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론] 도요토미 히데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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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성장과정

Ⅱ. 활동과정
1. 시즈가타케의 싸움
2. 히데요시의 정책
·오사카성과 영지전봉(轉封) 정책
·검지와 무기몰수
·농촌생활과 기술의 발달
·상업의 발달
·금은 화폐의 등장
3. 과대망상의 히데요시
·천주교의 금지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Ⅲ. 마치며...

본문내용

같은 근본적인 차이점은 봉건사회를 다스려 나가는 데 있어 커다란 장애물임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래서 히데요시는 봉건사회의 지주(支柱)가 되는 대명이나 무사들에게 천주교의 신앙을 금하였다.
또한 히데요시는 선교사들이 선교활동을 하며 신도를 늘리는 것은 언젠가는 그들이 일본에 군대를 파견하여 나라를 빼앗기 위한 음모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무역선 난파사건이 있은 후 천주교에 대한 단속이 한층 강화되고 선교사나 신자들을 체포하여 화형에 처하는 일까지 있게 되었다.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야망의 사나이 히데요시는 이웃 조선에 대하여는 전후 두 차례에 걸쳐 대군을 파견하여 난을 일으킴으로써 서로간에 수많은 인명을 살상시키고 국력을 피폐하게 하였다.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통일하고 병농 분리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몰수당했거나 그 일부를 빼앗긴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대명 가운데에도 해외의 영토에 관심을 갖는 자들이 있었다. 게다가 무역상들은 해외 무역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히데요시의 무력을 이용하여 해외에 진출하려는 강한 욕망마저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전국시대의 전란이 수습된 후 몰락한 대명과 호족·일반무사 등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영토를 획득하여 그들에게 나누어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위에 히데요시는 전국을 통일한 후 세계에 그 위엄을 떨쳐 보겠다는 일종의 대아세아제국의 건설을 꿈꾸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었다.
결국 복잡한 국내사정과 그의 과대망상이 조선침략이라는 엄청난 전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조선침략에 반대하는 대명들도 있었지만 일단 결심한 히데요시의 생각을 돌이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히데요시의 충전한 의기와 강력한 태도 앞에 모든 의견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동원령이 내려지고 16만의 대군이 집결하여 히데요시의 출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중에 드디어 1952년 4월에 일본군은 부산포로 향해 돌진하였다.
조선군사들은 처음 보는 조총의 위력 앞에서 사기가 떨어져 가고 이윽고 한양까지 함락되었다. 처음의 선전으로 히데요시는 중국 정복까지 꿈꾸며 과대망상적인 언동을 서슴지 않았다.
일본군은 육지에서는 강했으나 해상전 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이순신 장군의 대 활약으로 점점 일본이 밀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사상자를 낳고서도 조선을 포기하지 않았다.
히데요시의 조선정벌의 꿈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고 1958년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인하여 전군이 철수함으로써 전후 7년간 끌어오던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1952년에 시작된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을 일본 역사에서는 「문록·경장의 전쟁」이라 부르고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이라 부른다. 7년에 걸친 이 전쟁은 조선인에게 무한한 고통을 주었을 뿐 아니라 대일 감정을 극도로 악화시켰으며 조선왕조의 쇠퇴, 청국(淸國)의 발흥, 명나라의 쇠미를 몰고 왔다. 그리고 침략자 일본에게도 이렇다할 직접적 소득이 없이 막을 내리고 말았다.
Ⅲ. 마치며...
일본의 천하통일의 꿈을 현실로 바꾼, 어쩌면 행운아이기도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뛰어난 정치적인 감각으로 통일 정책에는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일본 통일을 완성하였다. 여러 가지 정책을 펼치면서 국민을 안정시키고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던 장원제를 폐지시키고 봉건제를 도입함으로써 제법 통일국가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오다 노부나가와 토쿠가와 이에야스 다음으로 일본을 빛낸 위대한 인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정작 통일을 완성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그는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여러 가지 뛰어난 통일정책으로 일본을 통일국가로 완성한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작이 좋았으면 끝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데 자신을 너무 과대 평가한 나머지 히데요시는 마지막에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너무 자만한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힘겹게 이루어 놓은 터에서 너무나 쉽게 통일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러한 점을 만회하기 위해서 해외 정벌로 눈을 돌렸는지 모른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여러 대명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만약에 히데요시가 해외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자국의 경제성장과 나라발전에 사력을 다하였다면 오히려 오다 노부나가나 토쿠가와 이에야스보다 더 훌륭한 인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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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20
  • 저작시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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