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 이라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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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전쟁발발원인

2. 전쟁의 추이

3. 전쟁의 경과

4. 전쟁 결과

5. 이란의 패전원인과 이란-이라크전쟁의 추가 상황

6. 의미 및 영향

7. 추후 전망

본문내용

<스타크>호는 침몰은 모면하였으나 수리하는데, 9,000만 달러가 소요되는 손상을 입었다.
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이라크 공군의 미라쥬 전투기로 이라크가 미국 함전을 이란함으로 오인했던 것이다. 후세인 대통령은 즉각 조의를 표하고 총액 3,000만 달러로 예상되는 위로금을 지불하였다.
한편 미국 해군은 전장에 근접한 해상에 있으면서도 경계상태가 불충분했다는 사실, 미사일에 맞은 후 피해통제가 서툴렀다는 교훈을 이 사건에서 배우게 되었다.
이라크와 쿠르드족의 항쟁
이라크 북부지방에 거주하는 2백만의 쿠르드족은 오랫동안 이라크 중앙 정권과 대립하여 왔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자, 크르드족은 당연히 이란 측에 가담하고 이라크군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쿠르드족은 국가 체제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보유 병기가 빈약하여, 이라크군을 위험할 만한 전투력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라크로서는 쿠르드족의 이적행위를 방치해 둘 수 없어서, 휴전이 성립됨과 동시에 후세인 대통령은 쿠르드족 공격에 착수하였다. 북부 네이나바에서는 화학무기를 사용하여 쿠르드족 4,000명을 학살하였다. 1988년 중에 살해된 쿠르드인은 UN의 조사로 6,000명이고 쿠르드 측의 발표는 20,000명이다.
UN을 비롯한 미국, 영국, 당시의 서독은 이라크의 의한 쿠르드 박해를 강력히 비난하였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외교관계가 한때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공군기의 이라크 원자로 폭격
이란-이라크 전쟁이 개시되어 8개월째,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스라엘 공군의 맥도넬ㆍ더글라스 F-15의 엄호를 받은 F-16 8대가 요르단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영공을 돌파하고 이라크에 침입, 특수 폭탄으로 완성이 임박한 원자로를 공격하였다.
이 폭격으로 인해 이라크의 원자로는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방사능 누출 현상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라크가 원자폭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판단하고 선수를 쳐서 폭격했던 것이다. 핵무기개발 사실은 명확하지 않지만 선전포고 하지 않은 국가의 중요시설은 폭격한 이스라엘의 강경한 태도가 돋보인다. 그 반면, 이스라엘 공군의 히해는 전혀 없었고, 항법 빛 폭격기술의 정교함이 강한 인상을 남겨준다.
6. 의미 및 영향
이란과 이라크는 민족과 종교 그리고 국경 수로에 대한 영유권 등을 놓고 오랜 동안 대립하여 왔다. 그러나 양국간의 전쟁을 촉발시킨 결정적 계기는 팔레비 정권의 붕괴와 이슬람 혁명정권의 수립이었다. 이란이 혁명의 후유증으로 혼란을 겪고있는 틈을 이용하여 그 동안 열세 국면에 있던 이라크가 이란에 선제 공격을 가함으로써 전면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이 전쟁은 당사자와 중동질서 및 국제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정권은 수립이후 소수민족들의 폭동과 조직적 정치집단(무자헤딘, 국민전선 등)의 도전적 경쟁에 직면하였는데, 이라크와의 전쟁을 그러한 반정부 세력을 제거하는 계기로 활용하였다. 둘째, 이란은 이 전쟁을 계기로 혁명의 와중에서 붕괴되다시피 한 군대를 재건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 전쟁을 자신의 정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넷째, 이라크는 이 전쟁을 계기로 군사강국으로서 중동지역의 패권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다섯째, 양국은 전쟁을 치르면서 유조선을 공격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수혜자분담의 원칙이 적용된 다국적 국제문제 해결 방식이 부각되게 되었다. 여섯째, 두 국가간의 전쟁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대아랍 공격에 있어서 행동의 자유를 넓혀 주었다. 이스라엘은 이라크와 이란 모두 전쟁을 수행하는 데 여념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1981년 6월 이라크의 핵 원자로를 공격, 파괴시켰고, 1982년에는 레바논의 PLO와 시리아 군사기지를 강습하였다. 이란과 이라크는 오늘날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으며, 따라서 현재로서는 전면적 무력 충돌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진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전쟁과 유사한 사태가 재발될 경우 원유 생산과 수송에 막대한 차질이 발생될 뿐만 아니라 중동지역 전체를 불안정하게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에 대한 파급 영향이 지대할 것이다.
7. 추후 전망
이란과 이라크는 양국간의 국내정세와 국력의 판도 변화에 따라 대결을 되풀이하여 왔다. 양국간 분쟁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는 샤트 알 아랍 수로에 대한 주도권의 변화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예를 들면, 팔레비 정권 당시에 이 수로의 지배권은 이란이 행사하였으나, 이란이 이슬람혁명의 와중에서 권력체제와 국력이 약화되면서 이라크가 무력 침공을 통해 이 수로의 지배권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양국간의 전면적 분쟁은 현재로서는 재현될 가능성이 비교적 적다. 이란은 정권기반을 공고하게 하면서 국가를 부흥시켜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라크와의 무력 대결에 나서기가 어렵다. 이라크도 정권기반을 튼튼히 하면서 걸프전이후 파괴된 국가를 재건하고 국제사회의 강력한 감시를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란과의 무력 대결에 나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1980년대에 있었던 것과 같은 양국간의 전면적 분쟁은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양국은 공히 중동지역의 강대국으로서 지역 패권의 장악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긴장과 대결관계로 빠져 들어갈 잠재성을 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란과 이라크는 정치적, 종교적 대립요인이 그대로 남아 있고, 샤트 알 아랍 수로의 영유권 문제도 완전하게 타결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분쟁의 가능성이 항상 잠재되어 있다. 특히 양국은 각기 상대편의 반정부 무장 세력을 고무하거나 지원하고 있어 무력적 대결 또는 충돌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 참고문헌 】
ㆍ중동의 새로운 이해, 손주영ㆍ김상태, 오름, 1999
ㆍ중동정치질서의 이해 -변화의 지속성-, 홍순남, 한국외국어 대학교, 1997
ㆍ고등학교 세계지리, 유근배ㆍ김인, 두산동아, 1997
ㆍ20세기 지구촌전쟁, 김신복ㆍ황원식, 병학사, 1996
ㆍ국가연구 : 이란,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1989
ㆍhttp://www.kida.re.kr/limdata/world/content/amc50.htm.

키워드

이란,   이라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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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14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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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78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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