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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궁극적으로 바 라는 세상은 셴테와 같이 착한 사람이 또 다른 얼굴 슈이타로 분열하지 않고도 행 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선하게 살면서도 동시에 이 세상에 살 아 남기 위해서는 세상과 인간 모두가 변해야 되지 않을까? 그러나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하는가? 내면에 셴테와 슈이타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이 우 리 자신의 의지로 모순하나 없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 가 ?
하나님을 믿고 있는 나로서는 하나님 밖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답 을 아직까지는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내에서 현실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볼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 셴테의 경우에는 그녀의 무분별한 선행이 더욱 그녀를 파멸로 이르게 했다고 본다. 셴테는 좀더 분별있고 지혜로운 선행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쉰부인과 8인가족 목수, 양순 등 약자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은 회개하고 올바르게 자신들의 노력으로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가진자(기득권층)는 소외된 계층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들을 베풀 줄 아는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며 사회는 방관자적 입장에서 구경만 할것이 아니라 가진자와 못가진자들이 서로 화합하며 조화롭게 살수 있도록 사회 여건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 모두가 선한 방향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세추안의 착한 여자]에서 말하고자 했던 브레히트의 메시지와 그의 서사극은 골치 아픈 것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 자신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고 있는 나로서는 하나님 밖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답 을 아직까지는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내에서 현실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볼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 셴테의 경우에는 그녀의 무분별한 선행이 더욱 그녀를 파멸로 이르게 했다고 본다. 셴테는 좀더 분별있고 지혜로운 선행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쉰부인과 8인가족 목수, 양순 등 약자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은 회개하고 올바르게 자신들의 노력으로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가진자(기득권층)는 소외된 계층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들을 베풀 줄 아는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며 사회는 방관자적 입장에서 구경만 할것이 아니라 가진자와 못가진자들이 서로 화합하며 조화롭게 살수 있도록 사회 여건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 모두가 선한 방향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세추안의 착한 여자]에서 말하고자 했던 브레히트의 메시지와 그의 서사극은 골치 아픈 것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 자신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