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1)성균관
2)사학
3)향교
4)서원
5)서당
3. 결론
2. 본론
1)성균관
2)사학
3)향교
4)서원
5)서당
3. 결론
본문내용
것은 봉건제도의 해독이었고 관리를 존중하고 개인을 천시하는 사상의 재앙이었다. 서당의 존재가치를 미적지근하게 평가한 것이지 결코 절실하고 중요한 필요성을 느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5) 훈장 교수법에 대한 평가
서당의 훈장들이 대개는 교수법이 졸렬하며 학생의 재능과 실력을 제대로 충실하도록 가르치고 이끌지 못하였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국가에서 소홀히 내버려두고 장려와 감독을 하지 아니하였던 까닭이요, 따라서 어름어름하고 미적지근하게 시일만 허비하는 나쁜 풍습이 전국에 넘쳐흘러 학풍이 쇠퇴해졌다. 영조 때에 경연관을 지낸 어당 이상수(李象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6) 서당의 교육과정
서당의 교육과정은 크게 강독과 제술 및 습자의 3단계로 나뉘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와 같다. 또한 학습의 내용은 서당 훈장의 개인적 능력과 학생의 능력에 따라 기초적인 단 계에서 높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하였다.
① 강독
『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蒙先習)』, 『통감(通鑑)』, 『소학(小學)』 등이 보통이 고, 훈장의 능력에 따라 그 이상도 교육하였다.
② 습자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등을 차례로 읽히며, 자획의 모양이 숙달되면 실용적인 글쓰기 연습도 하였다.
③ 제술
문장과 시를 짓는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이지만, 서당 교육의 중심은 강독·습자를 통한 문 자 해득의 기초 교육이었으므로 크게 중요시되지 않았다.
7) 입학자격
서당의 입학자격은 제한이 없었고, 연령은 보통 7 ~ 8세부터 15 ~ 6세의 학생이 중심이었으며, 20세 내지 25세 이상 되는 학생도 많았다.
8) 교육방법
학습의 순서는 먼저 『천자문』으로 글자를 익히고, 다음은 『동몽선습』과 같은 교재로 글자를 붙여서 음독하는 것을 익히고, 다음 차례로 구독의 문리와 문장의 뜻을 풀이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스승 없이 혼자서 읽고 해득할 수 있도록 했다.
결론
이제까지 조선시대의 교육시설에 대해 부분별로 조사하고 그에 따른 파악을 해 보았다. 조선시대의 교육시설에서 보면 다른 교육 기간명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서당은 이제까지 존재하고 있는걸 알수 있다. 대표적으로 지리산 청학동 마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서당을 아직까지 있고 찾는 이유가 무얼까 ?
아마도 현대교육에서 채울 수 없는 전통교육의 중요성 때문이지 아닌가 싶다. 현재 우리의 교육은 일제침략시기를 기점으로 과거의 서당교육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현대교육이 자리하고있다 그나마 전통의 맥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청학 동에서 서당의 바람이 불었으니 이 바람을 타고 이제 전국 곳곳에 전통교육을 체험할 수 있는 서당이 번창하기를 바래본다 .
이번 조사를 통해 조선시대에 교육기간이 아직 남아 있어서 앞으로 계속 지켜 나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참고도서: 박의수 외의 [교육의 역사와 철학](동문사,1998),
이만규의 [조선교육사Ⅰ](거름 1988)
이만규의 [조선교육사Ⅰ]
노상우의 교육의 역사와 사상
인터넷 엠파스 검색정보
5) 훈장 교수법에 대한 평가
서당의 훈장들이 대개는 교수법이 졸렬하며 학생의 재능과 실력을 제대로 충실하도록 가르치고 이끌지 못하였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국가에서 소홀히 내버려두고 장려와 감독을 하지 아니하였던 까닭이요, 따라서 어름어름하고 미적지근하게 시일만 허비하는 나쁜 풍습이 전국에 넘쳐흘러 학풍이 쇠퇴해졌다. 영조 때에 경연관을 지낸 어당 이상수(李象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6) 서당의 교육과정
서당의 교육과정은 크게 강독과 제술 및 습자의 3단계로 나뉘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와 같다. 또한 학습의 내용은 서당 훈장의 개인적 능력과 학생의 능력에 따라 기초적인 단 계에서 높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하였다.
① 강독
『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蒙先習)』, 『통감(通鑑)』, 『소학(小學)』 등이 보통이 고, 훈장의 능력에 따라 그 이상도 교육하였다.
② 습자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등을 차례로 읽히며, 자획의 모양이 숙달되면 실용적인 글쓰기 연습도 하였다.
③ 제술
문장과 시를 짓는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이지만, 서당 교육의 중심은 강독·습자를 통한 문 자 해득의 기초 교육이었으므로 크게 중요시되지 않았다.
7) 입학자격
서당의 입학자격은 제한이 없었고, 연령은 보통 7 ~ 8세부터 15 ~ 6세의 학생이 중심이었으며, 20세 내지 25세 이상 되는 학생도 많았다.
8) 교육방법
학습의 순서는 먼저 『천자문』으로 글자를 익히고, 다음은 『동몽선습』과 같은 교재로 글자를 붙여서 음독하는 것을 익히고, 다음 차례로 구독의 문리와 문장의 뜻을 풀이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스승 없이 혼자서 읽고 해득할 수 있도록 했다.
결론
이제까지 조선시대의 교육시설에 대해 부분별로 조사하고 그에 따른 파악을 해 보았다. 조선시대의 교육시설에서 보면 다른 교육 기간명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서당은 이제까지 존재하고 있는걸 알수 있다. 대표적으로 지리산 청학동 마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서당을 아직까지 있고 찾는 이유가 무얼까 ?
아마도 현대교육에서 채울 수 없는 전통교육의 중요성 때문이지 아닌가 싶다. 현재 우리의 교육은 일제침략시기를 기점으로 과거의 서당교육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현대교육이 자리하고있다 그나마 전통의 맥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청학 동에서 서당의 바람이 불었으니 이 바람을 타고 이제 전국 곳곳에 전통교육을 체험할 수 있는 서당이 번창하기를 바래본다 .
이번 조사를 통해 조선시대에 교육기간이 아직 남아 있어서 앞으로 계속 지켜 나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참고도서: 박의수 외의 [교육의 역사와 철학](동문사,1998),
이만규의 [조선교육사Ⅰ](거름 1988)
이만규의 [조선교육사Ⅰ]
노상우의 교육의 역사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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