죽음, 에로티즘
3. 거대한 소모로서의 죽음과 에로티즘
4. 소모의 개념
5. 일반 경제
참고문헌
2. 생산, 노동, 축적 - 소모, 죽음, 에로티즘
3. 거대한 소모로서의 죽음과 에로티즘
4. 소모의 개념
5. 일반 경제
참고문헌
본문내용
아니라, 지구 전체로서 에너지 에너지는 사물, 즉 생산이나 흐름의 직접적 대상이 되기 위한 기초 자원의 전물질 前物質이다. 그것이 식물과 같은 최초의 에너지 축적체의 성장에서 시작되어 각 단계를 거쳐 가면서 - 즉 전단계 생물을 살해하는 것으로 - 보다 고도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이 축적된 에너지는 다시 더 높은 단계의 개체에 의해 소비된다. 즉, 에너지를 바탕으로 물질이 생산되는 것이다. 바따이유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최근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반 경제의 원칙에 모호하긴 하지만 하나의 기초를 마련했다. 말하자면 에너지의 낭비는 언제나 사물의 반대 입장에 있지만 그럼에도 에너지의 사용은 사물의 질서에 편입될 때에만, 사물로 변할 때에만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주의 몫, p 111)
의 흐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전술한 대로 바따이유는 지구 그 자체는 무한정한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받기만 하고 생산할 필요가 없으며, 생산을 한다 해도 생장의 한계점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에는 과잉 생산은 조건 없이 소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 무한히 주어지는 우주로부터의 에너지는 지구의 생명체들로 하여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모하게 만들었지만, 인간은 그러한 에너지의 소모를 거부하고 생산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소모를 거부하고 생산을 시작한 것인가? 앞서 간략히 언급한 바 있지만, 그것은 소비의 폭력적 형태에 대해 의식을 통해 인간만이 갖는 두려움 때문이다. 즉, 미생물로부터 시작되어 축적되는 에너지는 육식동물의 단계까지 축적과 소모를 계속적으로 반복한다. 식물이 축적해낸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우선 초식동물에 의해 소모되고, 그렇게 초식동물들이 식물의 살해라는 소모에 의해 축적해낸 에너지는 다시 육식동물에 의해 소모된다. 즉 단계적으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는 각 에너지의 축적체들에 대한 더 높은 단계의 생물에 의한 살해 대상의 죽음을 통해 전이 또는 소모되는데, 이러한 폭력적 형태의 소모에 대한 인간의 의식 - 두려움 - 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 상태에서의 에너지의 소모를 멀리하고, 이러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죽음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 보다 안정적이고, 덜 폭력적인 - 덜 폭력적으로 보이는 - 노동을 통한 사회의 구성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시작된 생산 - 노동에 의한 - 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고, 축적된 에너지는 다시 인간이라는 개체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도시의 인구밀도를 고려한다면, 또 그것과 자연 상태의 동물들의 개체 밀도를 고려한다면 노동에 의한 생산이 엄청난 인간개체의 확산을 가능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개체의 성장 혹은 확산이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통한 에너지의 축적은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개별경제가 갖는 맹점이다. 에너지의 흐름, 생산의 결과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을 통해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고려하지 않는 개별경제는 필연적으로 생산과 소모, 축적과 낭비의 불균형을 야기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우리의 기존 경제학적 사고와 그에 바탕을 둔 행위는 끊임없이 더 많은 생산을 요구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문제들로 가득 찬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도 아직까지도 인간 사회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축적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기존의 경제학에서는 자원의 유한성을 전제로 하지만, 이 유한성의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가격이 상승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기존 경제학이 갖고 있는 전제상의 오류이다. 즉 개별경제주체의 생산 중심적 활동이라는 기존 경제학적 사고로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현재의 상황은 특이하게도 ‘일반적인’ 상황에 관한 판단이 특수한 ‘개별적’ 관점에서 나온다는 사실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개별적 개체가 항상 자원이 고갈될 위험, 그리고 그 때문에 사라질 위험에 직면해 있는 존재라면, 일반적 실존은 그와는 대립적인 개념이다. 일반적 실존의 자원은 항상 넘쳐나며 따라서 일반적 실존에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저주의 몫, p 80)
언제나 개별 경제단위의 무한 확장만을 생각하고, 추구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전체로서의 경제, 생산의 측면만이 아닌 소비의 측면까지를 고려한 일반 경제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역사에서 볼 때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존속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정한 인식의 경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생산과 이윤의 추구만을 최고의 선으로 보고 이 짧은 역사를 갖는 개념을 인간의 본능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회와 제도가 만들어낸 허구적 개념인가 - 구조주의 - 행위자들의 자유의지와 구조간의 성찰적 소통에 의한 것인가 - 구조화 이론 - 아니면 전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인가 - 고전 경제학 - 를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경제 역사가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생산위주의 사회, 에너지의 축적만을 추구하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가 결코 본원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따이유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에 이르는 “역사적” 예시들을 통해 생산과 소모의 균형사회를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생산과 축적의 추구가, 즉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원적 모습에 가장 근접한 존재양식이 아님을 반증하기 위해서이다. 즉 바따이유의 일반 경제는 그의 철학적 성찰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 역사 속에 존재했던 사회의 다양한 형식에서 추출된 실존적이고 실제적 개념인 것이다.
