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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친일파의 형성과 친일의 논리
해방공간 남북한의 친일청산 실태와 문제점
분단 이후 친일파 청산운동의 재개와 과제
해방공간 남북한의 친일청산 실태와 문제점
분단 이후 친일파 청산운동의 재개와 과제
본문내용
청산을 주장하는 집단은 빨갱이라는 주장이다. '해방 직후에도 친일파 청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산당 사람들이거나 이들과 가까웠다. 친일파 비난하는 것은 북한의 단골 주장이다. 지금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들은 죄다 빨갱이다' 라는 주장은 민족연구소나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홈페이지에 가장 자주 올라오는 친일 청산 반론 중의 하나이다. 대체로 이들의 조상에는 전직 친일 경찰 군인들이 많다. 그리고 이들은 6 25 때 자신들의 부친이 '북괴의 남침'을 막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애국자(founder)인데, 빨갱이들이 이를 미워해 친일청산 명분을 들고 나온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한민국을 만든 주인공이 결코 아니다. 독립국가 건설을 막기 위해 일제의 독립운동 탄압의 최일선에서 활동한 일제의 주구들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이들의 반공은 생존 본능이었으며,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부패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가장 충실하게 과거 친일파의 논리를 순혈주의로 이어받고 있다 하겠다.
* 마지막으로 정치권에서 종종 나오는 특정 정당의 총재를 음해하기 위한 정치적 모략과 결합된 음해론이다. 물론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의해 친일문제가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음해론을 빌미삼아 친일청산 그 자체의 필요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고 검증된 민간단체에 친일문제를 위임함으로써 민족 성원 모두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적극적 대안일 것이다.
이상 친일파 옹호론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반대 논리 속에 친일파 추종세력들은 과거 역사의 은폐를 넘어서 왜곡과 미화를 통해 또 한번 역사의 반역을 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밖에 친일파 청산론은 퇴행적 민족주의 담론이며, 국제화시대, 탈민족국가 시대에 걸맞지 않은 시대착오적 논리라는 주장이나, 해방 후 한국 사회를 해명하는 데는 친일파문제보다는 친미파가 더 중요하다는 또 다른 입장에서의 반론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기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여성친일파에 대한 비판을 여성운동에 대한 가부장적 민족주의의 탄압이라고 논박하는 해괴한 견해도 있다.
5. 친일파 청산운동의 현재적 의의와 과제
우리가 4 19민주혁명을 설명하자면 이승만 독재의 실상을 아울러 설명해야 하듯이, 우리의 민족해방운동의 역사 또한 그 반대편에 서있던 친일세력의 책동을 한 눈 속에 넣고 파악해야 한다. 반세기 가까운 일제 지배 속에서 민중을 고통의 나락으로 몰아넣은 친일 세력들이 해방 후 단 한 명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총체적 구조적 후진성을 만들어 낸 장본임에랴!
해방 후 친일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식민지 시기보다 더 굳건한 지배층으로 자리 잡았으며, 분단과 독재체제를 심화시켰다. 이들은 일제에 부역한 것을 '민족의 선각자'가 겪어야 했던 수난이라고 미화하고, 이승만 분단독재정권에 빌붙은 것을 반공애국투사의 건국 활동으로 자화자찬했다. 박정희 유신체제에 동조한 부류들은 박정희를 '근대화혁명가'로 분식하고 자신을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포장했다. 친일에서 친미로 끝없이 외세에 빌붙은 것을 두고 개방화시대의 선각자라 조만간 떠들지도 모른다. 파시즘적 기반의 온존과 강화 반공과 독재 그리고 분단의 핵심 세력의 뿌리는 바로 이들이다.
이로 인해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국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자존의식과 도덕적 뿌리마저 무너지게 만들었고, 잘못을 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한다는 상식조차 부정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50여 년 넘게 지나면서 일반대중에게까지 일상화됨에 따라 정의는 칼을 쥔 자의 것이며 역사는 언제나 권력자의 편이라는 자조 섞인 역사인식을 갖게 하였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마침내 잘못을 잘못으로서 인정할 능력조차 상실한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번 첫 단추를 잘못 맞추면 다음 단추도 마찬가지이다. 작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으로 시끄러웠다. 우리가 이를 비판한 근본 이유는 세 가지였다. 일본 극우파들이 과거 일제가 저지른 침략과 식민지 지배 그리고 전쟁을 미화해 역사를 왜곡한 점,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공교육의 현장에서 어린 세대에게 가르치는 것은 미래의 파시즘 전사를 양성하려는 예비범죄라는 점, 나아가 이는 동아시아 21세기 평화의 근본 위협요소라는 점이었다. 일본 역사 교과서 규탄에 온 시민이 나선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순간 한국의 지배 세력들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대외 침략의 첨병을 활약한 최후의 일본 제국 군인 박정희를 비롯한 수많은 친일파들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우리의 세금을 걷어서 진행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런 전도된 가치관이 21세기 우리 후손에게 교육되고 학습되어질진대 과연 친일은 과거의 문제인가?
우리가 친일 청산을 주창하며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나선 것도 이러한 절박한 현실 때문이다. 친일파는 어제는 친일 오늘은 친미로 옮겨다니며, 반공을 기득권의 온상으로 삼고 끝없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권력의 양지만을 추구하는 카멜레온 족속이다. 이들의 친일파 선양사업은 친일세력이 온존하면서 물려준 기득권을 지키려는 알량한 속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친일 세력의 몸바꾸기와 기득권 추구 그리고 이에서 비롯하는 온갖 부조리를 타파하는 출발로서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친일인명사전을 민중의 힘으로 완수해 우리 스스로 역사를 자정할 수 있는 저력을 확인하고, 연구자와 시민이 함께 이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우리 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대중적으로 확보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1985년 5월 8일 종전 40주년을 맞아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이 국회에서 한 연설 가운데 일부로 글을 맺고자 한다.
