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1. 위항인, 위항문학의 등장배경
2. 위항인의 활동내용
Ⅱ. 본론
1. 현실비판적 특성
2. 회고(懷古)와 영사(詠史)
3. 신분적 불평
4. 근대지향성
5. 사실적 표현
6. 외국과의 교류
Ⅲ. 결론
1. 위항인, 위항문학의 등장배경
2. 위항인의 활동내용
Ⅱ. 본론
1. 현실비판적 특성
2. 회고(懷古)와 영사(詠史)
3. 신분적 불평
4. 근대지향성
5. 사실적 표현
6. 외국과의 교류
Ⅲ. 결론
본문내용
서사적인 표현에서 더 많음을 볼 수 있으니, 떡을 팔고 있는 시장 풍경을 묘사한 이언진(李彦 )의「동호거실( 居室)」에서 그 특징이 나타난다. 어린 아이들은 시장 바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샅샅이 알고 있지만 오히려 작자는 세상 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6. 외국과의 교류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 )과 소제 변종운(嘯齊 卞鍾運)은 역관(譯官)으로 연행사의 수원으로 빈번하게 북경(北京)에 왕래하면서 선진문물을 접했다는 것에서 따로 다룰 만 하다. 그들은 국내 학자보다도 중국의 문인 학자들과 교류함으로써 그들 청의 문인들의 인정을 통하여 국내에서 성가를 드높였다. 특히 이상적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서 추사와 청의 문인 학자들과의 교류에 있어 교량의 역할을 다하였다. 아울러 그 자신이 교제한 청인(淸人)과의 척독(尺牘)을 정리하여 『해린척서(海隣尺書)』
39인의 청시인(淸詩人)이 보낸 115본의 편지
를 편집하였다. 또한 헌종(憲宗) 앞에 나아가 자작시를 구송(口誦)함으로써 『은송당집(恩誦堂集)』이라는 시문집이 중국에서 간행된다. 변종운의 시문은 1890년 『소제집(嘯齊集)』으로 광인사에서 간행되었다. 이 두 사람은 다른 위항 시인들에 비해 현실에 발을 붙이고 안정된 삶을 누린 편이며 연행사의 수원으로 부를 축적, 그에 따르는 생활의 여유를 즐겼다. 그러나 의식 속에는 항상 사회신분제도에 대한 불만이 도사리고 있어서 변종운의 글인 『안현황유수기(鞍峴黃楡樹記)』를 살펴보면 온건한 속에 얼마나 강한 부조리에의 반감이 잠재하여 있는가를 알 수 있다.
Ⅲ. 결론
이상으로 위항문학이 가지는 특징적인 면모를 대략 6가지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가 그들 문학의 특징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본 고에서는 다만 위항문학의 몇몇 특징만 발췌하여 대강의 내용을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강의 특징만으로도 조선후기 위항인의 역할을 짐작하는데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위항인들의 문학적 성과는 역사의 단락구분과 맞물려 있기에 소홀히 다룰 수는 없다. 이들은 신분적 제한에서 오는 불평등의 처지에서 온갖 사회의 제도적 모순에 항거하였으며, 문학 활동을 통하여 자기 존재를 확인하였다. 즉 신분에 따른 문화적 차별을 넘어서서 자신을 긍정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한시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삼아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이들은 직업상의 특성으로 선진문물에 접할 기회가 많았기에 청(淸)과 일본(日本)을 통해 그것을 수용하여 사회계몽의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더 나아가 스스로 습득한 지식으로 개화사상을 열어가는 촉매제의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예술의 자유로운 창작을 시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대부 문화에로의 편입을 완전히 불식하지 못하였으니 진정한 의미에서 근대문학의 자유로운 창작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이를 사대부문학과 시민문학의 성격을 아울러 지닌 중간적인 형태로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차용주, 『한국 위항문학 작가 연구』, 경인문화사, 2003.
강명관,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 창작과 비평사, 1997.
구자균, 『한국평민문학사』, 민족문화사, 1982.
