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의 발견과 파스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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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생물의 발견과 파스퇴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기 위해서 모였다.
25마리의 양은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 두 번의 백신 주사를 맞았다. 첫 번째는 매우 오래된 약한 것이었고 12일 후에는 처음보다 더 새롭고 강한 주사를 놓았다. 다른 25마리는 전혀 백신 주사를 맞지 않았다. 이 두 무리의 양 떼는 분리되었다. 그러고 나서 50마리의 양들에게 모두 치명적인 강력한 탄저병 세균을 주사하였다.
백신 주사를 맞지 않은 양들은 전부 죽거나 죽어 가고 있었다. 파스퇴르와 조수들이 멜륑에 도착하자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백신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백신을 매우 순수하게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탄저병을 일으키고 때로는 까닭 없이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의학계의 커다란 비약임에 틀림없었다. 이렇게 해서 유럽의 농장을 휩쓸었던 전염병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파스퇴르를 광견병을 치료한 사람으로 더 잘 알고 있다. 광견병은 대단한 병이다. 미친개나 늑대에게 물리며 떨다가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이 시작되면서 질식되어 죽거나 전신 마비가 되고 만다.
루이와 연구원들은 그 원인을 세균이 중앙 신경 조직에 침투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그들은 광견병으로 죽은 마친 개의 척수에서 신경 조직을 떼어 내어 토끼에게 주입시켰다. 2주일 후에 그 토끼는 광견병에 걸렸다. 그 토끼가 죽은 다음 그 조직의 일부를 또 다른 토끼에게 주입시켰다. 이 과정을 25번이나 되풀이했다. 되풀이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병이 나타나는 시간이 점점 짧아져서 1주일로 단축되었다. 그들은 감염된 척추골수를 떼어 내어 약화시키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1885년 7월 6일 월요일 아침이었다. 아홉 살 난 조제프 메스테르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파스퇴르의 연구실에 들어왔다. 그는 알자스에 있는 그의 마을에서 이틀 전 미친개에게 얼굴, 손 그리고 몸을 물어 뜯겼다.
파스퇴르는 참으로 난감하였다. 지금 광견병백신은 아직 사람에게 시험할 단계가 아니었다. 그는 의학 협회의 동료들에게 소년이 광견병에 걸릴지 자문을 구하였다. 소년의 몸에는 14군데의 깊은 상처가 났으므로 그들은 그 소년이 광견병에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파스퇴르의 백신은 그 소년을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접종 주사를 놓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어쨌든 죽거나 마비될 가능성이 있었다.
루이는 그 시험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7월 6일 저녁에 그는 의사가 15일 전에 광견병으로 죽은 토끼의 약해진 척수에서 뽑은 백신을 그 소년에게 주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10일이 자나자 날마다 조금씩 더 강한 백신을 소년에게 주사하였다. 조제프의 물린 자국은 치료되었고, 그는 결코 광견병에 걸리지 않았다.
르네 뒤보의 <과학에 대한 자유 기고>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광견병 예방 치료가 인간 생명을 어느 정도 구했다 하더라도, 그토록 많은 노력과 인간의 복지라는 제단 앞에 희생된 많은 동물들에 비해서는 미미한 보답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파스퇴르의 업적이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 더욱 일반적인 의견이었다. 광견병덕택에 사람들은 황열병과 널리 퍼지는 여러 바이러스 질병에 대해 면역성을 가지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면역이 자연의 보편적인 한 법칙으로 인식된 사실이다. 사람과 동물의 복지를 위한 면역의 중요성은 오늘날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미래만이 인간 경제의 영역에서 면역의 중요성을 완전히 드러낼 것이다.”
파스퇴르의 백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구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비록 광견병이 항상 모든 희생자를 죽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파스퇴르의 치료법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파스퇴르에 의해서 동물에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발전이 이루어 졌다. 과학 학술원은 ‘파스퇴르 연구소’라는 연구 기관을 설립하여 광견병 치료를 체계화하기로 결정했다. 전세계로부터 이 연구 기관이 건립을 위해 많은 돈이 모아져 들어왔다.
루이는 거의 70세가 될 때까지 계속 연구를 하였다. 1887년, 그가 65세 되던 해에 또 한번의 마비가 일어나 개인적인 실험을 못 하게 되었지만 동료와 제자들과의 토론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1888년 11월, 파스퇴르 연구소가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이끌어 온 열정과 굳은 신념을 따르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파스퇴르의 훌륭한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메치니코프는 인간의 신체가 세균에 대항하는 방법과 면역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밝히기 시작했다.
1895년 9월 28일, 루이 파스퇴르는 가족과 동료 그리고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약 반세기 동안 과학 세계를 주도했으며 반신 불수의 신체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25년간 계속 앞만 향해 나아갔다. 지금 그는 죽었지만 그의 정신은 그의 지식을 물려받은 과학자와 의사들의 정신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그가 훈련시킨 젊은 과학자들은 새로운 영광을 향해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다. 의사 루와 예르생은 해마다 수천 명씩 어린아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디프테리아의 치료법을 개발했다. 파스퇴르의 가장 총명한 조수 중의 한 사람인 메치니코프는 사람의 몸에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 면역성을 기르는 방법을 파헤쳤다.
위대한 일을 해낸 파스퇴르를 가리켜 천재라고 부르기는 쉽다. 또한 그가 해내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이 해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성취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이 사람들이 사는 시대의 일부분이며, 많은 사람들에 의해 축적된 지식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파스퇴르가 한 것처럼, 함께 줄을 잡아당겨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파스퇴르가 믿음을 실현하려는 굳은 의지를 지닌 진리의 투사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주가 알겠는가? 그리고 만약 리스터 같은 선각자들이 진리를 보고 깨닫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파스퇴르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나에게 과학과 평화는 무지와 전쟁을 이길 것이며, 미래는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 일하는 자에게 달려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지닌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깊은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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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4.10.18
  • 저작시기2004.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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