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문
2. 바울의 생애
1) 회심전
2) 회심
3) 회심 후
3. 제1차 전도여행
4. 예루살렘 회의
5. 제2차 전도여행
6. 제3차 전도여행
7.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8. 바울의 활동
2. 바울의 생애
1) 회심전
2) 회심
3) 회심 후
3. 제1차 전도여행
4. 예루살렘 회의
5. 제2차 전도여행
6. 제3차 전도여행
7.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8. 바울의 활동
본문내용
며, 빌립보 관헌의 비겁한 처사에 의분을 금치 못하여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행 16:37)고 요구하고, 대제사장 아나니아에게는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행 23:3)라고 대갈(大喝)하였다. 그가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러 전도할 것을 뜻한 것은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고전 16:9)는 이유 때문에서였다.
바울은 사도로서 놀라운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갈 1:1) 자라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다. 고로 어떤 경우에는 거의 에고이스트라고 여겨질 정도로 그리스도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역설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후 12:11)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고전 15:10)라고 말하며,또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4:16)고 권했다. 이와 같은 자신은,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은 사도라는 강한 자각과 사명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사명감이 그를`담대히' `거리낌 없이' 전도시킨 동력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지극히 겸손하였다. 스스로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전 15:9)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 3:8)라고 겸손을 나타내고 있다. 에베소에서의 그의 전도 생활은 `모든 겸손'(행 20:19)을 다했다는 것은, 그 자신의 증언이다. 이와 같은 자신과 겸손은 바울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모순이 없었다. 참으로 하늘로부터의 사명을 느낀 인물에게는 이 두 요소가 혼연히 융화하는 것을 본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 그는 `질그릇'이나 `쓸데없는 종'으로서 꿇어 엎딜 뿐이었다. 그런 하나님의 소명에 의해 세워진 사도임을 자각할 때, 그 무엇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권위와 식견을 가지고 일어섰던 것이다.
바울의 인격에 있어서 더 주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는 일면 신비적 경험이 풍부함과 동시에 또 날카로운 이지적 두뇌의 소유자였으나, 또 다른 일면에 있어서는 극히 실제적인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종종 `환상'을 보았다. 그의 생애의 전기는 거의 항상 그와 같은 신비적 경험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세째 하늘에 이끌려간…(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고후 12:24)와 같은 경험도 있었다. 그는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라는 깊은 영적 경험을 말하고 있다. 그는 또 극히 명철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갈라디아서˙로마서와 같이 사상적으로 심원하고 논리적으로 정연한 서신을 쓸 수 있었던 바울은, 단순한 사상가나 이론가로서도 위대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복음의 가르침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현대의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쌓은 것은 다름 아닌 바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유대주의자도, 이방의 철학자들도 그의 예봉(銳峯) 앞에서는 아무런 권위도 지킬 수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바울은 실제자(實際者)였다. 전도를 하게 되자 그는 극히 조직적인 계획 하에 이를 수행했다. 또 교회를 통일시키기 위해 예루살렘 모교회와 지방의각 교회와의 사이에 끊임없이 연락을 유지하는데 진력하였다. 그는 또 혼자서만 동분서주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동역자들과 같이 전도에 종사했으며, 혹은 그들을 파견했다. 그는 혼자서 공명을 얻으려고 무턱대고 돌진하는 무사와 같지 않고, 만군을 지휘하는 대사령관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질서를 소중히 여기고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라고 가르치고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4:33)라고 역설하기로 했다.
바울의 인격에서 풍성한 근대적 인간미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바울을 바울답게 한 것은 이른바 인간미도 아니고 근대미도 아니었다. 그것도 인간을 초월하고,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역사하여 그를 변화시킨데 불과하다.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체험한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야말로 바울을 설명하는 열쇠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라는 것은 바울의 전심전령(全心全靈)을 불사르는 뜨거운 열정이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고 말하고, 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라고 말한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사는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바울은 놀라우리만큼 다면적인 성격과, 재능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생득적으로 종교적 천재였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전인격적인 사항으로써 파악되고 있다. 그는 위대한 지성의 소유주였다. 진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의미하는 바를 질서 정연하게 해명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아름다운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진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또 진리를 위해 전심전력 다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또 실천가였다. 이론과 실천은 그에게 있어서 항상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었다. 요컨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도로서 그는 가장 적당한 인물이었다. 기독교는 바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최대의 해석자를 발견했다. 기독교의 세계적 종교화는 그 대부분을 바울의 활동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바울에게서 기독교의 구원의 교리의 근본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학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또 윤리나 교회의 실제적 문제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또 그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인간의 전형적인 상(像)을 볼 수 있다.