천병식, 「위항문학의 특성과 전개」『인문논총3』, 아주대인문과학연구소, 1992.
천병식, 「시사의 형성과 위항인의 문학활동」『인문논총』, 아주대인문과학연구소, 1985.
정옥자, 「시사를 통해서 본 조선말기 중인층」『한우근교수정년퇴임기념논총』, 지식산업 사, 1981.
이기백, 「19세기 한국사학의 새 양상」, 『한우근교수정년퇴임기념논총』, 지식산업사, 1981.
6. 외국과의 교류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 )과 소제 변종운(嘯齊 卞鍾運)은 역관(譯官)으로 연행사의 수원으로 빈번하게 북경(北京)에 왕래하면서 선진문물을 접했다는 것에서 따로 다룰 만 하다. 그들은 국내 학자보다도 중국의 문인 학자들과 교류함으로써 그들 청의 문인들의 인정을 통하여 국내에서 성가를 드높였다. 특히 이상적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서 추사와 청의 문인 학자들과의 교류에 있어 교량의 역할을 다하였다. 아울러 그 자신이 교제한 청인(淸人)과의 척독(尺牘)을 정리하여 『해린척서(海隣尺書)』
39인의 청시인(淸詩人)이 보낸 115본의 편지
를 편집하였다. 또한 헌종(憲宗) 앞에 나아가 자작시를 구송(口誦)함으로써 『은송당집(恩誦堂集)』이라는 시문집이 중국에서 간행된다. 변종운의 시문은 1890년 『소제집(嘯齊集)』으로 광인사에서 간행되었다. 이 두 사람은 다른 위항 시인들에 비해 현실에 발을 붙이고 안정된 삶을 누린 편이며 연행사의 수원으로 부를 축적, 그에 따르는 생활의 여유를 즐겼다. 그러나 의식 속에는 항상 사회신분제도에 대한 불만이 도사리고 있어서 변종운의 글인 『안현황유수기(鞍峴黃楡樹記)』를 살펴보면 온건한 속에 얼마나 강한 부조리에의 반감이 잠재하여 있는가를 알 수 있다.
Ⅲ. 결론
이상으로 위항문학이 가지는 특징적인 면모를 대략 6가지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가 그들 문학의 특징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본 고에서는 다만 위항문학의 몇몇 특징만 발췌하여 대강의 내용을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강의 특징만으로도 조선후기 위항인의 역할을 짐작하는데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위항인들의 문학적 성과는 역사의 단락구분과 맞물려 있기에 소홀히 다룰 수는 없다. 이들은 신분적 제한에서 오는 불평등의 처지에서 온갖 사회의 제도적 모순에 항거하였으며, 문학 활동을 통하여 자기 존재를 확인하였다. 즉 신분에 따른 문화적 차별을 넘어서서 자신을 긍정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한시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삼아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이들은 직업상의 특성으로 선진문물에 접할 기회가 많았기에 청(淸)과 일본(日本)을 통해 그것을 수용하여 사회계몽의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더 나아가 스스로 습득한 지식으로 개화사상을 열어가는 촉매제의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예술의 자유로운 창작을 시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대부 문화에로의 편입을 완전히 불식하지 못하였으니 진정한 의미에서 근대문학의 자유로운 창작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이를 사대부문학과 시민문학의 성격을 아울러 지닌 중간적인 형태로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차용주, 『한국 위항문학 작가 연구』, 경인문화사, 2003.
강명관,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 창작과 비평사, 1997.
구자균, 『한국평민문학사』, 민족문화사, 1982.
천병식, 「위항문학의 특성과 전개」『인문논총3』, 아주대인문과학연구소, 1992.
천병식, 「시사의 형성과 위항인의 문학활동」『인문논총』, 아주대인문과학연구소, 1985.
정옥자, 「시사를 통해서 본 조선말기 중인층」『한우근교수정년퇴임기념논총』, 지식산업 사, 1981.
이기백, 「19세기 한국사학의 새 양상」, 『한우근교수정년퇴임기념논총』, 지식산업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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