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0. 서론
1. 유신체제에의 적용
⑴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전략과 그 위기
⑵ 중화학공업정책
⑶ 저항세력의 운동
⑷ 권위주의 추진세력
2. 유신체제에의 적용의 문제점
3. 박정희체제 18년 어떻게 볼 것인가?
4.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양립가능한가?
5.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이루어진 경제발전을 어떻게 볼것인가?
6.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의 변증법적 자기부정
1. 유신체제에의 적용
⑴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전략과 그 위기
⑵ 중화학공업정책
⑶ 저항세력의 운동
⑷ 권위주의 추진세력
2. 유신체제에의 적용의 문제점
3. 박정희체제 18년 어떻게 볼 것인가?
4.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양립가능한가?
5.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이루어진 경제발전을 어떻게 볼것인가?
6.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의 변증법적 자기부정
본문내용
가치를 옹호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이미 살펴보았듯이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민주를 선택하여 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룬 선례가 없다는 경험적 근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인데 민주라는 가치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만약 굶주림이나 절대빈곤과 배타적 선택관계에 있다면 생각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국가들 중 지난 200년 동안 전통적인 농업사회로부터 근대 산업사회로의 사회변동과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이 과정을 자본주의화라는 입장에서 바라본 막스에게나 합리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베버에게나 변동 그 자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역사적 사실이었다. 이제 우리가 발전이나 산업화 그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희생과 부작용도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이런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발된 것이 바로 박정희 집권하의 1960년대∼70년대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당연히 제기해볼 수 있는 의문이 이 시대에 발생한 여러 문제들과 부작용들의 원인을 과연 어디로 귀속시켜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흔히 주장하듯이 박정희 체제 탓인가 아니면 산업화의 불가피한 부산물인가? 양자가 공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당시가 산업화 초기단계였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들-예컨대, 저임금, 장시간 노동, 정치체제의 비민주성 등-이 있었지만, 그것이 당시 한국이 추구했던 독특한 압축형 산업발전전략으로 인해 가중되었고, 그 와중에서 자원의 왜곡배분이나 1인 장기집권과 같은 현상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산업현상을 고려했다고 해서 박정희 체제에 대한 여러 비판이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산업화가 호오(好惡)의 가치판단을 떠난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과정이라는 점과 그러한 운명적 과정을 떠맡아 추진한 박정희 체제에 그 시대의 모든 문제를 귀속시키는 오류를 범하지는 말자는 것이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6.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의 변증법적 자기부정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뒤따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산업화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린 국가들만이 민주주의로 갔거나 이행중에 있다는 것도 또한 경험적으로는 확인되는 사실이다. 이것은 법칙적이거나 보편적으로 주장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필자는 지금까지 관찰된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의 변증법적 '자기부정'과정에 주목하고 싶다.
이제 문제는 과도기의 종점, 다시 말해 발전지향적 권위주의체제의 변증법적 자기부정의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이다. 이것은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추진되던 발전모델이 한계를 드러내는 시점을 찾는 문제라는 점에서 보다 객관적인 성격을 지닌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인간들 간의 세력관계나 주관적 의지에 의해 인위적으로 축소 또는 연장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보다 주체성이 개입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환은 커다란 비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그 비용을 감당할 만한 성장의 시점을 찾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증명하기가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1980년을 그 시점으로 보고자 한다. 1970년대까지의 발전주의적 권위주의 체제가 추진한 성장모델의 요체는 외자의존, 수출지향, 국가주도, 그리고 개발독재였다. 그중 앞의 두 가지는 내용상의 변화는 있지만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국가주도는 1980년대 말 이후 그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요소인데, 그 시발은 이미 1980년대 초부터였다. 당시 전두환 체제는 경제적으로 자유화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미국의 압력 탓도 있지만 그간의 산업화과정에서 성장한 사회 제부문, 특히 자본으로부터의 요구에 부응하는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경제부문에서의 이런 국가주도성의 완화에 상응하는 정치적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세계체제와 사회로부터의 요구에 따라 경제에 있어 국가주도성의 해체는 시작되었으나 정치는 여전히 개발독재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불균형이 초래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정치의 자유화는 상당한 전환의 비용을 요구하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1980년대 초에 치렀어야 한다. 그리하여 경제와 정치사이의 그간의 '희생적 격차'를 해소하고 새로운 발전모델을 모색했어야 한다. 박정희 시대에 이루어졌던 개발방식으로는 이제 당시와 같은 형식합리성을 증진시키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두환 체제는 이러한 전환, 즉 발전주의적 권위주의 체제의 변증법적 자기부정을 거부하고 시효만료된 모델을 인위적으로 연장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역삭적 위상을 자리매김할 수 있다.
삼촌인 나폴레옹 1세를 흉내내는 조카 나폴레옹 3세를 빗대기 위해 막스는 헤겔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모두 두 번 일어나거나 등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으로 나타난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당통에 대해서 코시디에르가, 로베스피에르에 대해서 루이 블랑이, 1793년∼95년의 산악당에 대해서 1845∼51년의 산악당이, 그리고 삼촌에 대해서 조카가 그러하다."(K. Marx, 1969, Vol. 1: 398)
박정희와 전두환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100여년 전 막스가 한 이 말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이들의 잔당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망령(亡靈)을 불러내는 굿판을 벌이고 있다. 그것은 이미 15년전에 시효가 만료된 유령을 들먹인다는 점에서 망령(妄靈)에 해당된다. 따라서 나는 막스의 위의 표현을 다음과 같이 고치고 싶다.