참고문헌
바따이유 저, 조한경 역, 『저주의 몫』, 문학동네, 서울, 2000
__________, 조한경 역, 『에로티즘』, 문학동네, 서울, 2000
__________, 조한경 역, 『에로티즘의 역사』, 민음사, 서울, 1998
유기환, 『조르주 바타이유: 저주의 몫, 에로티즘』, 살림출판사, 경기, 2006
줄리언 페피니스 저, 백준걸 역, 『이질성의 철학: 그리고 바따이유, 보드리야르, 리요타르』, 시각과 언어, 서울, 2000
의 흐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전술한 대로 바따이유는 지구 그 자체는 무한정한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받기만 하고 생산할 필요가 없으며, 생산을 한다 해도 생장의 한계점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에는 과잉 생산은 조건 없이 소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 무한히 주어지는 우주로부터의 에너지는 지구의 생명체들로 하여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모하게 만들었지만, 인간은 그러한 에너지의 소모를 거부하고 생산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소모를 거부하고 생산을 시작한 것인가? 앞서 간략히 언급한 바 있지만, 그것은 소비의 폭력적 형태에 대해 의식을 통해 인간만이 갖는 두려움 때문이다. 즉, 미생물로부터 시작되어 축적되는 에너지는 육식동물의 단계까지 축적과 소모를 계속적으로 반복한다. 식물이 축적해낸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우선 초식동물에 의해 소모되고, 그렇게 초식동물들이 식물의 살해라는 소모에 의해 축적해낸 에너지는 다시 육식동물에 의해 소모된다. 즉 단계적으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는 각 에너지의 축적체들에 대한 더 높은 단계의 생물에 의한 살해 대상의 죽음을 통해 전이 또는 소모되는데, 이러한 폭력적 형태의 소모에 대한 인간의 의식 - 두려움 - 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 상태에서의 에너지의 소모를 멀리하고, 이러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죽음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 보다 안정적이고, 덜 폭력적인 - 덜 폭력적으로 보이는 - 노동을 통한 사회의 구성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시작된 생산 - 노동에 의한 - 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고, 축적된 에너지는 다시 인간이라는 개체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도시의 인구밀도를 고려한다면, 또 그것과 자연 상태의 동물들의 개체 밀도를 고려한다면 노동에 의한 생산이 엄청난 인간개체의 확산을 가능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개체의 성장 혹은 확산이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통한 에너지의 축적은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개별경제가 갖는 맹점이다. 에너지의 흐름, 생산의 결과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을 통해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고려하지 않는 개별경제는 필연적으로 생산과 소모, 축적과 낭비의 불균형을 야기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우리의 기존 경제학적 사고와 그에 바탕을 둔 행위는 끊임없이 더 많은 생산을 요구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문제들로 가득 찬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도 아직까지도 인간 사회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축적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기존의 경제학에서는 자원의 유한성을 전제로 하지만, 이 유한성의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가격이 상승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기존 경제학이 갖고 있는 전제상의 오류이다. 즉 개별경제주체의 생산 중심적 활동이라는 기존 경제학적 사고로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현재의 상황은 특이하게도 ‘일반적인’ 상황에 관한 판단이 특수한 ‘개별적’ 관점에서 나온다는 사실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개별적 개체가 항상 자원이 고갈될 위험, 그리고 그 때문에 사라질 위험에 직면해 있는 존재라면, 일반적 실존은 그와는 대립적인 개념이다. 일반적 실존의 자원은 항상 넘쳐나며 따라서 일반적 실존에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저주의 몫, p 80)
언제나 개별 경제단위의 무한 확장만을 생각하고, 추구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전체로서의 경제, 생산의 측면만이 아닌 소비의 측면까지를 고려한 일반 경제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역사에서 볼 때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존속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정한 인식의 경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생산과 이윤의 추구만을 최고의 선으로 보고 이 짧은 역사를 갖는 개념을 인간의 본능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회와 제도가 만들어낸 허구적 개념인가 - 구조주의 - 행위자들의 자유의지와 구조간의 성찰적 소통에 의한 것인가 - 구조화 이론 - 아니면 전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인가 - 고전 경제학 - 를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경제 역사가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생산위주의 사회, 에너지의 축적만을 추구하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가 결코 본원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따이유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에 이르는 “역사적” 예시들을 통해 생산과 소모의 균형사회를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생산과 축적의 추구가, 즉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원적 모습에 가장 근접한 존재양식이 아님을 반증하기 위해서이다. 즉 바따이유의 일반 경제는 그의 철학적 성찰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 역사 속에 존재했던 사회의 다양한 형식에서 추출된 실존적이고 실제적 개념인 것이다.
참고문헌
바따이유 저, 조한경 역, 『저주의 몫』, 문학동네, 서울, 2000
__________, 조한경 역, 『에로티즘』, 문학동네, 서울, 2000
__________, 조한경 역, 『에로티즘의 역사』, 민음사, 서울, 1998
유기환, 『조르주 바타이유: 저주의 몫, 에로티즘』, 살림출판사, 경기, 2006
줄리언 페피니스 저, 백준걸 역, 『이질성의 철학: 그리고 바따이유, 보드리야르, 리요타르』, 시각과 언어, 서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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