바울은 사도로서 놀라운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갈 1:1) 자라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다. 고로 어떤 경우에는 거의 에고이스트라고 여겨질 정도로 그리스도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역설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후 12:11)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고전 15:10)라고 말하며,또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4:16)고 권했다. 이와 같은 자신은,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은 사도라는 강한 자각과 사명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사명감이 그를`담대히' `거리낌 없이' 전도시킨 동력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지극히 겸손하였다. 스스로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전 15:9)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 3:8)라고 겸손을 나타내고 있다. 에베소에서의 그의 전도 생활은 `모든 겸손'(행 20:19)을 다했다는 것은, 그 자신의 증언이다. 이와 같은 자신과 겸손은 바울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모순이 없었다. 참으로 하늘로부터의 사명을 느낀 인물에게는 이 두 요소가 혼연히 융화하는 것을 본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 그는 `질그릇'이나 `쓸데없는 종'으로서 꿇어 엎딜 뿐이었다. 그런 하나님의 소명에 의해 세워진 사도임을 자각할 때, 그 무엇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권위와 식견을 가지고 일어섰던 것이다.
바울의 인격에 있어서 더 주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는 일면 신비적 경험이 풍부함과 동시에 또 날카로운 이지적 두뇌의 소유자였으나, 또 다른 일면에 있어서는 극히 실제적인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종종 `환상'을 보았다. 그의 생애의 전기는 거의 항상 그와 같은 신비적 경험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세째 하늘에 이끌려간…(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고후 12:24)와 같은 경험도 있었다. 그는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라는 깊은 영적 경험을 말하고 있다. 그는 또 극히 명철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갈라디아서˙로마서와 같이 사상적으로 심원하고 논리적으로 정연한 서신을 쓸 수 있었던 바울은, 단순한 사상가나 이론가로서도 위대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복음의 가르침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현대의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쌓은 것은 다름 아닌 바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유대주의자도, 이방의 철학자들도 그의 예봉(銳峯) 앞에서는 아무런 권위도 지킬 수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바울은 실제자(實際者)였다. 전도를 하게 되자 그는 극히 조직적인 계획 하에 이를 수행했다. 또 교회를 통일시키기 위해 예루살렘 모교회와 지방의각 교회와의 사이에 끊임없이 연락을 유지하는데 진력하였다. 그는 또 혼자서만 동분서주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동역자들과 같이 전도에 종사했으며, 혹은 그들을 파견했다. 그는 혼자서 공명을 얻으려고 무턱대고 돌진하는 무사와 같지 않고, 만군을 지휘하는 대사령관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질서를 소중히 여기고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라고 가르치고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4:33)라고 역설하기로 했다.
바울의 인격에서 풍성한 근대적 인간미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바울을 바울답게 한 것은 이른바 인간미도 아니고 근대미도 아니었다. 그것도 인간을 초월하고,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역사하여 그를 변화시킨데 불과하다.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체험한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야말로 바울을 설명하는 열쇠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라는 것은 바울의 전심전령(全心全靈)을 불사르는 뜨거운 열정이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고 말하고, 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라고 말한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사는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바울은 놀라우리만큼 다면적인 성격과, 재능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생득적으로 종교적 천재였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전인격적인 사항으로써 파악되고 있다. 그는 위대한 지성의 소유주였다. 진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의미하는 바를 질서 정연하게 해명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아름다운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진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또 진리를 위해 전심전력 다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또 실천가였다. 이론과 실천은 그에게 있어서 항상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었다. 요컨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도로서 그는 가장 적당한 인물이었다. 기독교는 바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최대의 해석자를 발견했다. 기독교의 세계적 종교화는 그 대부분을 바울의 활동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바울에게서 기독교의 구원의 교리의 근본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학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또 윤리나 교회의 실제적 문제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또 그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인간의 전형적인 상(像)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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