"역사에서 유사한 사건이나 인물은 모두 세 번 일어나거나 등장하는 데, 그것이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 그리고 마지막에는 광란극으로 나타난다.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아직도 살아남아 망령(亡靈)을 불러내는 굿판을 벌이면서 정치적 위상의 재고를 꿈꾸는 5·16 및 12·12쿠데타의 잔당들이 그들이다."
지구상의 국가들 중 지난 200년 동안 전통적인 농업사회로부터 근대 산업사회로의 사회변동과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이 과정을 자본주의화라는 입장에서 바라본 막스에게나 합리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베버에게나 변동 그 자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역사적 사실이었다. 이제 우리가 발전이나 산업화 그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희생과 부작용도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이런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발된 것이 바로 박정희 집권하의 1960년대∼70년대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당연히 제기해볼 수 있는 의문이 이 시대에 발생한 여러 문제들과 부작용들의 원인을 과연 어디로 귀속시켜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흔히 주장하듯이 박정희 체제 탓인가 아니면 산업화의 불가피한 부산물인가? 양자가 공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당시가 산업화 초기단계였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들-예컨대, 저임금, 장시간 노동, 정치체제의 비민주성 등-이 있었지만, 그것이 당시 한국이 추구했던 독특한 압축형 산업발전전략으로 인해 가중되었고, 그 와중에서 자원의 왜곡배분이나 1인 장기집권과 같은 현상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산업현상을 고려했다고 해서 박정희 체제에 대한 여러 비판이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산업화가 호오(好惡)의 가치판단을 떠난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과정이라는 점과 그러한 운명적 과정을 떠맡아 추진한 박정희 체제에 그 시대의 모든 문제를 귀속시키는 오류를 범하지는 말자는 것이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6.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의 변증법적 자기부정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뒤따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산업화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린 국가들만이 민주주의로 갔거나 이행중에 있다는 것도 또한 경험적으로는 확인되는 사실이다. 이것은 법칙적이거나 보편적으로 주장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필자는 지금까지 관찰된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의 변증법적 '자기부정'과정에 주목하고 싶다.
이제 문제는 과도기의 종점, 다시 말해 발전지향적 권위주의체제의 변증법적 자기부정의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이다. 이것은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추진되던 발전모델이 한계를 드러내는 시점을 찾는 문제라는 점에서 보다 객관적인 성격을 지닌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인간들 간의 세력관계나 주관적 의지에 의해 인위적으로 축소 또는 연장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보다 주체성이 개입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환은 커다란 비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그 비용을 감당할 만한 성장의 시점을 찾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증명하기가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1980년을 그 시점으로 보고자 한다. 1970년대까지의 발전주의적 권위주의 체제가 추진한 성장모델의 요체는 외자의존, 수출지향, 국가주도, 그리고 개발독재였다. 그중 앞의 두 가지는 내용상의 변화는 있지만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국가주도는 1980년대 말 이후 그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요소인데, 그 시발은 이미 1980년대 초부터였다. 당시 전두환 체제는 경제적으로 자유화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미국의 압력 탓도 있지만 그간의 산업화과정에서 성장한 사회 제부문, 특히 자본으로부터의 요구에 부응하는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경제부문에서의 이런 국가주도성의 완화에 상응하는 정치적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세계체제와 사회로부터의 요구에 따라 경제에 있어 국가주도성의 해체는 시작되었으나 정치는 여전히 개발독재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불균형이 초래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정치의 자유화는 상당한 전환의 비용을 요구하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1980년대 초에 치렀어야 한다. 그리하여 경제와 정치사이의 그간의 '희생적 격차'를 해소하고 새로운 발전모델을 모색했어야 한다. 박정희 시대에 이루어졌던 개발방식으로는 이제 당시와 같은 형식합리성을 증진시키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두환 체제는 이러한 전환, 즉 발전주의적 권위주의 체제의 변증법적 자기부정을 거부하고 시효만료된 모델을 인위적으로 연장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역삭적 위상을 자리매김할 수 있다.
삼촌인 나폴레옹 1세를 흉내내는 조카 나폴레옹 3세를 빗대기 위해 막스는 헤겔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모두 두 번 일어나거나 등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으로 나타난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당통에 대해서 코시디에르가, 로베스피에르에 대해서 루이 블랑이, 1793년∼95년의 산악당에 대해서 1845∼51년의 산악당이, 그리고 삼촌에 대해서 조카가 그러하다."(K. Marx, 1969, Vol. 1: 398)
박정희와 전두환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100여년 전 막스가 한 이 말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이들의 잔당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망령(亡靈)을 불러내는 굿판을 벌이고 있다. 그것은 이미 15년전에 시효가 만료된 유령을 들먹인다는 점에서 망령(妄靈)에 해당된다. 따라서 나는 막스의 위의 표현을 다음과 같이 고치고 싶다.
"역사에서 유사한 사건이나 인물은 모두 세 번 일어나거나 등장하는 데, 그것이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 그리고 마지막에는 광란극으로 나타난다.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아직도 살아남아 망령(亡靈)을 불러내는 굿판을 벌이면서 정치적 위상의 재고를 꿈꾸는 5·16 및 12·12쿠데타의 잔당들이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