"지나간 일은 수정되거나 백지화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과거에 대해서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도 장님이 된다.……참회와 속죄 없이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과거를 기억함은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증언이다. 그것은 속죄의 원천이다.……이 증거를 망각하는 자는 내일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 마지막으로 정치권에서 종종 나오는 특정 정당의 총재를 음해하기 위한 정치적 모략과 결합된 음해론이다. 물론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의해 친일문제가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음해론을 빌미삼아 친일청산 그 자체의 필요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고 검증된 민간단체에 친일문제를 위임함으로써 민족 성원 모두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적극적 대안일 것이다.
이상 친일파 옹호론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반대 논리 속에 친일파 추종세력들은 과거 역사의 은폐를 넘어서 왜곡과 미화를 통해 또 한번 역사의 반역을 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밖에 친일파 청산론은 퇴행적 민족주의 담론이며, 국제화시대, 탈민족국가 시대에 걸맞지 않은 시대착오적 논리라는 주장이나, 해방 후 한국 사회를 해명하는 데는 친일파문제보다는 친미파가 더 중요하다는 또 다른 입장에서의 반론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기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여성친일파에 대한 비판을 여성운동에 대한 가부장적 민족주의의 탄압이라고 논박하는 해괴한 견해도 있다.
5. 친일파 청산운동의 현재적 의의와 과제
우리가 4 19민주혁명을 설명하자면 이승만 독재의 실상을 아울러 설명해야 하듯이, 우리의 민족해방운동의 역사 또한 그 반대편에 서있던 친일세력의 책동을 한 눈 속에 넣고 파악해야 한다. 반세기 가까운 일제 지배 속에서 민중을 고통의 나락으로 몰아넣은 친일 세력들이 해방 후 단 한 명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총체적 구조적 후진성을 만들어 낸 장본임에랴!
해방 후 친일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식민지 시기보다 더 굳건한 지배층으로 자리 잡았으며, 분단과 독재체제를 심화시켰다. 이들은 일제에 부역한 것을 '민족의 선각자'가 겪어야 했던 수난이라고 미화하고, 이승만 분단독재정권에 빌붙은 것을 반공애국투사의 건국 활동으로 자화자찬했다. 박정희 유신체제에 동조한 부류들은 박정희를 '근대화혁명가'로 분식하고 자신을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포장했다. 친일에서 친미로 끝없이 외세에 빌붙은 것을 두고 개방화시대의 선각자라 조만간 떠들지도 모른다. 파시즘적 기반의 온존과 강화 반공과 독재 그리고 분단의 핵심 세력의 뿌리는 바로 이들이다.
이로 인해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국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자존의식과 도덕적 뿌리마저 무너지게 만들었고, 잘못을 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한다는 상식조차 부정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50여 년 넘게 지나면서 일반대중에게까지 일상화됨에 따라 정의는 칼을 쥔 자의 것이며 역사는 언제나 권력자의 편이라는 자조 섞인 역사인식을 갖게 하였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마침내 잘못을 잘못으로서 인정할 능력조차 상실한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번 첫 단추를 잘못 맞추면 다음 단추도 마찬가지이다. 작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으로 시끄러웠다. 우리가 이를 비판한 근본 이유는 세 가지였다. 일본 극우파들이 과거 일제가 저지른 침략과 식민지 지배 그리고 전쟁을 미화해 역사를 왜곡한 점,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공교육의 현장에서 어린 세대에게 가르치는 것은 미래의 파시즘 전사를 양성하려는 예비범죄라는 점, 나아가 이는 동아시아 21세기 평화의 근본 위협요소라는 점이었다. 일본 역사 교과서 규탄에 온 시민이 나선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순간 한국의 지배 세력들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대외 침략의 첨병을 활약한 최후의 일본 제국 군인 박정희를 비롯한 수많은 친일파들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우리의 세금을 걷어서 진행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런 전도된 가치관이 21세기 우리 후손에게 교육되고 학습되어질진대 과연 친일은 과거의 문제인가?
우리가 친일 청산을 주창하며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나선 것도 이러한 절박한 현실 때문이다. 친일파는 어제는 친일 오늘은 친미로 옮겨다니며, 반공을 기득권의 온상으로 삼고 끝없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권력의 양지만을 추구하는 카멜레온 족속이다. 이들의 친일파 선양사업은 친일세력이 온존하면서 물려준 기득권을 지키려는 알량한 속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친일 세력의 몸바꾸기와 기득권 추구 그리고 이에서 비롯하는 온갖 부조리를 타파하는 출발로서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친일인명사전을 민중의 힘으로 완수해 우리 스스로 역사를 자정할 수 있는 저력을 확인하고, 연구자와 시민이 함께 이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우리 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대중적으로 확보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1985년 5월 8일 종전 40주년을 맞아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이 국회에서 한 연설 가운데 일부로 글을 맺고자 한다.
"지나간 일은 수정되거나 백지화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과거에 대해서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도 장님이 된다.……참회와 속죄 없이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과거를 기억함은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증언이다. 그것은 속죄의 원천이다.……이 증거를 망각하는 자는 내일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